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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군 Sep 30. 2016

버핏과의 저녁식사

박민규

이건 뭔가 싶었다.

박민규의 단편 신작인가 했는데 해외 독자들을 위해 한글과 영어가 함께 쓰여져 있는 책이었다.
한국인인 나는 당연히 '굳이 영어 부분은 필요 없는데' 라고 읊조렸지만 글로벌한 무대로 진출하고픈 국내 문학시장의 바램은
영어를 좋아는 하지만 진지하게 배우기는 싫은 나에게 결제를 원했다.
이 책을 어서 장바구니로 가져가길 원했고 배송비가 아깝다면 가까운 교보로 바로드림이라도 하길 원했다.

그래서 했다.

왜?

박민규니까.

예전 출판사에 다니던 때 나보다 세살쯤인가 어린 여자 선배가 회사에 있었다. 귀염상은 아니지만 나름 츤데레? 같은 그런 사람(회사 경리가 그녀의 물 마시는 얼굴이 가관이라고 했었는데 직접 본적은 한번도 없는거 같다).
그녀가 편집 교정을 봐주면서 늘 지적하는 부분이 있었는데, '문장 위-아래(행간) 가 너무 떨어져 있으면 벙벙하다' 라는 말을 자주 하곤 했다(그만큼 내가 편집한 단락들은 자주 벙벙했고).
그 표현이 딱 어울릴만큼 이 책의 텍스트 들은 심히 벙벙하다.

왜 얇디 얇은 이 책의 소비자 가격이 7,500원인지는 읽어보면 안다.

그 벙벙한 텍스트들과 (출판사의 글로벌한 포부는 차치하고)괜히 들어가, 페이지 한 바닥 전체를 일관성있게 차지하고 있는 영어 단락들 마저도 무시될 만큼 재미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글을 쓰고 있었는데 '와 이렇게 써야 되는데' 라는 말이 입 밖으로 튀어나왔던 기억이다.

책의 뒷편에 한 자리 차지하고 앉아있는 이 소설의 '해설' 은, 소설보다 더 소설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작가의 의도가 어찌됐든 자본주의의 화신(?) 으로 불리우는 '워렌 버핏(warren buffett)' 과 자본주의와 전혀 개연성이 없어 보이는 평범한 한국인 청년의 저녁식사 자리는, 산으로 가다 못해 우주로 날아갈것만 같은 작금의 한국(과 세계) 사회에 모종의 경종을 울릴만 한 작품이다.

얇디 얇은 책의 두께처럼 그 어떤 생각의 여지 조차도 남기지 못한채 아니, 외국인들 손에 들려보지도 못한채(표지가 너무 거만해) 끝날지도 모르는 글로벌한 프로젝트지만, 꽤 의미깊은 시도같다.
















『워싱턴에서의 간담은 그야말로 무어라 말할 수 없는 성질의 것이었다. 아내 몰래 전 재산을 주식으로 날려먹은 투자자처럼 대통령은 불안하고 침통한 얼굴이었다. 대체 무슨 일입니까? 단둘이 남은 집무실에서 버핏은 신중한 투로 질문을 던졌다. 잠시 아랫입술을 깨물던 대통령이 곧이곧대로 이 상황을 이해해 주셔야 합니다. 하고 말문을 열었다. 아마도 반(反)월가 시위에 관한 게 아닐까 싶었던 버핏의 예상이 보기 좋게 미끄러지는 순간이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버핏의 미간에 폭포수 같은 주름이 늘기 시작했다. 그 순간 홀연히 신의 손길이 강림하사 나이아가라를 통째 옮겨와 그의 이마에 박아둔 듯하였다. 한 시간이 넘도록 설명은 이어졌다. 요약컨데 지금, 그.들.이. 오.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어쩌면 좋겠소? 라는 대통령의 물음에 하마터면 버핏은

그 얘기를 왜

지금에 와서야 하는 겁니까? 라고 말할 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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