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지트였던 노래방 ①
1990년도였나 1991년도였나 그 무렵 노래방이란 것이 등장했다. 그때만 해도 어른들이 술 마시러 가는 술집에서 가라오케 형식으로 되어 노래를 부를 수 있었지만 나 같은 청소년은 노래할 공간이 마땅히 없었다. 노래하는 것을 무척이나 좋아했던 나는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듯이 주말만 되면 동생과 오빠랑 함께 노래방을 갔다. 당시엔 중학생끼리는 출입을 제한했었기에 오빠와 함께 노래방을 갔었다.
처음 등장한 노래방은 요즘에 비하면 정말 넓었다. 5명 정도는 앉을 수 있는 형식이었고 신나면 일어나서 토끼춤을 출수도 있는 공간이었다. 이후 시간이 흐르면서 노래방도 점점 변화했다.
가장 큰 변화는 기술적인 부분과 노래방 책의 활용도였다. 취미가 좀 이상한 것 같기는 한데 나는 노래방을 가면 항상 녹음을 했다. 매번 입실하면서 녹음해 주세요. 하면 사장님이 퇴실할 때 녹음테이프를 챙겨주곤 하셨다. 물론 시간은 1시간만 녹음이 되는데 문제는 목이 1시간은 불러야 제대로 목이 터졌다. 집에 와선 노래방 테이프를 다시 재생하면서 아. 오늘 이 노래 잘 불렀는데 녹음이 안되었네 하면서 아쉬워했다는....
한번 가면 3시간은 기본으로 부르고 나오다 보니 매번 버벅거리게 불렀던 부분만 녹음되어 지금은 베란다 한편에 몇 박스를 차지한 노래방 테이프는 나와 동생, 내 친구들의 흑역사나 마찬가지다. 심지어 동생은 흑역사를 밝힐 수 없다며 결혼할 때 배우자가 들으면 안 된다고 안 가지고 갔다. 어머니는 저것 좀 치우면 안 되냐고 30년 가까이 말씀하시다가 이젠 포기하셨다.
노래방 브랜드는 아싸와 아리랑이 최초였는데 금영과 태진이 치고 나오면서 노래방기계 자체에서 녹음을 할수 있게 되었고 퇴실 전 본인의 메일을 입력하면 메일로 보내주는 서비스가 생겼다. 이후에는 메일뿐 만 아니라 핸드폰번호를 입력하면 보내주는 서비스도 생겼다. 근데 이게 은근히 귀찮아서 핸드폰에서 녹음 기능이 생긴 이후는 핸드폰으로 녹음을 했다.
그리고 간주점프와 마디점프, 1절 부르기 등 다양한 기능이 생겼다. 아주 혁신적이라 생각했으나 나한테는 별로인 기능이었다. 예전에 이런 기능이 없을 때는 간주시간도 허투루 쓰기 아까워서 별별 애드리브를 하거나 아니면 그 순간 같이 간 친구들하고 수다를 떨었다. 녹음테이프를 들으면 노래뿐만 아니라 그날 이야기한 내용이 있기에 아 내가 중, 고등 때 저런 얘기를 했구나 하면서 새삼 재밌고 놀라웠다. 뭔가 자연적으로 나의 일상이 기록된 느낌이랄까. 거의 주 5일을 갔으니 거의 일기 수준이다.
1절 부르기 기능도 별로다. 왜냐 나는 곡의 서사를 중요시하는데 정말 친한 친구들, 특히 노래방을 같이 다녔던 친구들은 중간에 곡을 끊거나 누가 더 많이 부르면 안 되기에 순서대로 곡을 예약할 정도였는데 이놈의 회사는 특히 회식 같은 자리에 가면 이상하게 지루하다고 1절만 하는 사람들이 있다. 특히 높으신 분들, 본인 곡들만 그러면 좋은데 남의 곡까지 1절에서 끊으라는 무언의 압박이 들어오거나 1절 버튼을 누르는 사람이 있으면 열불이 났던 기억이 많다.
노래방에는 노래방책이 있다. 지금은 그걸 보는 사람이 있을까 싶긴 한데 전에는 그 책은 필수였다. 곡의 검색기능도 따로 없었던 것 같고 일단 신곡이 나오면 바로 맨 뒷장에 있었기에 뒷장먼저 살펴서 못 불러본 노래를 부르다가 다시 앞장으로 돌아와서 곡을 찾아서 불렀다. 언젠가부터는 나온 곡들도 너무 많고 그걸 책으로 다 담아낼 수 없을 정도로 무수한 곡이 나와서 검색기능이 한몫 톡톡히 하는 것 같다.
쓰다 보니 너무 길어지는 것 같아서 다음 편에 이어서 쓸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