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우상> 리뷰.
*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무대에 서면 쏟아지는 스포트라이트와 박수갈채를 보내는 관객들, 언론에 비춰지는 모습들과 연일 오르내리는 포털사이트 뉴스, 많은 팬들의 지지를 받기도 하고 그들의 목표이자 이상이 되는 존재가 바로 ‘우상’이 아닐까. 누구나 한 번쯤은 내가 그렇게 되리라는 걸 꿈꾸기도 하고, 그런 우상의 존재를 마음속에 품고 살기도 한다. 그것은 지쳐 있던 삶의 동력이 되어주기도 하지만 반대의 경우도 있다. 지나친 우상화의 파멸을 말하는 영화, <우상>이다.
이 이야기는 한 남자의 고백으로부터 시작한다. 정신지체가 있는 아들에 대한 책임감이 남다른 남자, ‘중식(설경구)’은 신혼여행을 간 아들이 죽고 며느리가 실종되었다는 소식을 듣는다. 게다가 며느리 ‘련화(천우희)’는 임신한 상태이니 중식의 걱정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는 흥신소에 부탁해서 련화를 찾는다.
련화를 찾는 사람은 중식뿐만이 아니다. 청렴한 이미지의 도의원, ‘구명회(한석규)’ 역시 그날의 진실이 궁금하다. 명회의 아들이 뺑소니 사고를 일으켜 중식의 아들을 죽인 것이다. 게다가 그를 집으로 끌고 왔을 당시, 중식의 아들 부남이 살아 있었다는 사실까지 알게 된다. 시체유기보다는 사고여야 아들의 형량이 줄어들고, 자신의 이미지를 지킬 수 있다. 명회는 그날, 목격자일지도 모르는 련화를 먼저 찾아낸다.
그러나 련화는 그 사고에 대해 관심이 없다. 하얼빈 출신(사실은 연변)의 불법체류자인 그녀는 안마소를 전전하며 살아왔다. 한국인이 되기 위해 부남과 결혼했으며 방해가 되면 사람을 죽이는 것도 서슴지 않는다. 련화는 자신을 찾기 위해 아낌없이 돈을 쓰고, 구치소에서 빼내기 위해 원수인 명회와 손을 잡았으며, 한국 국적을 취득하라고 혼인신고서까지 내민 시아버지 중식을 위해 흥신소 의뢰비를 갚아주고 싶어 한다. 물론 진짜 목적은 복수다.
중식은 명회를 위해 선거운동을 나선다. 명회의 도지사 선거는 거의 확정적이다. 그러나 사건을 조사하던 경찰은 그날 밤, 뺑소니 사건의 진실에 다가선다. 그 모든 진실의 가운데에는 며느리 ‘련화’가 있다. 련화는 그렇게도 지키려했던 자신의 목숨을 담보삼아 명회에게 복수하고, 중식은 폭탄테러를 일으키며 명회에게 복수한다.
세 사람의 우상
구명회는 우상이 되고 싶은 사람이다. 청렴한 이미지의 차기 도지사. 그 이미지를 유지하기 위해 아들을 자수시킨다. 사실은 아들의 시체유기를 감추기 위해 사고차량을 바꿔치기 하고, 피해자 가족인 중식을 이용해 선거운동까지 한다. 그렇게 해서 명회는 도지사가 된다. 비록 한 순간의 꿈일지라도. 오히려 가스 폭발 이후에 그는 완전한 이상에 다다른다. 얼굴에 화상을 간직한 채 방언 같은 연설을 늘어놓지만 찬양받는 존재. 알 수 없는 부르짖음을 해도 박수갈채를 받는 우상에 가까워진다.
유중식은 우상을 바라보는 사람이다. 가해자의 가족인 명회를 보고도 미워하기는커녕 점차 잘 보이고 싶어 한다. 그와 논쟁을 해서 좋을 것이 하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의 편에 선다. 처음엔 임신 중인 며느리를 구하기 위해서였지만 나중엔 적극적으로 선거 운동에 앞장서며 우상을 만드는 일에 동참한다. 가스 폭발로 며느리마저 잃고 중식은 광화문 이순신 동상의 폭탄테러를 감행하며 우상을 비웃는다. 누구보다도 우상을 떠받들었지만 어떠한 계기로 돌아서는 많은 ‘팬’들처럼 중식도 우상이었던 명회를 떠난다.
련화는 자신을 우상처럼 생각하는 사람이다. 버려진 아이들은 스스로를 구하기 위해 돈을 벌어 신분을 사고, 강해진다. 련화 역시 그런 환경에서 자라 처절한 생존본능을 지니게 되었다. 명회에게 납치를 당해도 틈을 노려 탈출하고, 그 와중에 경찰의 귀를 물어뜯어 위협하고, 킬러마저 잔인하게 죽여 버린다. 누군가에게 우상은 소중하게 보호하고 지켜야 할 존재다. 련화에게 우상은 자기 자신이다. 그런 자신을 지키기 위해 련화는 마지막까지 강하다.
받은 만큼 돌려준다
명회와 중식의 목적이 그날 밤 사고를 알아내는 일로 집중되고 있다면, 목적지에 다다라서부터는 련화의 독주가 시작된다. 그들이 찾는 조선족 ‘련화’는 그날 밤의 비밀을 간직한 미스터리한 여인이 아니다. 목격자의 역할도 하지 않는다. 그저 살아남기 위해 살인을 저지르고, 잃어버린 남편을 찾지 못해 냅다 도망가는 생존본능이 강한 여인이다. 무척이나 현실적이다.
심지어 뱃속의 아기를 보호하려는 듯한 태도나, 조곤조곤한 말투를 사용하여 신비감을 채워줄 생각도 없다. (많은 영화에서 보았던 모성애를 내세운 뻔한 결말을 안 봐서 좋음)
걘 받은 만큼 돌려주는 애예요.
라는 증언처럼, 련화는 자신이 당한 건 똑같이 해줘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다. 자신에게 말을 함부로 하는 명회의 어머니에게 입 조심하라며 칼을 들이대고, 명회가 자신을 납치했단 사실을 알게 되자 망설임 없이 그의 집으로 쳐들어간다. 등에 칼이 꽂혀 있어도 정신력으로 일어나더니, 그동안 살기 위해 발버둥 쳐놓고 그에게 엿 먹이기 위해 자기 목숨을 던져가며 명회에게 복수한다. 한마디로 생존본능 뛰어난 또라이 캐릭터라 영화에서 가장 임팩트 있었던 캐릭터였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말하듯 불친절한 영화였다. 일단 조연들의 대사가 전혀 들리지 않는다. 연변 사투리임을 감안하고 봐도 그렇다. 분명 한국어를 하는데 웅얼대서 뭐라고 하는지 못 알아들어서 놓치는 부분이 많았다. 복선으로 깐 대사나 상황 이해에 도움을 주는 대사 또한 모조리 알아들을 수 없어 끝나고 한참이나 복기해야 했다. 이미 올라온 리뷰에도 그렇고, 영화가 끝난 후 많은 관객들이 불만을 토로한 것만 봐도 대사 전달에 실패했음을 알 수 있다. 뭘 알아들을 수 있어야 해석을 할 수 있었을 텐데 아쉬울 따름.
그러나 특유의 뜨겁고 강렬한 톤이 처음부터 끝까지 유지된다는 점과 ‘련화’라는 매력 있는 캐릭터가 장점이다. 중간에 목이 잘리는 것, 화상 등의 장치들이 등장하지만 이들은 그다지 눈에 띄지 않는다. 배우들은 각자의 몫을 해냈고 이야기의 흐름도 좋았으나 어우러지지 않는다. 다소 산만한 분위기가 영화 전체를 감돈다. 후반부로 갈수록 긴장감이 들어야 하는 이야기인데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차라리 련화를 중심으로 한 스릴러였다면 더욱 재미있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만약 이 영화를 다시 보게 된다면 아마 놓쳤던 대사를 듣기 위해서가 아닐까...
p.s ‘입은 아이되오’가 정말 임팩트 있는데. 여러모로 아쉽지만 이거 하나로도 괜찮았다는 생각도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