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 <뉴필로소퍼 6호> 리뷰
바쁘다, 라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니는 요즘이다. 아니 바쁘다는 말을 하는 것도 벅찬 나날들이었다. 나는 핸드폰 첫 화면에 메모장 위젯을 띄워 놓고 거기에 할 일들을 적어놓는데, 최근 두세 달은 할 일 목록이 홍수처럼 메모장에 쏟아 내렸다. 이건 언제까지 해야 되고, 또 저건, 저것도 있네, 아 이걸 언제 다 하지, 라고 애꿎은 메모장에 대고 푸념을 늘어놓고 있으면 그새 또 하나의 할 일이 추가된다. 사람이 정말로 바쁘면 놀고 싶은 마음도 게으름피고 싶은 본능도 사라지고 눈앞의 일을 무사히 해치우는 것만 생각하게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색하고 글을 쓰던 때가 그리워서 숨이 턱턱 차오를 때도 많았지만, 여하튼 지금의 삶도 모두 내 선택의 결과이니 변명의 여지는 없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나는 지금의 생활에 나름의 매력을 느끼고 있는 것도 같다. 숨이 막히도록 바빠야 만족하는 성향의 사람이어서 그런지도 모른다. 다만 이렇게 삶의 속도가 바뀌다보니 한 가지 사고방식의 변화가 생겨서 조금 낯선 건 있다. 시간을 인지하는 방식이 바뀌었다.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그랬다. 알람 따윈 맞추지 않고 원할 때 일어나서 먹고 싶을 때 아침을 먹고, 내키는 대로 기타를 치고 기타가 재미없으면 글을 쓰고 글도 쓰기 싫으면 가만히 누워 있든가 산책을 나가든가 하면 되었다. 해가 지면 또 적당한 때 밥을 먹고 적당한 만큼 쉬고 놀다가 적당히 졸릴 때 자면 그만이었다. 지금은 그렇지가 않다. 일 분 일 초도 허투루 썼다가는 제 시간에 할 일을 다 끝내지 못했다. 그래서 시간 단위로, 아니 분 단위로 계획을 짜서 할 일을 하게 되었다. 내일은 7시에 일어나자, 일어나서 7시 20분까지 밥을 먹고, 밥을 먹으면서 일1을 어떻게 할지 생각해 놓는 거야, 밥을 다 먹으면 9시까지 일1을 하고, 일2는 2시간 안에 끝내는 걸로 하고 11시까지 하자, 11시 10분까지 잠깐 쉬었다가, 음, 일3은 오래 걸릴 것 같으니까 2시까지 다 하는 걸로 하고, 아니 2시에는 나가야 되는데, 그럼 준비시간을 20분 빼고…. 이런 식으로 전날 밤에 다음날 계획표를 짜 둬야 했다. 시계처럼 나의 하루도 60개의 구역들로 조각조각 났고, 그보다 중요한 건 나 스스로가 나의 하루를 그렇게 조각조각 쪼개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 어느 때보다도 째깍거리는 초침 소리를 가까이 들으며 살고 있다. 시간이라는 개념을 이렇게 기계적이고도 생생하게 인식해본 적은 처음이었다. 문득 ‘이게 정말 잘 하고 있는 걸까?’하는 반성적 회의감이 들 뻔도 하지만, 그런 실존적 고민 따위는 넘쳐나는 할 일 목록에 금방 휩쓸려서 마음만은 아주 편안했다. 하지만 편안해서 불안하기도 하다. 때로는 갈등과 회의와 번뇌가 필요할 때도 있는데, 그런 것들이 내 삶에 끼어들 자리조차 많이 모자라다는 게 걱정처럼 다가왔다. 그런 생각이 들고 몇 주 정도가 지났을 때 운 좋게도 이 책을 만날 수 있었다. 시간에 대한 철학 잡지였다.
뉴필로소퍼NewPhilosopher는 2013년 호주에서 창간된 철학 계간지다. ‘일상을 철학하다’라는 슬로건을 내세운 뉴필로소퍼는 독자들이 “보다 행복하고 자유로운 방식으로 삶을 살아가도록 돕는 것”을 목표로 한다. 뉴필로소퍼는 문학, 철학, 역사, 예술 등 광범위한 내용을 다루며 우리의 일상과 현대 사회에 철학적 통찰을 던진다.
매 호 주제가 달라지는데, 이번 6호의 주제는 바로 ‘시간’이다. ‘당신의 시간은 안녕하십니까?’라는 질문으로 시작하는 이번 호에는, 늘 시간에 쫓기며 숨 가쁘게 사는 현대인의 삶에 대한 철학적 분석과 통찰은 물론이고, 시간에 대해 과거의 철학자들의 이야기가 담긴 고전 텍스트, 그리고 시간에 대한 과학적·역사적 이야기까지 담겨 있다.
시간을 주제로 한 철학 잡지인 만큼, 우리 삶에서 시간을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써야 할지에 대한 윤리학적 질문과 대답이 주된 내용이었다(*흔히 윤리학은 ‘타인과의 관계에서’ 지켜야 할 의무, 예의, 규범 같은 것을 다루는 학문이라고 생각되지만, 근본적으로 윤리학은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답하는 학문이다. 따라서 나의 시간을 어떻게 써야하는가라는 질문은 윤리학의 핵심 주제일 수밖에 없다). 가장 인상 깊었던 글은 관심경제attention economy에 대한 올리버 버크먼(<가디언> 기자 및 작가)의 칼럼이었다. 그는 현대 사회를 ‘관심경제’로 규정하면서, 오늘날의 광고, SNS, 스마트폰, TV프로그램들은 사람들의 관심을 먹고 자란다고 말한다. 이러한 콘텐츠들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우리의 관심을 조종하고, 우리는 스스로의 관심을, 나아가 스스로의 시간과 수명의 일부를 나도 모르는 새에 광고주에게 무상으로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현대 사회는 콘텐츠의 사회다’, 콘텐츠 산업을 좋아하는 한 사람으로서 이 말이 어쩐지 긍정적으로 들리던 내가 조금은 비판적인 시각을 가질 수 있게 해 준 글이었다. 콘텐츠의 사회란 결국 수많은 콘텐츠들이 더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얻기 위해 끊임없이 경쟁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사람들의 관심은 그들이 관심을 쏟는 동안의 시간과 에너지이고, 이는 결국 사람들의 인생 자체를 의미한다. 즉 예전에는 기업들이 물건을 팔고 사람들의 돈을 받았다면, 오늘날의 기업은 콘텐츠를 팔고 사람들의 수명의 일부를 가져가는 것이다. 우리가 무상으로 즐기고 있다고 생각했던 수많은 콘텐츠들이 사실은 돈보다 더 귀한 우리의 시간을 대가로 제공되는 것이라는, 흥미로운 분석이 담긴 칼럼이었다.
남들이 자신의 물건을 마음대로 가져가도록 내버려 두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강탈의 대상이 시간으로 옮겨가면
두 눈을 빤히 뜨고도 몇 분이나 몇 시간, 심지어 며칠을 도둑맞는 사람이 수두룩하다.
- 나이젤 위버튼, <내게 남은 시간이 얼마나 되죠?> 中
이 글 외에도 시간에 대한 재미있는 철학 이야기들이 많았다. 우리는 죽음을 두려워하면서 정작 살아있는 동안에는 다른 사람들이 내 시간을 도둑질하도록 놔둔다는 나이젤 위버튼(뉴필로소퍼 편집위원·철학자)의 이야기, 재미있는 일을 하는 것이 정말 ‘시간 낭비’인지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매슈 비어드(도덕철학자·윤리학자)의 글, 나아가 시간이라는 개념 자체가 환상이 아닌가 하는 질문에 답하는 마시모 피글리우치(뉴욕시립대학교 철학과 교수)의 칼럼 등 다양한 철학적 통찰들을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이런 이야기들이 더욱 좋았던 이유는, 시간에 대한 과거 철학자들의 통찰도 함께 소개해 주었기 때문이다. 흐르는 강물처럼 만물은 변한다고 주장했던 헤라클레이토스, “인생이 짧다는 것보다 더 큰 문제는 사람들이 너무나 쉽게 그것을 낭비하는 데 있다”고 말한 세네카가 대표적인 고대 철학자로 인용되었다. 뿐만 아니라 고전 텍스트를 직접 발췌해 소개하는 부분도 있었다. 특히 “오직 시간의 바깥에서만 사물의 본질을 만끽할 수 있다”고 말하며, 시간에 대한 의식적인 사유에서 벗어나는 찰나의 순간을 문학적으로 묘사한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발췌문이 기억에 남는다. 그동안 지나치게 시간을 의식하느라 잠시 잊고 있었던, ‘현재에서 탈출’하는 그 느낌, 찰나인 동시에 영원처럼 느껴지는 그 순간을 잠시나마 상기시켜주는 글이었다.
철학 잡지라고 해서 머리 아픈 철학 이야기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이 점이 뉴필로소퍼의 장점이기도 하다. 시간에 대한 과학, 역사, 예술을 다룬 글들도 큰 비중을 차지한다. 특히 주제가 시간인 만큼, 물리학과 과학적 상상의 세계가 빠질 수는 없을 것이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과 시간 여행에 대한 과학적 상상을 다룬 칼럼은 철학과는 또 다른 시선으로 시간을 바라보게 해 주었다. 또한 인류가 언제부터 시간을 기계적인 분초단위로 인식하기 시작했는지, 그 전에는 시간을 어떻게 인식했는지 등 역사적 이야기도 담겨 있었다. 뿐만 아니라 시간 여행을 다룬 소설들의 약 100년간의 연표나, 실존주의자에 대한 풍자적인 만화까지 담긴, 위트와 통찰이 공존하는 잡지이기도 했다.
그중에서 김소담 작가의 <일하는 여행자의 시간>이라는 에세이가 왠지 기억에 남는다. 아마 나와 같이 대한민국 서울에 살면서, 나보다 먼저 직장생활을 했던 사람이라 마치 선배가 해 주는 이야기처럼 느껴져서 그랬던 것 같다. 김소담 작가는 외국계 기업에서 직장생활을 하다가 스물일곱 살에 직장을 접고 5개월간 유럽을 방랑했다고 한다. 그의 여행 방식이 조금 독특한데, 그는 여행지에서 도움이 필요한 사람(호스트)를 도와 하루 5시간 정도를 일하고 숙식을 제공받는 ‘헬프엑스(HelpX)’ 여행자였다. 그렇게 느리게 살아가는 여행을 하면서 작가는 이전까지는 가져 보지 못했던 “커다란 한 뭉텅이의 시간”을 얻게 되었다고 말한다. 직장인으로 살면서 열심히, 완벽하게 시간과 에너지를 소모하다가 점점 주변과 고립되는 스스로를 발견했다고, 여행을 가서야 “그 어떤 사회적인 관계도, 해야 할 일의 목록도 알람도 없이” 살면서 스스로를 재구성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고 말한다. 흔하디흔한 퇴사 후 힐링 여행 스토리처럼 보이는 그의 이야기가 왠지 모르게, 여전히 홍수처럼 쏟아져 내리는 할 일 목록을 완벽하게 처리하는 데에만 온 에너지를 쏟고 있는 나의 모습을 자꾸 반추하게 해주었다.
나는 시간이 아주 인공적인 개념이라고 주장한다. 시간은 단지 세상에 존재하는 크고 작은 변화들에 인간이 붙인 이름에 불과하다고. 그러나 그런 생각을 하는 와중에도 끊임없이 시간의 흐름을 기계적이고 생생하게 인식하면서, 쏟아 내리는 할 일 목록들 사이에서 허우적대고 있다. 그런 걸 보면 ‘이게 정말 잘 하고 있는 걸까?’라는 질문에 이 한 권의 철학 잡지가 답을 주지는 못한 것 같다. 하지만 답보다 더 소중한 질문들을, 그리고 그 질문들을 생각할 ‘시간’을 선물해 주었다. 적어도 이 잡지를 읽는 순간에는, 잠시 할 일들의 목록은 잊어 놓고, 시간에 대해서 자유롭고 즐거운 사색과 상상을 즐길 수 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