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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야 Nov 29. 2018

가장 현실적인 공포 <도어락>

  *용산CGV에서 열린 시사회에 참석하였습니다.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열쇠가 없어 집에 들어가지 못한 날이 많았다. 그럴 때면 가족들이 돌아올 때까지 계단에 앉아 시간을 보내곤 했다. 어떤 날은 아래층 아주머니께서 전화를 빌려주어 엄마에게 연락하기도 했고, 어떤 날은 하염없이 앉아서 졸기도 했다. 도어락이 없던 시절의 이야기다.     

 

요즘은 어디에서나 도어락을 볼 수 있다. 집은 물론이요, 학교나 연구실, 회사 등에서도 열쇠 대신 간편한 도어락이 설치되어 있다. 비밀번호만 알면 들어갈 수 있어 편리하다는 장점이 있지만 타인에게 쉽게 노출될 수 있다는 단점을 가지고 있다. 영화 <도어락>은 혼자 사는 원룸의 도어락이 열리면서 생기는 스릴러다.      



경민의 하루 일과는 일정하게 반복된다. 아침에 일어나 씻고, 물건들을 각도 맞추어 정리하고, 집 안에 남자가 있는 것처럼 꾸며 놓는다. 이는 혼자 사는 여성이 위험을 조금이라도 피하기 위한 방법이다. 출퇴근을 반복하는 경민의 하루가 어그러지기 시작한 것은 도어락 소리 때문이다. 누군가 도어락을 열려고 한 흔적이 있지만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으니 잡을 수 없다고만 한다. 경민은 불안하다. 게다가 실적을 위해 고객에게 친절히 대한 경민은 스토킹을 당하기 시작한다. 그는 신문에 흔히 등장하는 화법을 사용한다. 니가 먼저, 나한테, 웃었잖아, 꼬리 쳤잖아. 경민의 불안함은 날로 커져간다.     


그러는 와중에 경민의 방에서 살인사건까지 일어난다. 잠시 집을 비운 그 잠깐 사이에. 그녀는 직접 범인을 잡겠다고 나선다. 두렵고 혼란스러운 경민을 대신해 싸우고 입장을 설명해주는 건 친구인 효주다. 그녀는 든든하게 경민의 편에서 힘이 되어 준다.      


형사의 도움으로 집안에 CCTV를 설치한 경민은 마침내 범인과 마주한다. 아무도 없는 경민의 집에 자연스럽게 도어락의 비밀번호를 열고 들어와 침대 밑에 숨어 그녀가 잠드는 시간까지 기다리는 범인. 힘과 체격 등 신체적 조건이 불리한 상황이지만 경민은 포기하지 않는다. 어두운 벽장 속, 마치 범인이 숨어있던 침대 밑 같은 공간에서 힘겨운 싸움을 통해 스스로를 지킨다.      




혼자 사는 사람이 느끼는 공포

소위 말하는 하이퍼리얼리즘이다. 혼자 사는 여성 중에 이런 걱정을 한 번도 하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가족과 함께 살고 있는 나 역시도 이런 생각을 하며 불안에 떨 때가 있으니 1인 가구의 경우엔 불안감이 더욱 클 것이다. 경민의 삶에는 공감할 수 있는 요소들이 많다. 집안에 남성이 있는 것처럼 속옷과 구두 등을 가져다 놓거나 불안할 때 마다 도어락 비밀번호 바꾸기, 도어락에 지문을 통해 번호를 들킬까 닦는 모습 등이 익숙하다. 그 밖에도 계약직인 경민의 고용불안과 집 안에 낯선 남성이 있을 때 드는 긴장감, 친절을 애정이라 착각하며 달려드는 사람 등 익숙한 공포를 연달아 보여주며 몰입도를 높인다.     

 


용기 있는 두 여자의 파트너십 

경민은 ‘착한 여자’다. 눈앞에서 실적을 빼앗기고도 미소 짓고, 스토킹을 당해도 화 한 번 제대로 내지 못한다. 어찌 보면 답답한 인물이지만 그런 ‘경민’의 태도가 어쩐지 익숙하다. 경찰은 시종일관 경민을 예민한 사람 취급한다. 위험을 느껴도 사건이 일어나지 않으면 아무 도움도 받을 수 없는 것이 현재의 법이다. 직접 범인을 잡기 위해 나선 경민은 예상치 못한 무서운 광경을 보게 된다. 범인과 마주하는 상황에서 경민은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그게 당연하다. 극도의 공포를 겪은 경민이 주먹 쥐고 범인에게 달려든다면 갑자기 장르는 액션이 될지도 모른다.      


위기의 상황에서 속 시원하게 나타나는 사람은 친구인 효주다. 효주는 영화 내내 경민을 위해 몸을 사리지 않는다. 두려움에 제대로 말도 못하는 상황이 오면 옆에서 대변해주기도 하고, 적극적으로 나서며 경민의 힘이 되어준다. 자칫 경민을 탓할 수 있는 상황에서도 효주는 원인제공자에게 제대로 화살을 겨눈다. 가장 이상적인 친구이자 조력자로 영화의 ‘사이다’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얼마 전, 도어락을 바꾸었다. 비밀번호를 누를 때 나는 시끄러운 소리를 없애달라고 하자, 아저씨는 조심스레 추천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걸 악용해 범죄가 일어날지도 모른다며 누르는 소리가 들리는 게 안전할 것이라 말했다. <도어락>을 본 지금, 소리가 난다고 해서 범죄를 예방할 수 있는 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또한 가장 편안한 기반이 되어야 할 ‘집’이라는 공간이 더 이상 안전하지 못하다는 것도. 연일 쏟아지는 신문기사들에서 막연하게 느꼈던 감정을 구체적으로 느낄 수 있는 영화였다.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에 대해 상반된 반응을 보인다. 스릴 넘치는 영화라고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혼자 사는 여성의 공포를 소비하는 것이 걱정된다는 우려도 있다. 배우도 인터뷰를 하며 1인 가구에게는 차마 추천을 못한다는 이야기를 꺼내기도 했다. 그만큼 우리 사회에 <도어락>과 같은 공포가 충분히 일어날 수 있고 이미 일어난 사건이기 때문이다. 갑자기 확! 나타나 심장을 가라앉게 만드는 장면이 많지 않더라도 시종일관 손가락 틈으로 영화를 감상하게 된 것도 이와 같다.      


우려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를 추천한다. 혐오의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모든 게 다 유난이 된다. 영화가 조금만 불친절했어도 우리는 흔한 반응을 접했을지도 모른다. 누군가 문고리를 잡아당겨요. 실수겠지. 낯선 사람이 도어락을 열어요. 착각이겠죠. 담배꽁초가 떨어져 있어요. 별 걸 가지고 난리야. 집에 찾아온 상사에게 어떻게 주소를 알았냐고 물었더니 대답을 안 해서 일단 도망쳤어요. 왜 범죄자 취급해. 스토킹을 당하고 있어요. 이건 가벼운 벌금형입니다. 그러나 영화는 그런 상황들이 얼마나 공포스럽게 다가오는 지 경민의 시선에서 설명한다. 유난이라 치부했던 일들이 어떤 사람들에게는 두려움이 된다는 것을 알려주는 영화라고 보았다.      


영화 <도어락>을 통해 경각심을 가져야 할 건 혼자 사는 사람이 아니라 사회다. 혼자 사는 사람들은 충분히 걱정과 불안을 안고 산다. 이 영화는 그런 사람들의 두려움을 짚어냈을 뿐이다. 피해자인 경민을 오히려 귀찮게 여기거나 누구 하나 죽기 전에는 조치를 취할 수 없는 현재의 법 등 허점 있는 사회가 변해야 한다.      


영화가 끝난 후에도 긴장은 쉬이 풀리지 않는다. 우리 주변엔 많은 ‘경민’들이 있다. 많은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그들에게 더 이상의 불안이 없는 사회가 되길 바란다.    

 

+ 여담. 언론시사회 인터뷰를 봤다. 결혼장려 영화라니. 앞에서 나온 좋은 인터뷰들이 무색해지는 농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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