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소통이 어려울 때 쓰는 한 가지 방법

feat. 노트 대화법

by Rebirth

인생의 필수불가결한 중요한 산이 있다면,

그것은 소통이다.


인간의 언어는 위대하다. 우리는 완전히 서로 다른 배경, 다른 국가, 다른 친구와 가족, 서로 완전히 다른 엄마와 아빠 사이에서도 그 아슬아슬한 구전의 실을 지나 현재의 소통까지 이르게 되었다.


이 언어는 가늠하기 어려운 추상적인 개념까지 표상할 수 있으며, 심지어 각자의 방식으로 이를 이해하기에 이른다.


'사랑' '겸손' '오만' '질투' '분노' 등...


이런 언어는 우리 사이에서 완벽하게 오가는 생각 저장의 수단으로 사료된다.


하지만 이것은 완전한 진리가 아닐 수 있다.


지금부터 언어의 불완전성과 이를 타개할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을 소개한다.


언어는 사실 불완전하다

생각해 보라. 김 부장이 시킨 업무가 있다. "오늘까지 해당 업무 대충 마무리하고, 내일까지 보고해"라고 전했다고 치자, 일단 명확한 것은 있다. 오늘까지와 내일까지다. 하지만 여기서부터 어폐가 생긴다.


오늘의 범위를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저녁까지 일까. 퇴근 전까지, 아니면 24시가 넘어가기 전까지 인지도 알 수 없다. 대충은 또 어떤가. 어떤 사람에게 대충은 완벽함을 의미할 수도 있다. 마무리의 의미도 각자가 생각하는 방향이 다 다르다. 보고에 대한 양식도 없다. 저런 업무 지시는 사실 개판이라고 볼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그런데, 위와 같은 방식의 업무지시가 존재할 수밖에 없다.

그것은 우리 언어가 신속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인데, 전두엽에 해당하는 우리 뇌는 소위 '대충' 얘기해도 맥락을 파악하고 신속하게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이 전두엽의 역할을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대충대충 말을 전달할 수 있는 것이다.


반대로 얘기하면, 말이 구체적이고 길어질수록 비효율성이 높아진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래서 결국 우리는 서로 오해가 생긴다는 결론에 귀결하게 된다.


결국, 오해가 생긴다.

팀장이 팀원에게, 팀원이 알바에게, 알바가 대표에게, 서로가 서로에 대한 다양한 오해들을 만들 수밖에 없다. 여기에다 인간의 방어기제, 거울신경세포, 의심하는 능력 등이 더해지니 언어의 완벽성은 완벽하게 무너지는 것처럼 보인다.


결국 우리는 서로 오해가 생긴다. 그래서 이런 오해들을 풀기 위해서라도, 또 진척 있는 진행을 위해서라도 우리는 서로 협의해야 하고, 이를 위해 소통이 필요하다.



적어라. 그것이 정답이다.

우리는 노트 대화법이라고 이것을 부른다.


필자의 팀원들이 20대 초반으로 구성된 집단이었을 때 이야기다. 팀원들은 아직 사회 초년생도 아닌 그냥 대학생 친구들이다. 살면서 고등학교를 거치며 이런 소통의 기회가 없었으니, 이 친구들에게 대화는 너무나도 큰 스트레스였다.


심지어 사회에서는 별 것 아닌 대화처럼 보이는 것들도 상당히 예민하게 받아들이며 비난하거나 거세게 감정적으로 동요하기 일쑤였다. 결국 대화하는 방식을 모르니 서로 손절하고 무시하기에 이르렀다. 위 내용은 의사소통이 부재한 사회에서 벌어지는 참극을 나타낼 수 있는 대표적인 기억이다.


의사소통을 잘하려면, 일단 적어야 한다.

나는 팀원들이랑 그럭저럭 잘 지냈지만, 팀원들은 서로 파국에 이르렀다. 이미 내가 중재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그 뒤로 나는 누구에게나 알려줄 수 있는 의사소통을 잘하는 법에 대해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해결은 '적기'였다.


일단 정해진 방법을 두지 말고, 어떤 부분 때문에 내 감정이 불편한지, 그리고 내가 원하는 게 뭔지 각각을 적어봐야 한다. 감정으로 따지자면, 의사보다도 나를 더 잘 진단하는 사람은 나밖에 없다. 부모도 애인도 아니다. 거기서부터 출발이다. 감정을 뚝 떼어 읽는 것이 매우 도움이 된다.


그리고 내가 전하고 싶은 내용들을 적어봐야 한다. 그런데 잘 기억해라 모든 소통은 전부를 전할 수 없다.


그래서 모든 메시지를 하나로 압축시켜야 한다.

그 하나의 메시지만을 전달하려는 마음으로 내가 전하고 싶은 것을 요약했을 때 상대에게 진심 어리게 다가갈 수 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상대가 추가적으로 오해할 수도 있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하지만 적어도, 그 말에서 내가 필요한 '목적'만 뚜렷하게 달성하는 것을 목표로 둬야 한다.


예를 들어, 어떤 업무가 너무 하기 싫은 상황이다. 그리고 내가 잘하는 것도 있다. 내가 잘했던 것도 말하고 싶고, 자신 있는 것도 말하고 싶다. 그리고 이 업무가 하기 싫은 이유도 다 말하고 싶다.


하지만 상대 귀에 들리는 것은 없게 된다. 오해만 커진다. 내가 이 업무를 못한다는 한 마디로 축약해야만 한다. 그래야 오히려 내가 원하는 것을 얻게 된다.


말이 많을 때가 아니라, 말이 하나일 때 얻는다

한 맥락을 신중하게 골라야 한다. 이 일은 당싱의 스테레오타입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처음 말한 것처럼

- 감정을 쓰고

- 원하는 것을 쓰고

- 그리고 마지막으로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을 딱 하나만 남겨야 한다.

다시 말하지만, 거기서 당신이 원하는 것을 얻게 된다.


오늘은 언어의 완전성과 의사소통에서 적는 것의 의미, 그리고 '말이 딱 하나'여야 진정한 힘을 발휘한다는 것을 알아보았다.



다음에도 삶과 성장에 대한 인사이트를 얻고 싶다면 구독. 구독은 작가의 글 작성에 큰 힘이 됩니다.

감사합니다.

-rebirth 올림-






작가의 이전글"아니에요" 거절이 겸손? 진짜 겸손의 의미 다섯 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