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오랜 세월 동안 꾸준히 작품 활동을 이어오고 있으며, 특히 세련된 문체와 섬세한 감성으로 독자들에게 여전히 사랑을 받고 있다. 대표작인『냉정과 열정사이』, 『도쿄 타워』는 소설뿐만 아니라 영화로도 제작되어 큰 인기를 얻기도 했었다.
『한동안 머물다 밖으로 나가고 싶다』는 신문과 잡지를 통해 발표한 글들을 실었는데, 에세이와 아주 짧은 소설이 섞여 있다고 작가는 말한다.
이 책에 수록된 글들은 20년에 걸쳐 각기 다른 시기에 쓰여졌으며, 쓰기, 읽기, 그 주변 세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다.
<무제>라는 글을 읽다 보면 작가의 창의성에 감탄이 저절로 나온다.
작가는 주변 사람들의 강한 권유로 병원에서 검사를 받게 된다. 쉰 살이며 신장과 체중은 표준에 못 미치지만 나름 활력은 있는 작가에게 의사는 그녀의 몸 안에 스노보드 하나가 걸려있다는 말을 한다. 뿐만 아니라 소형 보트와 비행기, 금귤베리가 걸려 있다고 말한다.
“환자의 상태는 아주 이상합니다. 말로 표현할 수가 없어요.”
의사는 차트로 102페이지나 된다고 말하며 차트를 읽어준다.
토스트, 거미집, 아이들, 도마뱀, 비, 장화, 말, 길모퉁이, 아버지, 어머니, 소금, 모래사장, 복숭아...... 휴대전화의 가치에 대한 의문, 오래된 민가, 풀피리...... 그리고 옛 연인까지 몸속에 걸려 있다고 한다.
의사는 “아무튼 온 세계의 사소한 것들을, 어떻게 된 일인지 당신이 온몸으로 주워 모았다는 겁니다”
그때서야 아하, 하고 이해한 작가는 큰 병이 없음에 안심한 듯 말한다.
“그건 어쩔 수 없어요, 나는 소설가니까”
작가들의 몸속에는 너무나 많은 것들이 걸려 있어서 때로는 질병이 아니어도 온 몸이 아플 것 같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과 복잡한 감정들로 가득하니, 항상 피곤하고 활기가 없기도 할 것이다.
에쿠니 가오리는 이런 상황을 어쩌면 이렇게 작품으로 잘 나타낼 수 있을까?
사람의 몸속에 스노보드가 걸려 있다는 표현은 아무리 생각해도 신선하고 참신하다.
<투명한 상자, 혼자서 하는 모험>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글자에는 질량이 있어, 글자를 쓰면 내게 그 질량만큼의 조그만 구멍이 뚫린다.
가령 내가 안녕이라고 쓰면, 안녕이라는 두 글자만큼의 구멍이 내게 뚫려서, 그때껏 닫혀 있던 나의 안쪽이 바깥과 이어진다. 가령 이 계절이면 나는, 겨울이 되었네요 하고 편지에 쓸지도 모르는데, 그러면 그때껏 나의 안쪽에만 존재하던 나의 겨울이 바깥의 겨울과 이어진다. 쓴다는 것은, 자신을 조금 밖으로 흘리는 것이다. 글자가 뚫은 조그만 구멍으로.” 52쪽
쓰는 것을 자신을 조금 밖으로 흘린다고 표현하다니 기가 막힌다. 작가는 글자가 뚫은 조그만 구멍으로 자신의 세계를 흘려보낸다고 말한다.
보통 작가들은 자신의 평소 사생활을 공유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녀는 독자를 향해 소통의 손을 내민다.
매일 아침 두 시간은 반드시 목욕을 하고, 목욕을 하면서도 책을 읽는 작가. 씨 없는 피오네 포도를 잔뜩 먹고 매일의 일상을 적은 <2009년의 일기>를 읽다 보면 먼 곳에 있는 작가가 아니라, 우리 곁에서 함께 숨 쉬는 가까운 사람으로 인식된다.
개와 산책, 늦은 저녁 약속, 약속 시간까지 여유가 있었지만 책상 앞에 앉을 기력이 없어서 친구가 준 DVD <오르페브르 36번가>를 보았다. 신나고 재미있어서 금방 기운을 되찾았다. 자양강장에 재미있는 영화만큼 좋은 것도 없다. 힘이 솟고, 인생과 이야기는 좋은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쓰다가 막힌 원고도 반드시 쓸 수 있을 것이라는 턱없이 흥분한 기분으로 저녁을 먹으러 나갔다. 39~40쪽
소설을 쓰는 동안은, 나는 ‘전투를 한다.’ 하고밖에 형용할 수 없는 기분으로 지내는데, 그런데, 무엇과? 그건 정말 수수께끼다. 40쪽
<소박한 소설>에서는 소설을 알기 쉽게 쓰면 안 되는 것일까? 아주 오래전부터 작가는 이런 의문을 품고 있었다고 한다. 그 의문이, 어려워야만 문학적인 것일까? 하는 종류의 분개가 되어 에너지를 주었던 것 같다고 말하고 있다. 나도 가끔 비슷한 생각을 하곤 한다.
어려운 말로 쓰여진 작품들이 그럴싸하게 보이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알고 보면 쉽게 쓰기가 더 어려운 것 같다.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는 글을 쓰려면, 경험과 연륜과 지식이 쌓여 자연스럽게 흘러나와야 되니까......
<독서노트>에서는 “이 세상의 아름다운 것, 선한 것이 모두 담겨 있는 책을 딱 한 권 알고 있다. 고요하고 소박하고 청초한 책이다. 게다가 깊은 절망으로 가득하다”
이렇게 말하니 나마저도 그 소설을 얼른 읽고 싶어 진다. 독자들의 견해는 다양하겠지만 에쿠니 가오리는 후안 라몬 히메네스의 「플라테로와 나」가 그런 책이라고 말한다.
< 자유 >라는 글에서는 다섯 권의 책을 소개한다.
① 천애1: 새는 날고 빛은 흐르고 , 사와키 고타로 지음. ② 티파니에서 아침을, 트루먼 카포트 지음. ③ Z짱, 이구치 신고 지음. ④ 뉴햄프셔 호텔, 존 어빙 지음. ⑤ 우미인초, 나쓰메 소세키 지음.
<여기에 계속 있다는 것> 글 중에는, 읽기의 의미가 잘 전해진다.
책에 몰두하다 보니 해가 지는 것도 모르다가, 알고 보니 몹시 어두운 방 안에서 활자를 더듬고 있었을 때, 나는 자신이 오랜 시간 거기에 없었다는 것을 깨닫는 게 아니라, 자신이 오랜 시간 거기에 있었다는 걸 깨닫습니다. 97쪽
읽는다는 것은 어디에 가든 여기에 계속해 있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눅눅한 흙 위에, 개구리가 있는 장소에, 어두컴컴해진 방안에, 내리기 시작한 빗속에. 99쪽
이 책은 참 평범한 것 같으면서도, 천천히 읽다 보면 작가의 인생관과 철학과 작품론이 가슴에 와닿는다.
‘작가의 말’에서 그녀는 “에세이보다 소설 쪽에 자신이 잘 드러나 있다는 것은 무서운 일입니다. 최근에 존 판테의 <충만한 삶>이라는 소설의 번역본을 읽었습니다. 쉴 새 없이 책을 읽고 있어도 좀처럼 만나기 쉽지 않은, 두 말이 필요 없는 멋진 소설이었습니다. 읽는다는 것에 대한, 쓴다는 것에 대한, 산다는 것에 대한 모든 것이 그 한 권에 담겨있고, 그것은 끝없이 샘솟지만 보존할 수 없고, 눈부시고 생명력에 넘치는 순수한 행복, 이라고 해야 할 것이고, 그래서 지금 이 후기를 읽고 있는 분에게는 이 책을 내려놓고 서점에 가서, 그 책을 사라고 말하고 싶군요”
작가는 “지금 자신이 있는 세계마저 읽기 전과는 달라지게 하는 힘, 가공의 세계에서 현실로 밀려오는 것, 그 터무니없는 힘”들을 느낄 수 있는 멋진 책을 쓰고 싶다고 말한다.
<소설의 안과 밖―문학적 근황>에 보면 다음과 같은 문장이 나온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그곳으로 떠나는 일이고, 떠나고 나면 현실은 비어 버립니다. 누군가가 현실을 비우면서까지 찾아와 한동안 머물면서, 바깥으로 나가고 싶지 않게 되는 책을, 나도 쓰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왜 책 제목이 『한동안 머물다 밖으로 나가고 싶다』 일까? 에 대한 해답이 될 것이다.
이 책을 읽은 후, 나도 언젠가는 누군가가 찾아와 한동안 머물고 싶어지는 그런 책을 한 권 쓰고 싶어졌다~
*하루에 2시간씩 목욕을 하고, 씨 없는 피오네 포도를 먹고, 대부분의 시간을 책 읽으며 보내는 작가의 일상을 그린 책 표지 일러스트가 무척 흥미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