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없이 피는 꽃

by realnorth

어떤 금요일이었다.

우울한 감정이 뒤섞인 채로, 술자리의 가벼운 웃음들을 안주삼아 술잔을 몇차례 비워냈다.

그러자 알싸한 취기가 아무것도 생각하지 말라고 내게 와 속삭였다.


답답했다. 깨어 있어야만 할 것 같았다.

푸른고 거대한 바다의 한쪽 구석에서 남몰래 보글보글 올라오는 공기방울들이, 나를 잊지 말라며 가느다란 목소리로 내게 손짓했다. 하지만 바다는 너무나도 푸르고 너무나도 깊어서, 나는 그 공기방울들을 잊고는 이내 또 다시 술잔을 비워내곤 했다.

태평양이 이러할까? 너무도 깊고 푸른 태평양은 어느 한 구석에서 별다른 이유도 없이 보글거리는 숨소리까지는 들을 수 없다.우리는 그렇게 간헐적으로 올라오는 생각과 느낌들을 애써 무시하면서 술잔을 비워나갔다.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잘못이 누구에게 있는지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잘못이 너무도 오랜시간 반복되고, 상황은 개선되지 않았고, 그러다보니 이젠 드디어 무엇이 잘못이었는지 헷갈리게 된 것이었다.


죄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누가 죄인인지도 명확하다고 생각했다.

그 죄인으로 하여금 죄를 짓게 만든 시스템의 문제점도 무엇인지 분명하게 인지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죄인은 그저 너무나도 악한 사람이거나, 혹은 자신을 죄인으로 만들어가는 시스템에 저항한번 해보지 못하고 순결을 내어준 무지한 자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무엇이 죄인지 알수 없게 되어버렸다.


이건 이를테면 무엇때문에 야근을 하게 되었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알수 없게 되어버린 상황과 비슷하다. 처음에는 상사의 감정과 욕구에 부응하기 위해서 야근을 시작했을 수 있다. 혹은 정말 내일까지 꼭 끝내야만 하는 다급하고 중대한 업무 때문에 야근을 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어떤 경우에는 열심히 일하는 것처럼 보여야 하니까 저녁을 먹으러 가자는 상사의 요구에 어쩔수없이 응하기 위해 그저 포대자루처럼 자리만 지키는 야근을 하는 경우도 있다. 이 모든 상황들에 대해서 나는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었고, 어떤 의미에서는 적응하고 있었다. 적어도 그런 판단을이 모든 경우에 명확하기만 했었다. 그런데 이제는 야근을 하는 내가 나인지, 내가 야근 자체인건지, 야근의 정의가 무엇인지, 야근이라는 것을 정의라도 할수 있는 것인지에 대해서 근본적인 의구심이 드는 것이다.


한주간 일을 굉장히 열심히 했다고 생각했는데, 문득 내가 한 일들이 기억나지 않았다.

그래서 한잔을 비워냈는데,


오늘 왜 술을 마시게 되었는지가 기억나지 않았다.

그래서 한잔을 비워냈는데,


술을 마시면서 가슴속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공기방울이 도대체 무엇이었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그래서 한잔을 비워냈는데,


태평양을 생각하면서 이 공기방울들은 별게 아니라고 생각하려고 기를 썼는데,

계속 공기방울이 올라오면서 가슴이 답답하고 간지러워서,

그래서 한잔을 비워냈는데,


그런데 그때 문득 아내의 얼굴이 떠올랐다. 생각해보니 아내는 내일 아침 일찍 친구들과 여행을 갈 예정이라고 했다. 아침에 배웅을 해주기로 약속했기 때문에, 서둘러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서둘러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하지만, 이미 서두르기엔 너무 늦어버린 뒤였다. 이미 날짜는 토요일을 가리키고 있었다.


시계 바늘은 빙글빙글 돌아갔고, 돌아가는 시계바늘 사이로 신호등 불빛이 춤을추며 바뀌었다. 신호등이 바뀌자, 택시는 앞으로 굴렀고, 한두바퀴쯤 구르자 나는 집앞에 도착해 있었다.


내가 왔다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아내는 잠이 들어 있었고, 그 이후로는 모든 것이 희미한 채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잘 움직여지지 않는 다리를 움직여 우여곡절 끝에 소파 한 구석에 몸을 뉘었다. 일주일 전부터 아내가 바꿔달라고 했던 거실 형광등이 깜빡이며 빙글거렸다. 생각해보니 아침에 아내를 공항에 데려다 주고는 어머니를 만나러 가기로 했다. 마음이 무거웠다.


어머니의 심정을 알것 같아서 마음이 무거운걸까. 아니면, 어머니와 어떤 대화를 하게 될지 짐작이 되어서 마음이 무거운걸까. 아니면 취기 탓일까. 아니면 정작 무거운 것은 내 눈꺼풀이었던 걸까. 무엇이 그렇게 무거운지 나는 끝내 밝혀내지 못했고, 그대로 잠이 들었다.


다음날 아침 만나본 어머니는 그동안 잘 지내고 계셨던 모양이다.

아니 잘 지냈다기 보다는, 어쨌든 건강하게 계셨다.

아니 건강하게 지냈다기 보다는, 어쨌든 잘 계셨다.


어떤 목적과 이유에서, 그리고 어떻게 구성된 존재의 이유들을 기반으로 계셨는지는 잘 모르겠다. 어쨌든 어머니는 계셨다. 나를 사랑하는 어머니는, 그저 나를 사랑하는 어머니로서만 내 앞에 계셨다. 어머니는 늘 어머니로서 내 앞에 계셨다. 어머니는 자신의 감정과 일상을 정의하는 수많은 사건들과 이유들로부터 거리를 둔 채, 내 앞에서는 언제나 어머니이기만 했다.


어머니에게도 분명 슬프거나 괴로운 날이 있었을 것이고, 아름답고 감격스러운 날들이 있었을 것이다.


들판의 꽃들이 도대체 어떻게 저렇게 아름다울 수 있는지,

도대체 어떻게 저렇게 피어날 수 있는지,

그런데 왜 꼭 피어나야만 했는지,

피어날 준비가 다 되어서 피어난 것인지,

앞으로 얼마나 피어나 있을 예정인지,

나는 그런 것들을 도무지 알 수 없다.


들판에 피어나는 꽃들은, 어떤 이유에서 왜 피어나는가와는 관계없이, 이미 피어있기 때문에 "이미" 아름답게 존재한다.꽃이 피어나기 위해서 어떤 노력을 해야만 했고, 어떤 희생을 했어야 했는지 나로서는 알 방도가 없다.


나는 어머니가 어떻게 어머니가 될 수 있었고,

왜 나의 어머니가 되었으며,

나의 어머니가 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만 했고,

어머니가 나의 어머니다울수 있기 위해서 무얼 포기해야 했는지 알지 못한다.


어머니는 그렇게, 내가 다 알수는 없는 거리에서, 나를 반겼다.

아니 반겼다기 보다는, 그저 맞이했다.


나의 어머니는 경제적으로 큰 어려움이 없고, 건강하다.

그러나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삶을 비추는 자신만의 햇살을 가지고 있고,

자신의 내면을 짓누르는 자신만의 그늘을 가지고 있다.


누구나 그렇다. 그래서 우리는 누군가에게 이야기를 해야 한다. 대화는 우리를 편안하게 하고, 마음을 안정시킨다. 대화는 우리를 불명확한 경계 위를 오가는 불안과 공포, 슬픔과 격정으로부터 떼어놓는다. 그리고 대화를 통해 우리는 우리 안의 불안과 공포를 정면으로 마주할 수 있게 된다.


살기 싫을 때마다,

삶의 이유를 찾을 수 없을 때마다,

격정적인 사람들과 우악스러운 사람들 사이에서 지쳐버렸을 때마다,

천박하고 시끄러운 사람들 사이에서 아무런 말도 하고 싶지 않았을 때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 때문에 사는 것이 지겨워졌을 때마다,

그리고 나 역시 그 사람들과 그리 크게 다르지 않다는걸 알게 되어 나 자신에게 실망스러웠을 때마다,

그때마다 어머니는 내게 식사를 준비해주셨다.

그리고 그런 날이 아닐 때에도, 어머니는 내게 늘 식사를 준비해 주셨다.


살며시 스며들듯 조금씩 차오르다가,

마침내는 가득해져서,

마찬가지로 조금씩 흘러넘치는,

그런 충만한 우물처럼,


어머니는 늘 내게,

그토록 차오르는 사랑으로,

생명력 넘치는 반찬을 권하면서,

삶은 살아갈만 한 것이라고,

인생을 열심히 살아가야 한다고,

그리고 너는 할 수 있다고,

그리고 나는 너를 사랑한다고,

그렇게 온몸으로 말을 건네온 것이다.


기억도 하지 못할 수많은 날들 동안,

어머니는 그렇게,

반찬으로 말을 걸어왔다.


나는 무엇으로 어머니에게 말을 걸어야 할까.

우리는 대화가 필요했다.

어머니는 대화가 필요했다.

그리고 내일은 내가 어머니에게 말을 건네야 할 차례였다.


하지만 나는 말을 건넬 준비가 되었을까?

무슨 말부터 꺼내야 할까.

나는 어머니에게 말을 건네도 될 만한 자격이 있을까?

나는 어머니를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자랐을까?

나는 어떤 말들을 준비해야 할까?

그런데 나는 왜 그런 생각을 했을까?

어머니랑 대화하는게 부담스럽거나 불편했을까?

아니면, 대화하는 것 이외에 해줄 수 있는게 별로 없는 것 같아서 미안한 마음에 짓눌렷을까?


하지만, 들판에는 이유없이 꽃들이 피어난다.

이렇게 추운 겨울도 어차피 시간문제일 뿐이다.

어차피 겨울은 지나가버리지 않았던가.


꽃들은 피어나야 할 이유를 스스로 증명해 보인 뒤에야 피어나는 것이 아니라.

"이미 피어나 있다는 사실"로서 "피어나야만 했었다"는 점을 드러낸다.

강변하지 않고, 설득하지 않고, 그저 피어나야만 했던 과거를 드러낼 뿐이다.

꽃들은 피어나기 위해 어떤 것을 증명하고 이겨낸 것이 아니라,

피어났기 때문에 어떤 것을 이겨냈다.


어쩌면 나는 작은 말 몇마디 만으로도 어머니를 더 아름답게 할 수 있지 않을까.

아니 어쩌면 말들로 누군가를 아름답게 하기 보다는,

그와 함께 보내는 시간들을 아름다운 말들로 채움으로써,

그와 함께하는 시간을 가치있게 만들어갈 수 있는 것 아닐까.


아니 어쩌면 나의 작은 말들은,

어머니가 어머니로서 계셨던 것처럼,

나도 아들로서 어머니 곁에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게 아닐까.


우리의 대화가 은하수처럼 들판 위를 피어날때,

어쩌면 우리 둘 중 누군가 하나가 먼저 사라진다 하더라도,

그날의 기억과,

우리들의 아름다운 시간은 영원할 수 있는것 아닐까.

어쩌면 우리의 존재보다도, 우리들이 함께하는 시간속에서 나누는 우리의 말들이,

오히려 더 영원하고 가치있는 것은 아닐까.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조금은 아프고,

조금은 행복하고,

조금은 안쓰럽고,

조금은 든든하고,

조금은 포근한,

그런 은하수가 우리 두 사람 사이를 흘렀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가던 차 안에서 흘러나오던 오래된 옛 노래들은,

어쩐지 눈가가 촉촉해진 나에게 적절하고 아름다운 각주가 되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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