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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군 Oct 02. 2016

태엽감는 새 [1~3부]

무라카미 하루키

예전부터 지금까지 책을 써 온 작가라면 최근작과 과거작의 대결(?) 을 볼 수 있는데(물론 판단하는 몫은 '지금' 을 살고있는 독자들이다),
과거에 비해 발전성이 없는 작가들이 있는 반면에 굉장히 늘어난 필력으로 과거작들을 역사의 뒤안길로 보내버리고야 마는 작가들이 있다.

물론 무라카미 하루키는 후자에 속한다(그렇다고 그의 옛 작품들을 역사의 뒤안길로 보내버리거나 하진 않지만).

옛날부터 책 읽는걸 권위적인 어른을 상대하는 것만큼 싫어하던 나로선 시중에 너무 많이 나와있는 하루키의 도서들을 전부 읽는다는게 결코 쉽지 않은 작업이었고, 그나마 군대에서 처음 읽은 '상실의 시대(a.k.a. 노르웨이 숲)' 가 그의 책 읽기의 시작점이었다는게 다행이었다.

내가 읽었던 그의 책을 발표된 순서대로 나열해 보면(출간일은 일본쪽을 참고했습니다),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1985)
노르웨이 숲(a.k.a. 상실의 시대)(1987)
태엽감는 새(1994)
해변의 카프카(2002)
1q84(2009)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2013)

이렇게 놓고 보니 의외로 많이 읽었다고 생각했는데 정말 의외로 몇 권 읽지 않았다.

아무튼 상실의 시대를 기점으로 놓고 봤을때 내가 읽은 순은(물론 뒤의 연도는 내가 읽은 연도-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다),

노르웨이 숲(a.k.a. 상실의 시대)(2003)
해변의 카프카(2004)
1q84(2014)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2014)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2014)
태엽감는 새(2015)


이렇게 놓고 보니 책 한권을 읽고 마음에 들면 곧 그 다음에 발간된 책이나 이전에 발간된 책을 읽는 경향인가 보다(2014~2015년에만 4권).

아무튼 상실의 시대 이후로 읽은 해변의 카프카는 재미있었고(지금도 외롭게 숲속에서 맨손운동을 하는 주인공이 어렴풋이 기억남),
1q84 이후로 읽은 하루키의 책들 중에 '정말 재미있다!' 라고 할만한 책은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밖에 없다.

이게 뭘 말해주냐하면,
무라카미 하루키의 근간을 읽은 나로썬 그의 과거 장편소설들이 최근작들보다 흥미가 떨어진다는 사실이다.
분명히 상실의 시대는 해변의 카프카보다 이전작이어서 상실의 시대도 재미있었지만 해변의 카프카는 더 재미있게 읽은거고
1q84를 재미있게 읽은 뒤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태엽감는 새 를 연이어 읽어 보았지만 근간이었던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말고는 영 별로였다.

이걸 잘 생각해 보면 그만큼 작가가 발전성이 있다는 얘기다.
물론 나머지 소설들도 형편없다거나 굳이 읽을 필요가 없다는 그런 말이 아니고, 근간들이 너무 재미있어서 과거작들은 통 무슨 소리를 하는지 흥미도 근간만큼 끌지 못하고 내용도 예상했던 것과 별반 차이가 없다는 말이다.

그건 최근작들에게서 과거작들의 플롯 전개 방식을 어느정도 유추해 낼 수 있는 무라카미 하루키식 글쓰기에 많이 익숙해진 결과라고 할까.

나쁘진 않다.
하지만 처음부터 과거작들 부터 읽었다면 재미가 배가 됐을지도 모르고 더 이상 과거작은 그렇게 큰 흥미를 주지 못할거라는 예상에 약간의 아쉬움이 있을 뿐이다(물론 차근차근 그의 과거 작품들을 읽어나갈 테지만).

사설이 예상보다 굉장히 길어졌는데,
이 '태엽감는 새' 라는 작품도 모종의 답답함(내지는 지루함) 을 안겨주는 작품 되겠다.
팍팍 진도를 나갔던 1q84 와 하루키스럽지 않은 희망찬 밝은 미래를 보여줬던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를 읽고 난 뒤라 더 그런듯 하다.

이유없이 어느날 갑자기 직장을 그만둔 주인공 오카다 도루에게 이런저런 일들이 펼쳐지는데,
집에서 기르던 고양이인 와타야 노보루가 집을 나가고 아내였던 구미코가 홀연히 이혼을 요구하며 떠나고
집 주변을 어슬렁 거리다가 우물이 있는 '그' 저택과 가사하라 메이라는 이름의 소녀를 만나고
집을 나간 와타야 노보루를 찾아주겠다며 아내가 소개한 가노 마루타와 가노 크레타를 만나고
마미야 중위가 나타나 우물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며 혼다라는 이름의 노인이 남긴 유품을 주인공에게 건네주고
마미야 중위에게 이야기를 들은 후 주인공은 우물에 집착하게 되고
쿠미코의 오빠인 와타야 노보루가 나타나 주인공을 위협하고
주인공을 돕는 조력자로 아카사카 너트메그와 아카사카 시나몬이 등장하며 1q84에서도 등장하는 우시카와가 와타야 노보루의 전서구로 나온다.

그 외에도 사람의 가죽을 벗겨내는 보리스라던지 주인공에게 음란한 전화를 거는 정체불명의 여자라던지 하루키의 소설치고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등장한다.
그 와중에 이야기의 흐름의 정점에 서 있는 '우물' 의 존재를 각인시키기 위해 예전 일본이 치룬 전쟁 이야기가 많은 분량으로 등장하는데,
정말이지 지루해서 죽을뻔 했다.
전쟁을 일으킨 당사자이자 패전국이 된 일본의 시점에선 아무것도 듣기 싫고 그 어떤 정당성이라도 갖지 못하는게 맞는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물론 하루키가 본작에서 전쟁을 찬양한다던지 미화시키는 바보같은 짓은 하지 않는다.
위에서도 말 했듯 '우물' 의 존재를 독자에게 '각인' 시키기 위해 사용하는데, 그 부분을 덜어낸다고 해도 이렇다할 위화감은 없을거다.

본작은 하루키의 장편소설들 중에 가장 어렵고 모호한 소설이라고 한다(분량도 꽤 많고).
다른건 몰라도 '상실의 시대' 의 가볍지만 어딘가 뒤틀린 분위기보다 한층 더 어둡고 질척해진 이야기가 지루하기 짝이 없는 전쟁 이야기와 맞물려
읽는데 많은 집중과 시간을 할애하게 함은 분명하다.

하지만 몽환적인 장치로 주인공으로 하여금 '뭔가' 를 성취하게 해 주는 우물의 존재는 '역시 하루키 답다' 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그의 뭇 소설 속 남자 주인공들이 지니고 있는 '레종데트르 상실' 로 시작해 성(性) 의 궁극적 의미를 찾기도 하고,
인간의 존재 가치는 어디에 있는건지 진지하게 모색하기도 하는 대체적으로 어두운 소설이다.



+
하지만 1q84를 먼저 읽은 나로썬 '우시카와' 가 등장할때 즈음엔 정말 반가웠지.


++
전쟁씬에서 집중하지 않으면 나처럼 종종 갈피를 못잡게 될거야.




















1부 도둑까치 편

『한 인간이 다른 한 인간에 대하여 완전히 이해한다는 것은 과연 가능한 일일까?
즉 누군가를 알기 위해 오랜 시간 동안 진지하게 노력을 거듭하면 상대의 본질에 얼마만큼 가까이 갈 수 있을까? 우리는 우리가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상대에 관하여 그에게 정말로 무엇이 중요한지를 알고 있는 것일까?

(중략)

결혼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 나는 장인의 입에서 직접 그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인간은 본디 평등하게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고 그는 말했다. 인간이 평등하다는 것은 학교에서 표면상 가르치고 있는 것일 뿐, 그런 건 잠꼬대에 지나지 않는다. 일본이라는 나라는 구조적으로는 민주 국가지만, 그와 동시에 치열한 약육강식의 계급 사회로서, 엘리트가 되지 않으면 이 나라에서 살 의미 같은 건 거의 없다. 다만 맷돌 안으로 서서히 짓이겨져갈 뿐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한 계단이라도 더 위로 오르려 한다. 그것은 지극히 건전한 욕망인 것이다. 사람들이 만일 그 욕망을 잃어버린다면 이 나라는 멸망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2부 예언하는 새 편

『"그건 그렇겠네요." 하고 가노 마루타는 동의했다. "그러나 오카다 씨, 아무쪼록 조심하세요, 스스로 증상을 안다는 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니까요. 예를 들어 사람은 자기 얼굴을 자신의 눈으로 직접 보는 건 불가능하죠. 거우레 비추어 그 반영反映을 볼 수밖에 없어요. 그리고 우리는 거울에 비치 형상이 옳다고 경.험.적.으로 믿을 뿐이죠. 조심하세요."

(중략)

어쩌면 나는 패배할지도 모른다. 나는 잃어버릴지도 모른다. 어디에도 이르지 못할지도 모른다. 있는 힘을 다했지만 이미 모든 것을 돌이킬 수 없을 만큼 잃어버린 뒤일지도 모른다. 나는 단지 폐허의 재를 허무하게 손에 쥐고 있는 것이고, 그 사실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나 혼자뿐인지도 모른다. 내 편에 내기를 걸 사람은 아무도 없을지도 모른다. "상관없어." 하고 나는 작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거기에 있는 누군가를 향해 말했다. "이것만은 분명해. 적어도 나에게는 기다려야 할 것이 있고, 찾아내야 할 것이 있어."』


3부 새잡이꾼 편Ⅰ~Ⅱ

『"그러고 보니 나는 일 년쯤 전에는 가노 마루타와 가노 구레타라는 사람들과 아는 사이가 됐었어요." 내가 말했다. "덕분에 꽤 많은 일을 겪었지요. 지금은 두 사람 다 없습니다만."
너트메그는 고개를 약간 까딱였을 뿐 내 말에 대해서는 아무런 감상도 말하지 않았다.
"어디론가 사라져버렸어요." 하고 나는 힘없이 덧붙여 말했다.
"마치 여름날의 아침 이슬처럼, 혹은 새벽녘의 별처럼."

(중략)

좋은 뉴스는 언제나 작은 목소리로 말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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