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초반에 < 세계화와 그 불만 > 이라는 조지프 스티글리츠 교수님의 책을 읽었다.
지금 다시 봐도 정말 두껍고, 지금보다 사회경험도 경제학적 지식도 부족해서 이해가 어려웠다.
다만, 미국 경제학계 주류의 정통 엘리트 코스를 통과했음에도 신랄하게 비주류적인 입장을 취하는 모습은
그 모든 내용을 압도하는 인상으로 남았다 .
의외로, 미국 경제학계에서 생각보다 세계의 빈부격차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진 분들을 종종 보곤 했다.
29세에 하버드 경제학과 정교수가 된 제프리 삭스 교수는 < 빈곤의 종말 >을 저술했고,
조지프 스티글리츠 교수는 27세에 예일대 정교수가 되었다.
다만, 세계 경제학계 최고수준의 교수들의 수많은 학문적 연구와 실증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주목하고 비판하는 경제체제 자체는 여전히 변하지 않는 부분이 많아보인다.
결국 경제는 이론보다는 이해관계로 움직이기 때문이 아닐까.
학문적으로는 "기업부문"에서 이익이나 후생을 떼어 "가계부문"으로 전이한다라고 쉽게 표현한다.
하지만 구체적인 실행에 있어서 실제 그것을 재분배할 때 겪는 강력한 저항은
결국 이 책의 하드카피대로 경제가 아닌 "정치"의 영역인 듯 하다.
이 책은 실증적인 정당성과 이론을 이야기해줄수는 있지만 그것에 따른 저항을 어떻게 풀어갈지에 대해서는
이야기해줄수 있는 부분이 많이 제한되어 보이는 느낌이다.
특히 내용 중의 상당수가 조세와 금융시스템과 관련하여 문제인식 자체는 매우 동감하지만,
저자도 언급한 케이먼 군도처럼 조세회피처나 해외로 자본이전이 신속하고 수월한 상황에서
정부 부문이 어떻게 이들을 유인하고 대응할수 있는지에 대한 언급은 다소 추상적으로 느껴지는게 아쉬웠다.
아울러, 책 자체가 사실은 10여년간(2008년 금융위기 이후) 쓰여진 책들이 모인것이라
조금은 시의성이 약해보이는 부분도 있어 보인다
물론 책에서 언급한 불평등의 문제가 10년간 더 심해졌다는 점에서는 주장 자체는 여전히 유효해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책을 좋아한다.
주류경제학계 내에서도 인정받는 구루의 실증적 비판의식이 풍부하고,
금융위기 이후 지난 10년동안 무엇이 바뀌었는지,
오히려 불평등 구조가 더 악화되지는 않았는지 돌아보게 하며,
전문가 집단으로 불리는 투자은행가 집단이 보여준 비전문,비도덕,비신뢰의 태도들에 대해
치밀한 비판의식을 전개하는 점이 이 책의 가치를 높여준다고 믿는다.
예전에 그런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1960년대에 구 소련의 국가수반이었던 후루시초프가 미국을 방문했을 때
미국 방문 후 미국의 진짜 힘을 두려워하며 돌아갔다고 전해진다.
그 힘은 다른 것이 아니라 미국의 모든 사람들 - 부자, 중산층, 서민, 극빈층(일부겠지만) -이
빈부격차에도 불구하고 식탁위의 음식들의 수준차이는 그들의 빈부격차만큼 크지 않고 비슷한 메뉴들이라는
의외의 사실 하나였다고 한다.
공산주의를 무너뜨린 자본주의의 번영기에는 모든 사람들의 수준이 크게 차이나지 않았고
또 그것만으로 모든 삶의 가치가 결정되지는 않았던 시대였다.
영화 < 국가부도의 날 >에서 IMF이전의 우리나라사람 80%가 자신을 중산층으로 여기던것처럼.
< 거대한 불평등 >에서는 미국도 2000년대 이후 앨런그리스펀이 FRB의장이던 시절에
저금리 기조로 빈부격차가 확대되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2020년의 한국도 비슷한 것 같다.
우스개소리로 "벼락거지"라는 말이 사회이슈가 되는 것처럼,
초저금리 시대에 순간적으로 확 벌어지는 부의 격차를 본다.
< 거대한 불평등 >을 읽으며, 과연 지금은 후루시초프가 평가했던 미국의 강점이 얼마나 남아있을지,
우리나라는 과연 어떤 모습일지 돌아본다.
영어로 직업을 이야기할 떄 "Vocation"이라는 단어가 있다.
Job, Occupation이라는 단어가 조금은 더 보편적으로 쓰이는 단어라면,
Vocation은 천직, 소명(The Calling), 내게 잘 어울리는 직업 등을 의미한다.
이 책의 서두에 스티글리츠 교수는 자신이 불평등이라는 거대담론에 관심을 갖게 된 개인사를 내비친다.
여느 대다수 미국의 평범한 가정이었기에 가계를 꾸려나가는 일조차도 쉬워보이지 않았던 형편이
사실은 스티글리츠가 일반적인 경제학 주제에 몰입하며 편하게 살수 있는 길 대신
끊임없이 불평등을 연구/개선하는 길을 택하게 된 배경이라고 말한다.
많은 사람들이 나의 삶의 목적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한다.
사실 나 또한 불혹이 가까울수록, 오히려 혹하는 내 모습을 본다.
내가 잘못 선택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라는.
적어도 세계 최고의 경제학자가 나에게 보여준 것은
당신이 살아온 삶의 어느 한 자리에 당신의 Vocation이 있다고 보여주는 것이었다.
경험하지 않은 것도 알수 있고 생각하는게 인간이지만
경험한 사람만이 갖는 권위, 경험한 사람만이 갖는 관심에서만 길어내는 무엇이
참된 영향력이 있다는 단순한 진리를 나는 이 책을 통해 다시 한번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