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역하면 뭐하지?

9. 병장 일기 2 (完)

by 리얼숲

2016년 3월부터 2017년 12월까지.

그때의 썼던 일기들.

그 일기들의 재구성.


2017년 11월 3일

-

호국훈련 2일 차.

새벽 4시30분에 기상했다.

광교산으로 향하며 어딘지 잘 모르는 곳에서 뱅뱅 돌았다.

군단 지시가 바뀔 때마다 피곤과 긴장을 가지며 운행을 했다.

사실 운전병이라는 게 누구에게는 꿀이라고 느끼겠지만

난 나한테 주어진 일을 사고 없이 마무리했으니, 그것만으로도 족한 게 아닐까.


2017년 11월 8일

-

호국훈련 7일 차.

내 군생활의 마지막 훈련이 끝났다.

주둔지와 생활관을 청소하며 훈련을 마쳤다.

7일 간 훈련을 하며 힘든 날도 있었지만

이래저래 먹을 복은 터졌던 기간이었다.


2017년 11월 15일

-

내 10,00km 운전병 휴가가 짤렸다.

전입 이후부터 지금까지 열심히 해왔던 내 소중한 휴가가 10분 만에

간부들의 간단한 입놀림으로 사라졌다.

이유는 청소 시간에 청소를 하지 않았다는 건데,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분담을 다 했다.

병장이 돼서도 후임들 위해 식당 청소를 갔던 건 전혀 알지도 못하면서 꼭 이럴 땐 칼 같다.

웃긴 게 내가 파견 복귀할 때는 관심도 없어서 인원 파악도 제대로 못했고

보일러가 3개월 넘게 고장 나서 병사들이 찬 물로 샤워할 때는 자신들의 무능을 감추기만 바빴으면서

이제 와서 전역 1달 남은 병장 군기를 저렇게 잡겠다는 게 웃길 따름이다.

그런데 더 웃긴 건 저 짤린 휴가가 내일 출발이라 그냥 난 나가도 된다.

이미 사단 승인까지 난 휴가마저 쓴 지 안 쓴지도 모르는 게 우리 중대의 현실 같다.


2017년 11월 17일

-

우리 집이 이사를 간다.

청하에 새로 지은 집으로.


2017년 11월 23일

-

뭔가 전역을 1달 앞두니 꿈같다는 생각이 든다.

지난 군생활이 있긴 했던 건지.

위장에 숙영을 하던 혹한기 훈련도, 밤을 새며 달리던 운행도, 하기 싫었던 궂은 작업들도.

이젠 모두 기억에 남아 진짜 내가 겪은 건지 모르겠다.


2017년 11월 27일

-

꿈은 대신 꿔 주는 게 아니고, 인생은 대신 살아 주는 게 아니다.

2년간 수많은 계획을 세웠으니 이젠 무언가를 해나가야 할 때인 것 같다.


2017년 11월 29일

-

우리 분대 회식을 드디어 내가 해줬다.

이전 선임들이 사줬던 그 회식인데 드디어 내 차례가 온 거다.

먹는 모습도 좋았고 이런 자리가 왔다는 게 좋았다.

운이 좋았던 건 부사단장님과 군수보좌관님이 우리 분대원들과의 관계가 좋아

더 고기를 먹을 수 있었다.


2017년 12월 4일

-

송도로 야간 운행을 갔다.

야간이라 그런지 KBS 라디오 DJ 목소리가 더 좋게 들리는 것 같다.


2017년 12월 6일

-

성규가 마지막으로 분대 애들에게 피자와 치킨을 샀다.

지난 이야기와 감정들도 함께 채웠다.

군데군데 참 어리고 이기적이기도 하며, 내 생각만이 중요했던 순간들도 보였다.

다른 한 편으론 이 친구들과 함께 군생활을 보내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성규와 인욱이는 중대에서 처음 본 동기였다.

내일 이 둘이 전역을 한다.

동기들과 함께였다는 게 너무 큰 행운이었고 기쁨이었던 것 같다.


2017년 12월 11일

-

내가 말출을 나왔다. 이게 실화일까?


2017년 12월 13일

-

동근이, 성윤이를 만나 통영 여행을 떠났다.

우선 서호시장에서 복국을 먹었다.

성우가 합류하고 동피랑과 서피랑으로 향했다.

운전병 특기를 살려 쏘카를 빌려 산양 일주로와 달아공원도 다녔다.

현준이까지 합류했다.

양주를 들고 와서 술집에서 든든하게 또 몰래 마셨다.


2017년 12월 14일

-

진주에서 평우와 상열이를 만났다.

진주 시내를 돌아다니고 중앙시장과 진주성을 걸었다.

근데 경상대 앞에서 애들이 헌팅을 하자고 했다.

이전 몇 번의 경험에서 너무 피곤하고 내 적성에 맞지 않다는 걸 느껴서

하고 싶진 않았지만 뭐 어떻게 돼서 같이 앉게 됐다.

적극적이었던 둘에 비해 오히려 나와 이야기가 더 잘 통했다.

뭐랄까... 외국 영화에나 나오는 그런 느낌?

이성적인 걸 배제하고 그냥 이야기만 하려고 앉아 있으니 되려 더 즐거웠다.

조금은 쪽팔릴 수도 있는 경험이겠지만... 뭐 젊을 때 이런 경험도 해보는 게 아닐까?


2017년 12월 22일

-

두 번째 방을 계약했다.

전역을 하면 살게 될 집. 이곳에서 무언가 작은 꿈을 이뤄나가지 않을까.


2017년 12월 23일

-

이야기를 영상으로 표현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게 내 우선순위이다.


2017년 12월 25일

-

마지막 부대 복귀날이었다.

없는 돈을 짜내 애들 줄 햄버거를 샀다.

우울할 줄 알았던 크리스마스지만 전역이라는 선물 덕에 그 어떤 때보다 행복하다.


2017년 12월 26일

-

실감 나지 않았다. 전역을 하루 앞둔 사실은 도대체 무슨 느낌인 건지.

같은 기상시간, 배차 신고, 식사, 차량 점검.

모든 게 내가 처음 이곳에 왔을 때와 다를 바 없었다.

익숙하지 않아 혼자 앓던 시기, 누군가에게 도움과 감동을 받고,

다른 누군가들과 새로운 친분을 나눌 수 있었던 날들이 모두 담겨있는 시간이었다.

군대에서도 사람은 나뉜다.

소소한 행복을 찾고 자신의 지금과 미래를 생각하는 사람이 있고

비관에 빠져 군생활을 마냥 의미 없이 여기는 이도 있다.

여하튼 같이 장난치고, 운동하고 웃었던 선후임, 동기들이 있었기에 여기까지 온 것 같다.


2017년 12월 27일

-

전역을 했다.

2016년 3월 28일부터 기다리고 기다리던 순간이다.

논산의 따뜻하면서 살짝 찬 기운을 아직 기억한다.

강원도 야수교를 가기 위한 기차로 6시간, 버스로 1시간의 시간을 기억한다.

내 군생활은 인내심이었고 기다림이었다.

어디 나가 당당히 군대 다녀왔다 말하겠지만, 정말 불만도 많았다.

맞지 않는 곳에서 참고 견뎌야 한다는 건, 어쩌면 내 인생에서 가장 인내하는 계절이지 않았을까.

나를 위해 광민이와 상필이가 큰돈을 쓴 게 미안하고 고맙다.

나는 내 모습대로 살아갔다.

그게 누군가에겐 좋은 기억이, 누군가에겐 별로 좋지 않은 기억이자 사람이었을 수 있다.

모두가 좋았다면 좋았겠지만, 만약 타인을 위해 생활했다면 나는 아마 속부터 끓어오르는

화로 인해 이미 타들어갔겠지.

스쳐 지나가는 이름과 얼굴들이 있다. 그 속에 있던 내 모습까지 기억해야겠다.

상상하지도 않던 내 전역일이 왔다.

마무리하기 아쉽지만 이 일기도 여기서 이젠 마무리해야겠다.

삶의 한 부분으로, 시간의 추억들로 간직해야겠다.




매거진의 이전글말년에 파견이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