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절인연

DAY6의 겨울이 간다

by 달수

관계에 대한 생각만큼이나 복잡한 건 또 없지 않을까 싶다.

다소 인간관계가 단조로워 친구가 전부라고도 볼 수 있을 중고등학교 시절마저도, 저마다 인간관계에 대한 가치가 다양했다. 한 번 알게 된 사람과의 관계는 끝까지 늘어졌던 나와 달리, 학년 바뀌고 반도 바뀌면 점점 멀어지는 게 당연지사라고 여기는 친구도 있었다.


고등학생 때, 의료용 금속으로 만든 반지에다가 각인하는 게 유행이었다. 나 역시 친구들과 함께 홍대에서 반지를 맞출까 말까 갑론을박하던 적이 있었다. 굳이 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는 의견도, 나중에 맞추자는 의견도 있었다. (나는 그냥 가만히 있었다.) 도저히 의견이 좁혀지지 않을 것처럼 보이던 도중, 한 명이 외쳤다. "어차피 내년 되면 다 멀어질 건데 그냥 지금 맞추자!"


그때 난 모두가 나와 같은 방식으로 인간관계를 여기지 않는다는 것을 처음으로 깨달았던 것 같다. 한 번 친구는 영원한 친구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오래토록 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건 참 순진한 생각이었다는 걸 알게 된 것이다. 친구를 정말 좋아했던 나에게, 놀라운 발견이었다.


어차피 멀어질 거였던 고등학교 친구들과는, 요상하게도 올해 1월 다함께 강릉에 다녀왔다. 그때 찍은 오죽헌 사진이다.


나는 참 의리가 좋은 애였다. 의리가 있어서 친구가 많았고, 역설적이게도 그 차고넘치는 의리로 인해 친구를 잃기도 했다. 인간관계에서 이기적이어서는 안될 테지만, 나의 중심은 잘 잡혀있어야 한다는 것을 모르고 의리를 발산했다. '친구'라면 '깊'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내향형이면서 주제 파악 못하고 모든 관계에 있어 충분한 에너지를 쏟으려고 과하게 힘썼다.

그러다 보니, 정작 친해지고 싶은 사람과는 충분히 친해지지 못했고, 이미 친한 사람들 중 누군가는 나에게 과하게 집착하거나 의존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관계들은 참 다양하게도 상처를 남겼다.


깊은 관계를 회피하는 것까지 갈 필요도 없이- 그냥 좀 놓을 줄도 알아야 한다는 걸 깨달은 것은, 그리고 조금씩 실천하기 시작한 것은 성인이 되고 난 이후부터였던 것 같다.


강릉 아르떼 뮤지엄


20대가 되며 많은 것이 달라졌다. 마음만 먹으면 문 열고 나가 그 옆문을 열어서 원하는 친구를 볼 수 있었던 시절은 끝났다. 물리적 거리가 멀어졌다는 것에 대해 나는 퍽 공허함을 느끼기도 했다.

하지만 아무것도 놓지 못한다면, 잃지 않는다면 그만큼 얻을 수 있는 것도 없다고 생각됐다. 그렇게 조금씩 잃는 연습을 했다.

몇 번 잃는 것에 익숙해지다보니, 그것이 완전한 '상실'은 아니라는 것 역시 알게 됐다. 내가 잃는 것은 '그 시절의 그때 그 관계들'이었다. 마음만 잘 맞는다면, 서로가 괜찮다면, 느슨하고 가벼울지언정 그 관계들은 작게나마 남게 되더라. '그때의 우리'는 아니지만 어쨌든 '우리'는 '우리'였다.




어차피 우린 앞으로 자주 못 보게 될 테니, 언제 또 맞춰보겠냐며 반지를 하나씩 샀던 고등학교 1학년 때의 친구들과는 거의 연락을 하지 않는다. 가끔 지나가다 생각나면 안부를 묻는 정도. 어쩌다 알려줄 게 생기면 전달해주는 정도. 인스타그램으로 연결되어 어떻게 지내는지 대략적으로 아는 정도. 딱 그 정도의 관계이다. 매일같이 서로가 뭐하고 사는지 알았던 고등학교 1학년 때와는 상당히 판이하다.

그럼에도 우리는 올해 1월 다함께 모여서 여행을 갔고,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다음에 또 함께 하기로 약속했다. 아무도 같이 급식을 먹었던 그 시절의 우리에 집착하지 않는다. 다만 시간이 감에 따라 그에 맞게 바뀌어가는 우리로서 함께 해나가고 있을 뿐이다. 누군가에게는 참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지만, 나에게는 그렇게 쉽지만은 않았던 일이었다. 놓을 줄 아는 것, 가벼워질 수 있는 것.




DAY6의 '겨울이 간다'는 '네가 있던 겨울'을 점차 놓아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그 겨울에 있었던 너는 누구일까. 비단 연인만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소중했던 친구일 수도 있고, 사랑했던 반려동물일지도 모른다.


밤산책을 떠나며 마셨던 핫초코와 겨울바다의 야경


지난 추억들은 미소를 지어지게 만들곤 한다. 아름답기에 우리는 그것을 추억이라고 부른다. 그 추억을 공유했던 이들이 그리운 것도 어찌 보면 놀라운 일은 아니다. 다만, 그 누구도 추억에 갇혀 살 수는 없다. 그 추억같기만을 바라는 것도 무리다.

좀 어렵고, 잔인하긴 하지만 우리는 산과 바다가 아니기에, 빠르게 변해간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유동성이 높은 인간들이 이루는 관계는, 더더욱 유동성이 클 수밖에 없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여행 마지막날 보았던 안목해변


많은 것들이 시절 인연이다. 어제 둘도 없었던 친구가, 내일은 서먹서먹한 존재로 자리잡을지도 모른다. 사회에 자리를 잡아가는 과정 속에서, 인간관계에 대한 가지치기가 이루어지는 것도 통상적인 일이다. 그 안에서 외롭지만은 않도록, 스스로의 중심을 잘 잡아갈 필요가 있다. 놓칠 수밖에 없는 관계는 잘 놓아줄 수 있어야 하며, 반대로 꼭 붙잡아야 하는 관계들은 꼭 움켜쥘 줄 알아야 한다. 나는 괜찮은 사람이 되기 위해, 괜찮은 관계를 구축하기 위해 매번 단단한 사람이 되고자 노력한다.


또 하나 위로가 되는 게 있다면, 어쨌든 '연'이라는 건 그 자체로 힘이 있다는 사실이다. 사회 연결망 이론에서 말하는 깊은 관계인 'Strong tie'와 얕은 관계인 'Weak tie' 모두 제각각의 역할을 해낸다. 연이 이어진 강도가 얼마든 간에, 각각의 연은 각각의 기능을 수행해주는 것이다. 그렇기에 모든 관계에 집착할 필요도, 어떤 관계에나 회의적일 필요도 없다.


어제까지 난 내 안에서 얼어붙은 채로
그대로 Never let go Never let go ah
언제까지나 내 안에서 영원할 것 같던
너를 Gotta let go Gotta let go ah

혼자 사는 세상이 아니기에, 인간관계에 대한 고민은 평생 할지도 모를 일이다. 나처럼 사람을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더더욱, 인간관계 문제들을 그냥 넘어가기 힘들어 할 것이다.

다만 노래 가사에서 ‘Never let go’가 ‘Gottat let go’로 바뀌는 것처럼, 놓아야 하는 것은 놓을 수 있어야 한다. 반대로, 소홀하지 않아야 할 관계에 대해서는 책임을 충분히 져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시간과 발맞춰 더 성숙해져 나가는 것만이 정답이다. 또한 그 관계를 공유하는 이들과 함께 성숙해질 필요 또한 크다.



앞으로도 살아가면서 쌓일 수많은 관계들에 대하여 스스로가 조금 더 유연할 수 있기를, 인간관계로 너무 힘들지는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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