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쓸 수 있을까

77세에 글을 잃어버린 작가 테오도르

by 조현수

커버 이미지 : 다시 쓸 수 있을까, 테오도르 칼리파티데스, 어크로스 출판


그리스 태생의 스웨덴 작가 테오도르 칼리파티데스는 스물다섯 살에 그리스를 떠나, 스웨덴 국민적 작가로 존경과 인기를 얻었다.

“나는 77년을 살았다. 세월은 물보다 무거웠다. 무게를 떨쳐버릴 수 없었다. 다시 글을 쓸 수 있기는 할까?”


테오도르 칼리파티데스의 「다시 쓸 수 있을까」 이 책을 읽으며, 작가의 진지한 고민을 함께하고 싶었으며, 유명한 노작가의 쓰는 삶을 들여다보고 싶었다.

온갖 희노애락에 흔들리지 않고, 묵묵히 쓰는 일에 평생을 바치기는 쉽지 않다. 긴 세월 동안 자신의 내면의 소리에 충실하기는 말처럼 쉽지 않다.

테오도르가 77세가 되었을 때, 그리고 40권 이상의 책을 출판하고 정신적 에너지를 완전히 소진했을 때 작가는 갈등한다.

“힘든 때였다. 소설 집필에 온 힘을 기울이다 진이 몽땅 빠지는 바람에 글쓰기를 관둘까도 생각했다. 몸을 버리느냐 글쓰기를 버리느냐”

그리고 그는 작가로서 은퇴할 때라고 생각하기에 이른다.

“아예 쓰지 않는 것보다도 후지게 쓰는 것이 두려웠다”라고 고백한다.

팔순이 다된 나이에 글쓰기에 대해 이렇게 충실하게 고민할 수 있을까? 노화로 온 몸이 아프고 하루하루가 힘든 나이에도 “몸을 버리느냐 글쓰기를 버리느냐”이런 물음으로 스스로를 자극하는 노작가가 정말 대단하고 존경스럽다.

나에게도 테오도르처럼 나의 글을 사랑하며, 오래도록 글을 쓰며 은퇴를 고민하는 날이 올까?


‘다시 쓸 수 있을까?’

작가는 끊임없이 은퇴를 고민하는데, 그 과정 속에서 지적이고 철학적이며 때로는 유머러스한 작가의 생각들이 책 속 곳곳에서 번쩍인다.


나는 스톡홀름 쇠데르 구역의 작업실에 있는 것이 참 좋았다. 맘셀 요사베트 계단을 올라갈 생각을 하면 아침마다 가슴에 기쁨이 가득했다. 거기서는 노르웨이 교회 뒤의 비탈진 언덕에서 봄마다 피어나는 흰 꽃, 노란 꽃, 파란 꽃을 볼 수 있었다. 저녁에 작업실을 나설 때도 즐거움이 가득했다. 아름다운 가로등은 스티그베리스가탄 거리를 따라 온통 꿀처럼 매끄러운 빛을 드리웠다. 언제나 한참 만에야 그 모습에서 겨우 발걸음을 뗄 수 있었다. p.20


이 부분을 읽으며 나는 작가가 글쓰기 자체를 정말 많이 사랑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글 쓰러 가는 길이 이렇게 기쁨으로 가득할 수가... 그런 설레는 마음이 있어서 평생을 쓸 수 있었을 것이다.

“글감은 머릿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주변에서도 얼마든지 찾을 수 있었다. 벽에서, 가구에서, 커피 향에서, 전등의 불빛에서도. 재수 좋은 날에는 무엇으로든 글을 쓸 수 있었다.”

많이 경험하고, 많이 읽고, 사색한 결과물이겠지만, 샘처럼 솟아나는 작가의 영감과 창의력이 마냥 부러웠다. 그의 순수하고 맑은 감성이 나의 마음에 그대로 와 닿았다 .

《다시 쓸 수 있을까》는 테오도르가 새로운 목표를 추구하면서 과거와 현재의 그를 만든 정신적, 물리적 세계를 거슬러 탐색하는 일종의 여행기다. 나이 든 작가의 회한과 괴로운 고민을 담고 있는 내용에도 불구하고, 《다시 쓸 수 있을까》 전반에 흐르는 정서는 우울함보다는 낙관에 가깝다.
출처 : 출판사 리뷰


작가는 새벽 세 시에 잠이 깨면 커피를 끓이고 담뱃대에 불을 붙이고는 식탁에 앉아 글을 썼다고 한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질문한다.

‘어떻게 해서 글쓰기는 나의 삶에서 그런 무게를 지니게 됐을까? 내가 얻은 게 무엇일까? 나는 무엇을 맞바꿨을까?’

이 물음은 글 쓰는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스스로에게 자주 하는 질문일 것이다.

‘나는 왜 쓰는가? 나는 왜 쓰려고 하는가? 이 힘든 여정에서 내가 얻는 것은 무엇인가? 무슨 마력이 있어서 몸에 '착'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고 있는가?’


부와 명예와는 분명 거리가 멀지만 뭔가 자신을 다스리는 힘, 벅찬 울림, 잔잔한 행복감...... 이런 이유로 우리는 쓰는 일에서 떠날 수가 없을지도 모른다.

이 책의 문장들을 정독하다 보면 곳곳에서 쓰고 싶은 생각이 꿈틀댈 것이다.

그리고 성실하게 쓰는 일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깨닫게 될 것이다.


작가는 말한다.

“작가로서의 일상은 나중에 써먹을 글감으로 여겨왔다. 10초 동안 잠깐 본 얼굴이든, 70년 전에 내 고향 마을에서 봤던 꽃을 활짝 피운 아몬드 나무든 중요한 기억은 자세히 기록해두었다.”


기록하는 일이 피곤한 일일지 몰라도 메모의 중요성은 쓰는 사람들은 다 알고 있을 것이다. 사물을 통찰하는 힘, 그리고 기억들은 저장되어 언젠가 물 흐르듯이 글에 녹아 나올 것이다.

작가든, 글을 쓰고 싶은 사람이든, 독서가든, 삶의 철학을 깨닫고 싶은 사람들에게 이 책은 보물처럼 간직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그것도 팔십 년 가까운 인생을 살아온 작가의 일상을, 생각들을, 깨달음을 적어 놓은 글이라 더 가치 있게 생각된다.


‘작가가 자기 글을 감싸기 시작할 때’에서는 고틀란드에 있는 여름 별장 이야기가 나온다. 가족의 여름 나기 별장인 그곳에서 테오도르는 많은 글을 썼으며 그곳을 진심으로 사랑했었다.

그리고 진심을 다해 말한다.

“작가로서 팔짱을 끼고 달걀이 삶아지길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고 결론 내리지 마라. 끊임없이 읽고 써야 한다. 대다수의 본성에는 맞지 않겠지만 다른 작가를 인정할 줄도 알아야 한다. 진열창이 보이는 대로 무작정 들어가지 말고 물러서는 법도 익혀야 한다.”


조용하고 아름다운 고틀란드가 부자들을 위한 호화로운 주택이 지어지고, 소비와 향락을 좇는 일들이 일어나고 베트남 전쟁의 시위가 두메산골까지 번졌다고 작가는 회고했다. 비군사화를 요구하는 행진을 벌이고 플래카드와 포스터를 만드는 일들도 책에서 언급하고 있다. 베트남 전쟁이 끝나고 실업률이 높아지고 힘든 사회 현실을 바라보며 안타까운 심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양심, 의무, 책임과 같은 말들이 왜곡되거나 조롱받거나 사라져 버리고 스웨덴은 무사 태평한 인생에 맛 들렸는데, 고국인 그리스는 내 두 번째 나라인 스웨덴을 닮으려고 힘쓴다. 그리스에서는 스웨덴 모델을 꿈꾸었고, 스웨덴에서는 아무 모범도 없는 그리스 모델을 꿈꾸었다.”라고 작가는 말했다.


그리스 태생의 스웨덴 작가인 테오도르에게 이 두 나라는 똑같이 소중할 것이다.

“그리스인은 술을 마실 때 노래를 부르고, 스웨덴인은 술을 마시려고 노래를 부른다.”

종종 두 나라를 함께 언급하는 작가를 보며, 나은 정, 기른 정 둘 다 소중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스물다섯 살이었을 때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스스로에게 물어봤었다. 대답은 ‘떠나라’였다. 그래서 떠났다. 일흔다섯 살이 넘었는데도 여전히 똑같은 질문을 앞에 두고 있었다. “나의 여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이제는 이런 대답이 머릿속에 자주 맴돌았다. “돌아가라.” p. 91~92

‘다시 쓸 수 있을까’를 고민하던 어느 날, 작가는 고향 마을인 몰라이 고등학교 교장이 보낸 이메일 한 통을 받았다.

작가의 이름을 따서 학교명을 짓고 싶다는 제안을 받고 설렘을 동반한 고민을 시작한다. 결국 작가는 허락하고 아내와 함께 그리스로 향한다.


『다시 쓸 수 있을까』는 방황하는 작가가 돌고 돌아 고향으로 돌아가서, 과거와 화해하고 어정쩡한 봉합을 시도하는 이야기와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자기 자신과 고국 그리스 그리고 오랫동안 창작 활동을 해온 스웨덴 모두에서 발견되는 분열과 위선 등을 면밀히 관찰하고, 자신을 키워낸 정서적이고 인간적인 것들을 회복하려는 노력의 기록이다.
출처 : 출판사 리뷰


그리스 여행 도중 테오도르는 그리스어로 작품을 쓸 수 있을까? 고민하기 시작한다.

컴퓨터를 켜고 언어 설정을 스웨덴어에서 그리스어로 바꾼 다음, 첫 낱말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파도는 점점 높아졌고 빗줄기는 창문을 후드득후드득 때려댔다. 나는 기다렸다. 아무 일도 생기지 않았다. 지금껏 나는 스웨덴어로만 책을 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p.188

그리고 작가는 확고한 신념으로 말한다.

“결론은 간단하다. 모든 언어가 독특하다. 두 개의 다른 언어로 똑같은 책을 쓸 수는 없다. 이미 쓴 책과 닮은 것을 쓸 뿐. 그게 전부다.

말할 것이 있으면 세상의 모든 언어로 말할 수 있다. 물론 입을 다물 수도 있다. 다른 이야기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마지막 말은 모국어로 하는 것이 가장 좋다.”


테오도르는 그리스를 다녀온 후 잃어버렸던 글의 방향을 되찾았다.

그리고 다시 빛나는 문체로 글을 쓸 수 있었고, 모국어인 그리스어로 책을 출간했다.

팔순이 다 된 나이에 발걸음과 시야를 옮겨보는 것이 효과가 있다는 것을 알고, 고향 땅을 방문하며 모험을 감수한 사람.


『다시 쓸 수 있을까』는 내가 50여 년 만에 처음 그리스어로 쓴 이 짧은 책은 나를 모국어로, 나를 결코 저버리지 않을 유일한 고국으로 다시 이끌어준 이들에게 전하는 때늦은 감사의 표시다. 내가 몸 둘 바를 모를 만큼 극진한 대접을 받아서 되살아난 것은 아니다. 그들이 구해줬기에 되살아났다.
그러니 세상 어느 귀퉁이에서 나의 삶을 보낸 들 무슨 상관이랴?


테오도르의 ‘다시 쓸 수 있을까?’를 글 쓰는 일을 사랑하면서, 글쓰기를 고민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적극 추천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