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리얼숲 Mar 07. 2024

자기 월급 받으면서 남일처럼 한다

잡글 05

잡글이다.

사실 내일 준비할 일이 있다. 하다 보니 며칠 일도 많고, 쉬고 싶고... 

꼭 이럴 때만 딴생각이 들어 브런치에 들어왔다. 

오늘은 일에 대한 이야기다. 혹은 어떤 목표에 관한 이야기다.


난 참 축구를 좋아한다. 독일 월드컵이 한창이던 2006년 초등학교 4학년. 조별리그 3차전에서 스위스에게 져 탈락했을 때 아침 댓바람부터 울었다. 2007년엔 내 고향팀 포항스틸러스가 K리그에서 우승했다. 그걸 직관했다. 아직도 그 열기가 잊히지 않는다. 그래서 매해 가난한 팀이라 선수가 뺏겨나가도 응원하고 있다.


오래 축구를 좋아하다 보니, 내 일과 연결시킬 수 있게 됐다. 

지난해 여름, 프로가 되지 못한 축구선수들이 모인 독립구단 'FC아브닐'을 취재했다. 이들의 꿈과 일상을 촬영했다. 운이 좋게도 KBS <열린 채널>에 3월 13일 방영된다. (ㅎㅎ)


다큐를 촬영하며 사람을 봤다.

축구가 일이고, 축구선수가 직업이라면 그 선수들은 취준생이었다. 그것도 꽤나 어린 취준생들이었다.

평생 해 온 거라곤 축구뿐이었다. 다른 학생들이 공부할 때 운동장을 뛰었다. 

수능을 칠 때, 일자리(프로 팀)를 구하기 위해 여기저기 안 통한 인맥이 없다.


이들의 불안을 본 것 같다. 

포기하는 순간, 지난 10여 년이 통째로 날아간다. 포기하는 순간, 준비한 다음 챕터가 없다.

매몰비용이라고 하지 않나. 이들에겐 축구는 꿈이자 매몰비용이었다. 


내가 축구를 좋아한 건 낭만과 열정이 담겨 있어서였다.

그런데 내가 보는 축구 속 낭만과 열정 뒤에는 커다란 불안과 착취가 담겨있었다.

착취라고 하니 굉장히 부정적으로 보이지만, 냉정하게 보면 착취가 맞았다.


"죽을 각오로 덤벼들어야지. 눈빛이 살아있다는 걸 보여줘야지. 지금이 마지막이라는 기회로 달려들어야지."

축구판, 아니 한국 스포츠판엔 이런 인식과 언어가 깊게 스며들어있다.

지도자, 행정가, 선수들 심지어는 그들의 부모와 팬들, 시민들도 마찬가지다.


세상 어떤 직업이 안 되면 죽는다는 각오로 달려드는가. 

언론사에서도 종종 자기 월급 받으면서 남일 하는 것처럼 하는 이들을 봤다.

대기업도 다를 바 없다. 누구도 일을 하면서 "안 되면 죽는다. 매 순간 지금이 마지막"

이런 절박함으로 일 하지 않는다. 아니, 사실 그렇게 사는 게 맞나 싶다. 


자영업자들을 보면 많이들 개업하고 또 그만큼 폐업한다.

이들의 노력을 보면 정말 대단하다고 느낀다. 

그런데 자영업자들이 서로 레드오션에서 경쟁하고 밤낮없이 일하는 결과 말고 이유를 보면 슬프기도 하다.


왜 우리 사회는 그럴 수밖에 없는 일에 몰리게 되는가. 

돈을 좇아 달리는 성공이 자영업으로 사람을 몰고 있기도 하고,

하릴없이 내몰린 이들이 자영업으로 향하기도 한다.


죽을 각오란 말. 참 묘하다. 

그렇게 피 터지게 싸워서 얻어낸 건 삶에 대한 안정감 하나뿐이다.

취업이, 프로 데뷔가, 자영업이 모두 안정감을 얻기 위해 죽을 각오로 싸워야 한다.

죽을 각오가 없다면, 우리 사회에는 안전망이 없는 걸까.

나를 점검하는 시간을 삶의 중간중간마다 가져볼 수 있다면 좋겠다. 의도적으로라도 말이다.




작가의 이전글 유아기를 벗어나지 못한 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