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면의 거울을 찾아서

삶의 깊이와 성숙에 대한 고찰

by 리얼팔

살면서 자신의 나이를 의식하는 순간이 얼마나 될까. 가장 최근에 나와 나이차이가 얼마나지 않는 지인의 갑작스러운 별세 소식을 접했을 때 아주 잠깐 내 나이는 얼마지? 하고는 내 나이 오십하고도 절반이 넘게 지났다는 걸 새삼 깨달았던 기억이 있다. '벌써 내가 이렇게 나이가 들었나?' 하는 생각과 함께 '나이는 들었지만 생각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똑같은 것 같은데…' 혼자말을 중얼거린후, 늘상 하던대로 더 깊이 생각하지 않고 하던 일로 돌아간다.

우리 몸은 세월의 흐름에 따라 명확하게 변한다. 어릴 적 약하고 힘이 없던 근육과 뼈가 자람에 따라 키가 커지며, 세상을 살기에 적당한 몸으로 성장한다. 청년기를 지나 장년기에 접어들면 더는 성장하지 않지만, 대신 노련미가 더해지는 '성숙'을 경험한다. 그러나 육체는 이 시기를 기점으로 서서히 쇠퇴기에 접어든다. 노년기가 되면 기능이 떨어지고, 주름이 생기며 탄력을 잃게 되는데, 이러한 육신의 쇠퇴는 거울을 비추어 보며 명확하게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의 내면은 어떨까? 어릴 적의 내면, 20년 전의 청년 시절 내면, 그리고 장년기 내면은 어떻게 변해갈까? 바뀌기는 하는 것일까? 내면의 변화는 육체적인 변화처럼 확실하게 확인할 방법이 없다. 우리는 자신의 내면이 어릴 적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느끼게되는데, 심리학적 연구에 따르면,'평균 이상 효과(above average effect)' '통제감의 환상(illusion of control)'같은 인지적편향에 빠지게되고, 이러한 인지적 편향은 내면의 변화를 객관적으로 인지하는 것을 방해하는 무의식적인 장치로 작동한다고 한다.

내면의 세계는 뇌 기능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뇌에서 일어나는 모든 화학 작용이 우리의 내면적 사고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또한 뇌는 신체의 일부로 시간이 흐르면서 노화되는 것은 당연하다. 뇌의 인지 기능은 빠르면 45세부터 감소하기 시작하고 , 65세 이후에는 뇌 인지 능력의 감소 폭이 특히 커진다.

하지만 뇌의 노화는 더 이상 거스를 수 없는 숙명이 아니다. 뇌는 새로운 경험과 학습을 통해 구조와 기능을 변화시키는 '가소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꾸준히 뇌를 자극하고 건강한 생활습관을 유지하면 뇌의 노화를 늦추거나 일부 기능을 개선할 수도 있다. 뇌 기능이 저하되더라도 지식과 언어 능력과 관련된 지능은 70세 이후에도 완만하게 둔화된다고 한다.


내면이 어리다는 것은 육체적인 미성숙과는 약간 다른 개념의, 지식과 경험 그리고 정보의 부족으로 인해 미지의 세계에 대한 두려움이 큰 상태로 이는 내면의 미성숙을 나타내는 중요한 특징 중 하나일 것이다. 어릴 적의 나를 회상해 보면 세상에 대한 정보와 지식이 부족해서 이것에서 비롯된 두려움이 많았다. 어릴적 살던 집 골목길은 내 세상의 전부였고, 그 골목길을 벗어난 모퉁이 너머의 세상은 미지의 세계이자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부모님과 헤어지는 것이란 세상을 잃는 것과 같은 의미였다. 시간이 흘러 국민학교에 입학하고, 중고등학교를 버스를 타고 다니며, 사회로 나와 해외여행을 하며 경험이 쌓이자, 세상은 확장되고 과거의 두려움은 사라졌다. 내면이 성장한 것이다. 이렇듯 우리의 지식과 경험이 쌓일수록 내면은 점차 성장하는 것이다.


단순히 지식과 정보, 경험이 많아지는 것이 과연 내면의 성장과 성숙을 의미할까? 나는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진정한 내면의 성숙을 판단하는 또 다른 중요한 지표는 바로 관심의 방향인 것 같다. 즉, 내 내면이 ‘나’에게만 집중되어 있는지, 아니면 점차 ‘주변’으로 확장되고 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다. 어린아이들은 자기 장난감을 친구에게 절대 주지 않는다. “이건 내 거야”라고 외치며, 오직 자기 자신만 생각하는 내면 상태는 아직 어린 상태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내면이 성숙해지면, 받는 기쁨뿐만 아니라 주는 기쁨도 알게 된다. 나를 위해 일하다가도 다른 사람이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며 보람을 느끼고, 점차 이타적인 성향이 커지는 것이다. 따라서 내면의 성장은 단순히 지식이나 경험이 늘어나는 것을 넘어, 나를 향했던 시선이 바깥을 향하게 되는 수준의 차이로 판단할 수 있을 것 같다. 이것이 바로 내면 성숙의 중요한 지표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우리의 내면을 비춰볼 수 있는 '거울'은 과연 무엇일까?


첫 번째 거울은 타인이다. 우리는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상상하고, 그 상상 속에서 형성된 자아상을 받아들인다. 따라서 타인과 진솔한 관계를 맺고 그들의 반응을 주의 깊게 살피는 것은 내면의 상태를 객관적으로 파악하는 중요한 방법이 될 수 있다. 내가 타인을 배려하고 이타적인 행동을 할 때, 그들의 긍정적인 반응과 깊고 풍성한 관계를 만들어 갈 수 있다면 내 내면이 성숙하고 있다는 증거가 된다.

두 번째 거울은 글쓰기다.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글로 정리하는 것은 내면을 객관적으로 들여다보는 강력한 도구가 된다. 마치 일기를 쓰듯, 자신의 행동과 동기를 기록하고 성찰하는 과정을 통해 미처 인식하지 못했던 내면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왜 그런 감정을 느꼈는지,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아가는 과정 자체가 내면의 성숙을 이끄는 행위인 것이다.


세 번째 거울은 역경과 고난이다. 고난은 단순히 고통스러운 경험이 아니라, 우리의 내면을 시험하고 단련시키는 기회다. 어려운 상황에 부딪혔을 때, 내가 이기심에 사로잡히는지, 아니면 타인을 배려하고 함께 이겨내려 노력하는지를 통해 내면의 성숙도를 확인할 수 있다. 역경 속에서 발휘되는 인내와 공감 능력은 그 어떤 지식보다 값진 내면의 자산이 된다.

이처럼 우리의 내면을 비춰볼 수 있는 거울은 특별한 곳에 있지 않다. 진실한 관계 속에서 타인을 살피고 배려하며, 글쓰기를 통해 자신을 성찰하며, 삶의 역경을 마주하는 태도 자체가 바로 내면을 가꾸고 성장시키는 일이다. 우리의 내면은 마치 정원과 같아서, 끊임없이 돌보고 가꿔야 아름다운 결실을 맺을 수 있다.

내가 던진 질문에 대한 답은 이미 내 안에 있었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겉모습이 변하는 것을 거울로 확인하듯, 우리는 타인과의 관계, 글쓰기, 그리고 역경 속의 삶의 태도에서 내면의 깊이를 깨달아간다. 이렇게 내면의 성숙을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는다면, 우리는 단순히 나이를 먹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원숙해지는 삶을 살게 될 것이다.

수, 토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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