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화 소설
토요일, 양의 빈혈 수치는 11.
양의 몸에 피가 새는 곳이 없음이 다시 한 번 증명되었다.
이날 과립구는 230. 어제의 130에 이어 또 조금 올랐다. 원석의 말대로 양이 젊어서인지 촉진제를 안 쓰는데도 금세 0을 벗어났다.
그러나 펄펄 끓는 열도, 부은 목과 발목도 아직은 여전했다. 어젯밤에는 열이 40도까지 올랐고 오늘도 오전부터 39도를 넘어서기 시작했다.
문제는 열이 나는 원인을 모른다는 점이었다. 의사가 혈액 배양 검사를 지시하는 까닭이었다. 열이 나는 이유가 혹시 몸에 나쁜 균이 들어가서인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격리 병동에서는 누구든 한 번이라도 체온이 38도를 넘으면 무조건 받아야 했다. 예외는 없었다.
6인실에서는 혈액 배양 검사를 두고 매일같이 다툼이 일어났었다. 환자와 보호자들은 이 검사가 두 팔을 직접 주사기로 찔러서 피를 뽑는 방식인 데다, 말 그대로 피 속의 균을 키워서 확인하는 검사라서 짧게는 이틀에서 길게는 일주일까지 지나야 결과가 나온다는 사실 때문에 화를 냈다.
면역력이 낮은 상태에서는 열이 끝도 없이 났으므로 앞의 검사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같은 검사를 계속하는 상황이었다.
더구나 항암 환자의 경우 혈관이 약해져서 잘 안 잡히다 보니 인턴 의사의 실력이나 컨디션에 따라 근육을 잘못 찌르는 경우도 많았다.
근육에서 피가 나올 리 없고, 바늘에 깊숙이 찔린 근육은 혈관과는 비교도 못하게 오래도록 아팠다. 양도 하루에 3번이나 근육을 찌른 인턴 의사에게 버럭 화를 낸 적이 있었다.
그래도 피를 뽑혀야 해열제를 받을 수 있었다. 면역력이 0으로 떨어진 뒤로는 해열제를 먹어도 금세 열이 다시 올랐지만.
후폭풍 속에서는 저녁이 오고 땀이 나도 열이 안 내렸다.
이미 지난주부터 양은 하루에도 몇 번씩 38도를 넘었고, 균 검사 두세 번은 기본 일과였다.
양의 팔은 온통 주삿바늘 자국투성이로 변했다. 견디다 못한 양과 금희는 검사를 피하려 눈물겨운 노력을 했다.
체온이 37.5도를 넘어가기 시작하면 몸을 식히려 이불을 걷었다. 환자복도 젖히고, 양말도 벗어 보고.
그래도 결국 38도가 넘었을 때는 1시간만, 아님 30분만, 10분이라도 기다려 보자고, 분명히 열이 내릴 거라고, 햇볕을 너무 오래 쏘여서거나 아니면 수혈을 받아서 지금 잠시 몸이 뜨거워진 거라며 간호사를 설득했다.
그렇게 우기다 1시간이 지나도 열이 안 내린 이날, 양은 결국 아이처럼 엉엉 울고 말았다.
손전등 간호사는 어쩔 수 없이, 우는 양의 팔에 주사기를 찌르고 피를 뽑아 갔다.
어쩌다 내가 지금 여기까지 온 거지? 왜 하필 나야? 왜 내가 이런 고통을 당해야 해?
그래, 내가 끔찍한 일을 저질렀어. 호수의 심장을 찌르고… 세하의 진심을 할퀴었지.
넌 어려. 넌 아니야. 넌… 양은 자신의 마음을 잡으려 세하에게 상처를 줬다. 그러다 결국 뒤늦게 세하를 향한 돌이킬 수 없는 마음을 인정하고 말았을 때, 세하는 양을 밀어냈다.
난 아니야. 난 아니라고 했잖아. 난 잘 모르겠어. 이미 흔들린 마음으로 호수에게 돌아갈 수도, 너무 늦어 굳게 닫힌 세하의 마음을 다시 열 수도 없던 양이었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서 양은 길을 잃었다. 어지러운 방황 속에서 양은 시련을 당했을 뿐 아니라 자신 역시 누군가에게 시련이 되기도 했다.
그렇다고 이렇게까지… 내가 지은 죄가 무거웠을까? 답 없는 미로에 갇혀 양은 눈물을 흘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