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감성의 재발견

④_5extracts(서울 이태원)

by 해랑


이태원은 술집과 클럽밖에 없는 줄 알았다. 말 그대로 유흥의 상징이었다. 이태원 카페도 안 가본 건 아니지만 근처 해방촌이나 한강진역 주변만큼 맛있는 커피를 팔거나 느낌 있는 인테리어를 가진 집은 발견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 날도 이태원에서 약속이 있는데 시간이 떠서 어디서 두 시간 남짓을 보내야 하나 헤메고 있었을 뿐이다. 이태원역에서 한강진 방향으로 걸으며 내게는 조금 생소한 동네 구경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뜬금없이 뉴욕 은행가에 있을법한 외벽이 내 오른쪽으로 나타나더니 ‘coffee’라 적힌 작고 깔끔한 돌출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입구에 블루리본 2개가 보였다. 아픈 다리를 위해 고민은 짧게, 주저 않고 들어갔다.



도시적이다. 왠지 모르겠지만 이 말이 어울린다. 한때 유행했던 화이트&블랙톤으로 결벽증적인 깔끔함을 자랑하는 인테리어는 아니다. 하지만 공간을 사용하는 데에서 여유가 느껴지는 곳이었다. 천장이 높고, 의자와 테이블은 작았다. 거기다가 입구에서 오토바이 한 대가 손님들을 맞고, 어디서도 보지 못한 기하학적인 조명, 황금 모자를 쓴 기다란 선인장까지 묘한 개성이 느껴지는 집이었다. 공간에 어울리도록 적당한 비트가 있는 음악이 크지 않은 볼륨으로 나와 무난하게 귀에 깔렸다. 팝송이나 인디음악이 나오는 동네 카페도 아니고, 클래식이나 감각적인 재즈가 흘러나오는 ‘~리단길’의 인스타그램용 카페도 아니다. 널찍한 공간에 과하지 않게 가미된 깔끔함과 독특함 어딘가에서 도시의 자본력이 느껴진다 하면 너무 나간 것일까. 한 쪽 코너에 놓인 수많은 상장이 증명하는 바리스타의 실력이 뽑아낸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믿고 마실 수 있는 맛이었다.




자기는 도시를 떠나서는 못 살 것 같다던 한 선배의 말이 생각났다. 그때만 해도 모두들 우리 부모님처럼 은퇴하면 도시를 떠나 시골로 내려가 평온한 삶을 영위하기를 꿈꾸는 줄로만 알았기 때문에 그 말이 이해가 안 갔다. 도시에서 났어도 자연으로 회귀하기를 바라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라고 믿었다. 그런데 1년 전 쯤 뉴질랜드를 갔을 때, 본성은 나고 자라기에 따라 달라진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뉴질랜드 북섬에는 컴퓨터 바탕화면에 나올법한 파아란 하늘 아래 펼쳐진 드넓은 푸른 초원들이 많이 있다. 나는 차를 타고 가다가 아주 잠깐 그 아름다운 풍경 앞에 서 봤을 뿐인데, 정말 좋다는 생각보다 ‘이런 데서는 도저히 못 살겠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풀과 양떼와 오두막 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자연이 그 아무것도 없음으로 인해 오히려 무서울 수 있겠구나 싶었다. 도시에서 나고 자란 사람은 도시에서 더욱 평온한 법이다.


물론 도시가 숨 막힌다는 말을 백 번 이해한다. 빌딩들에 가려 본래 반구(半球)형인 하늘을 조각으로밖에 보지 못하는 도시생활을 언제나 애석해하는 나니까. 하지만 숨 막히지 않는 도시도 얼마든지 많다. 이 카페와 같은 곳에서, 아메리카노와 함께 공간의 여백을 음미하다보면 도시에도 나름의 숨통이 있다는 것을 느낀다. 어쩌면 내 숨을 막는 건 도시가 아니라 도시를 살아가는 내 삶의 방식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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