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6의 Beautiful feeling
2022년 2월, 제주도로 떠났다. 한창 여유에 목말랐던 친구와 함께, 매너리즘으로부터 벗어나 환기를 하기 위한 선택이었다. 코로나 바이러스로부터 자유롭지 못해 여행을 간다는 것 자체가 귀한 시기였기에, 어딘가로 떠난다는 것 자체로 우린 참 설레 했더랬다.
참 좋았다. 성인이 되어서 친구와 함께 멀리 떠난 첫 여행이었으며, 나름대로 '우리의 자본'을 가지고 하는 첫 여행이기도 했다. 완전한 자유랄 건 없겠지만, 그럼에도 자유의 체험판이라고 느꼈다. 무엇보다도 오랜만에 하늘을 나는 기분을 느끼고, 찬란한 파도의 소리를 듣는 것이 정말 좋았다.
'여유와 제주'라는 이름으로 수첩에 남은 그 여행의 테마곡은 다름 아닌 'Beautiful Feeling'이라고 생각한다. (동행한 친구가 동의할지는 잘 모르겠으나... 아마도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까 한다!)
많이 걷고 많이 헤매며, 함께 부른 많은 곡 중 한 곡이었다. 플레이스트에 들어있던 수많은 명곡들 중에서도 유독 'Beautiful Feeling'이 돋보였던 것을 생각하면 참 재미있다. (물론 열렬한 데이식스의 팬인 나의 영향력도 적지는 않았다.) 녹음이 짙은 여름에나 어울릴 법한 노래인데- 제법 우중충하고 시린 겨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Beautiful Feeling'의 청량함과 시원함이 우리에게 차갑게 느껴지지는 않은 모양이다. 다만, 여행을 '만끽'한 우리는 분명히 '아름다운 느낌'을 가졌으며 -노래 가사대로- 늘어지도록 좋았기에, 이 노래가 자연히 테마곡이 되지 않았나 한다.
또 한 가지. 개인적으로 또다른 의미가 있기에, 나는 이 노래에 '테마곡'이라는 다소 대단한 지위를 부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낭비'가 허락되는 게 참 오랜만이었던 만큼, 나는 그제야 'Beautiful Feeling'이라는 노래에 대해 곱씹어보는 계기를 가질 수 있었다. 정확히 어떤 가사인지도 잘 모른 채로 듣고 불렀는데, 새삼 '가사가 아름답구나' 하고, 제주도 여행에서 느끼게 됐다.
이 노래가 유독 재미있게 들렸던 이유가 있다면, 내가 했던 생각을 비슷하게 한 사람이 있구나 싶어서였을 것이다. 나는 두서 없이 생각했던 것들을- 'Beautiful Feeling'은 아주 쉽고 세련되게 표현했다.
'응답하라 1997'이라는 드라마에는 '관계의 정의'라는 회차가 있다. 이 두 어절이 입에 착 감기는 느낌이라서 마냥 되뇌다 '정의'에 대해서 무심코 생각하게 되었던 적이 있다. 이 세상에는 '정의'를 가진 것들만 있나 싶어졌다. 혹은 '정의'를 가져야만 하는 것인가 싶기도 했다. 정의할 수 있는 것과 정의할 수 없는 것을 구분지을 수 있을까, 아니면 그냥 정의가 전부인 것일까, 정의의 정의는 뭘까, 정의의 조건은 뭘까- 정도의 생각까지 이어지다가 머리가 아프더라. 그래서 생각을 죽이려고 학원 숙제나 했던 기억이 난다.
다만 그때의 내가 확실하다고 여긴 것은, 생각과 감정은 차마 정의하기 힘들다는 것이었다. 끝없이 늘어지며 정리되지 않은 채 내 뇌리를 맴도는 생각들과, 꽤 풍부한 편이기에 복잡미묘한 나의 감정들을 명쾌하게 정의해내기가 어려웠던 탓이다.
세상의 그 어떤 단어들도 충분하지가 않다고 느낀 적도 있는 것 같다. 머릿속에서 유유히 돌아다니는 뭉텅이들을 어떻게 꺼내서 어떻게 다듬고 어떻게 전해야 할까 어려웠던 시절이 분명 있었다. (지금은 표현력이 많이 늘어난 만큼, 또 많은 뭉텅이들을 잃었기에 그때와는 사정이 크게 다르다만) 내가 생각하고 느끼는 바를 전달하기가 어렵다는 갈증은 쉽게 가시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내용이 Beautiful Feeling에도 녹아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이란 단어로 충분하지가 않아
이 아름다운 느낌
노래 속 화자는 사랑에 빠진 모양이다. 상대방을 바라만 보고 있어도 웃음이 나오고, 시간이 지나갈수록 마음은 깊어진단다. 그저 같은 하늘 아래 숨 쉬고 있는 순간 순간이 좋단다. 온몸에 전율이 흐르고 기쁘다못해 눈물까지 흐른단다. 그래서 사랑이라고 말하지만, 그걸로는 충분하지 못하다고 느낀다.
Some people say love
하지만 난 그것보다 더한 뭔가 있는 것 같아
감정에 대해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그 감정에 붙는 이름들은 효율적인 의사소통을 위한 기능일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몇 글자의 단어만으로 설명할 수 있는 감정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다만, 사회적 동물로서 그 감정을 설명하고 공유하기 위해, 그나마 알맞은 이름을 찾아 붙이는 것은 필요한 일이기야 하다.
논술 입시하면서 수도 없이 마주했던 논제 중 하나이다. 언어가 먼저인가, 사고가 먼저인가.
사람마다 다르게 생각하겠지만, 나는 사고가 우선한다고 생각했다. 인간의 머릿속에는 언어화될 수 없는 덩어리도 많기 때문에- 그리고 그것을 '생각'이라는 단어 말고는 달리 부를 말이 없다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언어로써 존재하지 않는 생각은 있어도, 생각을 기반하지 않는 언어는 없지 않나 싶었다. 그렇다면 언어가 먼저이지 않을까- 하고 잠정적인 결론을 내렸다. 물론 나만의 생각일 뿐이다.
언어와 사고의 관계를 다루던 지문 중 '사고가 앞선다는 입장'에서 어휘력 부족에 대한 지적을 했던 것 역시 기억에 남는다. 사고가 언어에 앞서지만, 어휘력이 부족하기에 그 사고를 다 표현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말이었다.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표현하는 도구 중 가장 대표적인 게 어휘인데, 그 도구의 능력치가 별로라면 당연히 표현도 매끄럽지 않을 것이다.
다만, 어휘력뿐만 아니라, 시간이 부족하다는 점 역시 사고가 언어로 이어지는 데 방해물이 된다고 생각한다. 우선, 시간은 우리가 생각을 정리하고 감정을 정제하는 것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쉽게 정의된 것들은 시간과 함께 남겠지만, 그렇지 못한 것들은 그저 머리 안에만 남아 세상 밖으로 나오지 못하거나 혹은 결국 잊힐 것이다. 또한, 사고와 감정은 실질적이지 않으므로, 사유하는 데 시간을 들이는 것이 비효율적인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실속이 중시되는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는 '생각과 감정'을 비교적 덜 소중히 여기므로, 이에 시간을 쓰지 않게 된다.
궁극적으로 조금만 더 시간이 있었더라면 충분히 설명될 수 있었지만 그렇지 못했기에, 섣부른 단정을 내리게 된다거나, 정말 중요한 것들을 놓치게 되기도 한다.
첫번째로, '정의'에 대해 다양한 생각을 하다가 아무것도 도출해내지 못한 채 학원 숙제를 해야 했던 나에 대해 이야기해보겠다. 감정과 생각이 정의되는 건 어렵다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남은 게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얼마 남지 않은 시간 동안 빨리 학원 숙제를 해야 했기에 단상에 더 빠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조금만 더 생각했으면 나름대로 결론을 찾았을지도 모르지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그 많은 생각들이 노트에 정리되지도, 타인과 공유되지도 않은 채 그저 머릿속에만 남아있게 되었다.
두번째로, 아주 흔한 이야기다. 같은 반 친구를 볼 때마다 얼굴이 시뻘개지고 감정을 주체할 수가 없어서 답답한 철수라는 소년이 있다고 가정해보자. 철수는 자신의 감정을 '짜증'이라고 정의한다. 스스로가 그 친구를 굉장히 싫어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괜히 더 틱틱댄다. 그리고 세상에는 수많은 철수들이 있다. 그 감정에 대해 더 생각해보고 그 친구를 다른 사람들과 달리 여긴다고 생각하며 어쩌면 좋아할 수도 있겠다는 가능성을 찾지 못한 채, '좋음'을 '싫음'로 오인하는 이들이 상당히 많다. 딱히 그럴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므로 감정이나 생각을 제대로 명명하고자 한다면, 충분한 시간을 둬야 하는 게 아닐까 싶다. 물론 살아가면서 느끼는 감정은 수도 없다. 무의미한 감정은 없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무한한 감정들을 다 일일히 보듬어주기에는 한계가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한 가지 감정에 대해 아주 오랫동안 생각할 수 있는 것은, 그 감정이 다른 것들과는 비교되게 대단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를테면 '아름다운 느낌' 같은 것이라고 볼 수 있겠다.
그런 대단한 것들은 공들일 만하다. 제법 많은 시간을 들여 보다 풍부하게 이해할 수 있다면 좋을 것이다. 단지 '사랑'이라는 정의로만 귀결할 것이 아니라, 나만의 가치를 담은 새로운 이름을 짓는다면 사고가 언어로 이어지는 경험을 할 수 있지 않을까? 그 이름이 얼마나 긴지는 크게 상관이 없을 것이다. 또한 언제든지 시간이 흐름에 따라 바뀔 여지가 충분하다. 수많은 감정들 중에서도, 특별히 선택받은 귀한 감정들이라면 그들은 그 감정의 주인과 살아가면서 수도없이 개명될 것이며 추억될 것이다.
안다면 알려줘, 없다면 지어줘
to this beautiful feeling
굳이 따지자면 나는 이 노래의 신중함이 좋았던 것 같다.
'사랑'이 맞지만, 그보다 더 뭐라고 표현하고 싶어하는 그 마음이, 한 가지 감정에 대해서도 끊임없이 생각하고 싶은 나의 욕심과 닮아있어 재미있게 들었다.
앞으로의 나는, 조금 더 어렸던 나만큼이나 새롭고 독특한 생각을 못할지도 모를 일이며, 내가 가진 풍부한 감정도 점점 더 시들어갈지도 모른다.
다만 시간의 풍파를 맞더라도, 중요한 것들을 놓치고 싶지는 않다. 내가 귀히 여기는 것들에 대해서는 끊임없이 생각해보고, 그것을 표현해내는 연습을 하고 싶다. 소중하기 때문에 그 정도 시간을 들이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이름을 지었다 다시 떼고, 잊었다가도 다시 상기해보며 앞으로도 다양한 감정들을 누려가며 살고 싶다.
데이식스의 노래는 어렵지 않다. 생전 처음 보는 단어가 등장한다거나, 현학적인 이야기들을 꺼내놓는다거나- 그런 경우가 없다. 대개 친절하며, 일상적이다. 또 그렇기에 거부감 없이 편안하게 들을 수 있다. 그렇게 상당히 평범한 재료를 사용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깊다.
우스갯소리지만, 아이돌밴드계의 백종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설탕처럼 가장 기본적인 재료로 훌륭한 음식을 만드는 백종원처럼, 데이식스 역시 일상의 표현들로 상당히 깊은 이야기들을 전달한다. 그저 따라부르기 좋은 활자에 지나지 않고, 어떤 철학이 숨어있는지 곱씹어보게 만들며 내가 가진 생각들도 꺼내볼 수 있게 만들어준다.
'Beautiful Feeling'은 내게 새로운 과제를 주었다. 앞으로 마주하게 될 귀한 관념들에 어떤 이름을 붙일지 열심히 궁리해보겠다고 다짐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자신의 노래를 듣고 뭐라도 느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영케이는 말했다. 나 역시도, 이 노래를 들으며 표면적인 글자들로부터 다양한 단상들을 떠올릴 수 있어서 기뻤다. 고찰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는 여행과 노래. 역시나 참 소중하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