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람들이 정말! 당신들이, 피임약은 병원에서 못 주니 약국에서 사오라고 했잖아욧! 이해가 안 가는데도 내가 군말 없이! 혹시 몰라 한 통을 더 사다 줬는데 그걸 잃어버려요? 무슨 일을 이렇게 하냐구욧!”
“저희가 관리하기 어렵기 때문에 매달 한 통씩만 사오라고 하는 건데요….”
“뭐예요? 그럼 지금 한 통을 더 사다 준 내 잘못이라는 거예욧? 온갖 약이 다 있는 종합 병원에서, 왜 피임약만 보호자더러 매달 약국에 가서 사 오라는 거예요? 그리고! 오늘처럼 애가 토하거나 바닥에 약이라도 떨어뜨리면! 피임약은 순서에 따라 요일 별로 정해진 약을 먹어야 하니까 새 통에서 그날에 해당하는 알을 골라 먹여야 하는데 예비약이 없으면 어쩌라는 거죳? 날짜와 시간을 맞춰서 먹으라고 그렇게 강조를 하면서! 입이 있으면 말을 해 봐욧, 간호사라는 사람들이!”
“말씀이 좀….”
“심하다고 생각해욧? 나 참, 사람들 말대로 파업 때문에 이 지경이면 이게 무슨, 환자만 죽으란 파업이네! 환자를 위한답시고 파업하느라 환자를 이렇게 애먹이니, 세상에 무슨 이런 생떼가 있어!”
금희는 씩씩거리며 돌아왔다.
“피임약을 잃어버렸대. 일요일이라 오늘은 약국도 안 하니까 배선실에 가서 다른 보호자들한테 빌려 볼게.”
“응.”
“나가는 길에 쓰레기통도 비워야겠다. 병동 안 쓰레기통은 다 찼어. 휴게실에 가서 버리고 올게.”
토사물이 담긴 쓰레기봉투를 들고 나서는 금희의 뒷모습을 보는 양의 마음은 뒤집히는 뱃속만큼 아렸다.
알아. 엄마가 싸우는 건, 저렇게 예민하게 구는 건, 투사가 된 건 나 때문이야.
금희에 대한 미안함과 안타까움, 이러다 병원에서 진상 환자로 찍히는 게 아닌가 하는 부끄러움과 걱정이 겹쳐서 눈물이 나왔다.
병원도 실망스럽긴 마찬가지였다.
혈액 검사 오류에, 줄줄 흐르는 수액에, 피임약까지 잃어버리고 실수해도 모르쇠를 잡으니!
온갖 생각에 휩싸여 우는 동안에도 배는 아팠고 설사는 계속됐다.
조금 지나자 눈이 아팠다. 붕어눈으로 안과 진료를 받아야 할 수 있다는 원석의 말이 떠올라 양은 억지로 울음을 그쳤다. 이제는 우는 것조차 마음껏 할 수 없었다.
다행히 배선실에서 금희가 피임약을 빌려 왔고, 복부 X-ray에선 이상이 없었다.
“아무래도 정상균이 죽어서 그런 것 같아요. 일단 지사제를 처방해 드릴 겁니다. 이러다 사람이 죽겠어요. 사람부터 살리고 봐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