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한 마음
오늘은 쓸데없는 감정을 나열해볼까 한다.
언젠가 이불킥을 할 수도 있는 글이지만, 이마저도 29살의 생각과 감정이라면 남겨봄직하지 않을까.
아는 사람은 알 테지만, 한국에서 언론사에 입사하는 걸 언론고시, 흔히 '언시'라고 부른다. 당연히 고시는 아니다. 고시만큼 어렵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사실은 그냥 언론사 입사 시험이다. 수많은 언시생들은 이른바 메이저 언론이라고 불리는 언론사에 들어가길 희망한다. KBS, MBC, SBS 같은 지상파 방송사부터 조선일보, 한겨레, 동아일보, 한국일보 등 소위 10대 일간지와 4대(또는 7대 또는 8대...) 경제지에 들어가길 희망한다. 이밖에도 지역 언론과 다양한 인터넷 신문이 있다.
서류-필기-실무(때에 따라 면접과 실무 능력, 카메라 테스트 등 세분화되기도 함)-최종면접의 과정을 밟는다. 대개 두 달에서 네 달가량 걸린다. 요즘은 인턴십 과정을 하는 언론사도 있으니 길면 6개월이 걸리기도 한다. 최종 선발 인원은 매체마다 다르다. 딱 잘라 말할 순 없지만, 기자의 경우 5명 안팎이고 PD의 경우 그보다 적은 수준이다. 지역 언론의 경우 기자든 PD든 1명을 뽑는 경우가 부지기수다(신문은 조금 다르다). 경쟁률은 기본적으로 적어도 50 대 1을 넘고, 큰 매체의 경우 100 대 1도 훌쩍 넘는다. 한 번에 메이저에 들어가면 여러모로 좋겠지만 쉽지 않다. 그래서 작은 매체에서 경력을 살려, 타고 타고 좀 더 큰 언론으로 넘어가는 경우가 최근의 트렌드로 자리 잡고 있다.
"언론사 들어가기 개 어려워요~!"라고 징징거리려고 서술한 건 아니다. 떨어지는 건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이다. 다만 혹여나 이 글을 읽을 누군가에게 이런 채용 구조와 산업이 있다는 걸 말하고 싶었다. 어느 분야가 안 그렇겠냐만, 불합격은 불안을 안겨준다. 나의 경우엔 최근에 서류만 연속 3번 떨어졌고, 면접 탈락으로 기분이 더러웠다. 면접은 참... 많이도 떨어졌다. 될 것 같은데, 될 것 같은데, 이번엔 될 것 같은데라는 찰나의 기대는 매번 불합격을 전하는 덤덤한 텍스트에 덮인다.
'덤덤해져야만 하는 불안'이 존재한다. 나이에 대한 불안, 경제력에 대한 불안, 가족의 기대와 상황에 따른 불안, 남들보다 뒤처지는 것은 아닌가 하는 불안, 이렇게 공부하는 게 맞는가 하는 불안. 지난한 공부 시간과 팝콘처럼 떠오른 채용 공고, 불꽃처럼 지나가는 불합격. 솔직히 처음엔 최종 탈락으로 눈물도 났다. 면목이 없었다. 가족과 친구들, 나를 믿어준 교수님에게 그럴듯한 결과를 못 보여주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이런 순간들이 쌓이면서 우울함에 빠지는 것도 길어야 하루가 됐다. 정확히는 하루로 족해야 한다. 포기하지 않을 거라면 그냥 묵묵히 할 일을 해야 한다. 자고 일어나면, 금세 지나간 일이 된다. 기대했기에 아쉬운 건 어쩔 수 없지만, 뒤돌아보면 자꾸만 과거에 얽매이게 된다.
물론 그렇다고 완전히 자유로운 건 아니다. 여전히 부모님에게서 타 쓰는 생활비가 눈치 보인다. 20대 후반이 넘어가는 나이에 그건 어릴 적부터 체화된 성인 남성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벌써 한두 번의 이직을 했다는 어떤 이들의 이야기를 인스타그램에서 보면, 나와는 다른 길임을 앎에도 혼자 어느 섬에서 의미 없는 고군분투를 하는 느낌도 든다. 세상에 가장 밀착해 사람의 이야기를 전하는 게 언론인데, 정작 언론사 입사를 준비하면서 그 누구보다 세상과 멀어지는 느낌이 들 때가 있는 아이러니다.
뭘 그렇게 고민하고 사냐고 물을 수도 있다. 내가 생각해도 그렇다. 이렇게까지 불안해할 필요 없다. 안 되면 되는 일을 하며 살면 된다. 다만, 이건 일종의 직업의식이다. 꿈이자 목표이고 삶의 지향이다. 내가 전과하지 않고 기계공학과로 졸업했다면, 지금보다 훨씬 직장을 구하기 쉬웠을지 모른다. 돈도 더 많이 벌었을 것이다. 하지만, 매번 불합격을 할 때마다 생각해 본다. 시간을 돌려 그때로 간다고 할지라도 나는 같은 선택을 할 것이다. 한 번 주어지는 인생에서 내게 직업은 나의 지향이었으면 한다. 돈을 버는 수단을 넘어 나의 자아를 표현하고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이길 바란다. 내게 언론인이 되는 것은 불안과 고통을 안겨주지만, 삶의 너무나 중요한 과정이 되어버렸다.
여전히 사람들은, 그리고 사회는 저널리즘에 바라는 게 있다고 생각한다. 바람이 소원이라면, '우리들 이야기를 해주길 바란다'가 우리 사회의 소원이라고 생각한다. 숱한 저널리즘의 정의가 있고, 각자의 의미가 있겠지만 나는 저널리즘을 통해 사람의 이야기를 하고 싶고, 시대를 기록하고 싶다. 언론이 아니면 아무도 관심 갖지 않는 세상을 기록하고, 개인과 집단은 말하지 못하는 걸 취재를 통해 세상에 점 하나 남기고 싶다. 그게 나의 지향이다. 그 지향을 위해 덤덤한 불안을 아직은 좀 더 안고 갈 생각이다.
'바다가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고 해서, 항해를 멈추지는 않는다.' 내 모토다. 비교적 최근에 생긴 모토다. 늘 모토라는 게 내 삶을 관통하지 못하는 것 같아 주저했는데, 이만큼 내 마음을 대변하는 게 없는 것 같다. 계획대로 되지 않으니까 준비를 하고, 정박도 하고, 풍랑을 만나는 게 아닐까. 그때마다 항해를 포기한다면 가라앉을 수밖에 없다. 삶의 지향이니, 시대의 기록이니... 고고한 척한 것 같기도 하다. 그냥 나의 지금은 이렇다는 말이다. 그리고 이럴 수밖에 없는 사람이라는 말이다. 사실 이런 말을 해도 친구들 만나면 20대 후반의 성인 남성은 어디 가고 없고, 편의점 2+1 아이스크림 걸고 가위바위보나 한다. 또 돈 잘 버는 현준이한테 밥이나 얻어먹고 싶다.
내가 가장 다정해지는 사람도 기자를 준비한다. 어제 그 친구에게 너무 징징거렸다. 한참 징징거리다 대학원 교수님의 말을 전해주었다. "기자는 상태가 아니라 지향이자 과정이다. 내가 언론사 입사해서 기자인 게 아니라, 기자답게 취재하고 글을 쓰면 언론인이 되는 것이다." 바보 같은 투덜거림에 의젓한 말을 해주어 참 고맙다. 내가 잘 된다면, 7할은 그 친구의 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