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화 소설
새벽 5시쯤, 문득 뭔가 양을 깨웠다.
알 수 없는 답답함은 일어나 앉으면 조금 덜하다가 누으면 더하길 반복했다. 그러다 졸음이 쏟아져 양은 잠들어 버렸다.
얼마 안 가 엄지손가락에 연결된 기계가 시끄러운 경고음을 내기 시작했다. 모니터에도 빨간 불이 들어왔다.
산소 포화도가 떨어지고 있었다.
금희는 잠결에도 얼른 비상벨을 눌렀다. 간호사가 달려와 살펴보더니 양의 코에 산소 호흡기를 달았다.
“몸 안의 산소량이 줄어들어서 숨쉬기가 힘드실 거예요. 호흡기를 쓰실게요.”
“호흡기요?”
“네. 지난번에 해 보셨던 코에 끼우는 거요.”
“…네.”
만성골수백혈병이라 먹는 약으로 치료하는 줄 알고 퇴원을 준비하던 날 밤이 양의 기억을 두드렸다. 갑자기 간호사가 산소 호흡기를 다시 씌우고 나서 퇴원이 취소됐던 그날.
안 좋은 예감에 사로잡혀 양은 원석을 기다렸다. 곧 원석이 달려왔다.
“하아. 오늘 오후로 잡혔던 골수 검사 시간을 오전으로 당겼습니다.”
“골수 검사를 당긴다고요?”
“네. 안심해 교수님께서 그렇게 지시하셨어요.”
“…네.”
“괜찮아요?”
“네?”
“일단 산소 포화도는 나아졌군요. 내일까지 지켜보고 계속 이러면 검사를 해 보죠. 호흡기는 당분간 씁시다.”
느낌이 안 좋았다.
퇴원 이야기가 나오자마자 또다시 산소 호흡기 신세라니… 뻐근하게 아픈 골수 검사를 끝내고 마약성 진통제인 모르핀까지 맞으며 한숨 자고 나서야 양은 좀 살아났다.
누군가 메시지를 보냈는지 무음으로 해 둔 휴대폰에서 불빛이 반짝였다.
양은 한숨을 쉬었다. 괜찮으냐는 걱정스런 말들에 답을 하는 일만큼 어려운 일도 없었다. 지금의 양에게는 그랬다.
휴대폰을 보니, 사람들과 마지막으로 연락을 나눈 지 2주가 지났다. 안 읽는 동안 쌓인 말들이 많았다.
“지금 뉴스 보니까 병원이 총파업에 들어갔던데, 넌 괜찮은 거야?”
호수의 물음.
“괜찮아?”
“오늘은 좀 어때?”
“힘내. 하루하루 더 나아질 거야.”
“산책을 하다 본 꽃이다. 보면서 힘을 내렴.”
“내 아들 사진이야. 나는 이 사진 보면 힘이 나더라. 너도 보면서 힘내.”
“면회를 못 가서 미안해. 내가 그런 상황이었다면 언니는 어떻게 해서든 나를 만나러 왔을 사람인데… 이 일은 내 평생에 한으로 남을 거야.”
“영접 기도. 하나님 아버지, 지금까지 예수님을 믿지 않고… 이제는 나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영접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양아, 이 기도를 계속 반복해서 드려. 읽기만 해도 돼. 하나님이 너를 구원하실 거야. 꼭 해. 기도할게.”
종교적인 도움이 절실한 누군가에겐 필요한 손길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양에겐 아니었다.
솔직히, 이 중에 어떤 말도 위로가 안 됐다.
도리어 화가 치미는 말도 있었다.
이렇게까지 모르나? 내가 어떤 상황인지, 어떤 마음일지. 세상에는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말도 있어.
어떤 사람들의 말에는 양이 죽으리라, 혹은 죽을 수도 있다는 포기가 깔려 있었다.
“괜찮지 않아.”
“몸도 마음도 엉망이야.”
“돌아 버릴 것 같아서 대화방을 나가요.”
“나아지면 좋겠습니다, 저도 정말.”
안 괜찮은데 괜찮다고 말하는 건 이제 신물이 났다.
이해나 배려, 예의 따윈 남들한테나 주자. 이러면 더 이상 귀찮게 안 하겠지. SNS를 없애야겠어.
양은 내키는 대로 답을 하며 마음먹었다.
이때 고라미에게서 전화가 왔다. 라미는 예전에 일하던 직장에서 알게 된 친구였다. 양은 잠깐 고민하다 받았다.
“양아! 전화는 받는구나!”
“응, 답 못해서 미안.”
“아냐, 전화라도 받아 줘서 고마워! 골수 이식을 해야 한다고 했지? 네게 맞는 골수는 구했어?”
“응. 친오빠가 주기로 했어. 마음 써 줘서 고맙다.”
“있잖아, 내가 대신 주면 안 될까? 나 정말 널 살리고 싶어. 내 골수를 줄게. 응?”
“뭐? 괜찮아. 다행히 우리 친오빠랑 100퍼센트가 일치해서 그럴 필요가 없어.”
“그래도 내가 정말 주고 싶어서 그래.”
진심이 느껴지는 라미의 말에 양은 따듯해졌다.
내가 완전히 잘못 살진 않았구나. 골수를 주겠다는 가족에, 친구까지 있으니.
“정말 고마워. 네 마음, 기억할게. 근데 우리 오빠가 주기로 해서 정말로 괜찮아. 혹시 오빠의 상황이 어려워지면 말할게.”
“응, 그럼 꼭 말해 줘!”
휴대폰을 닫기 전에 마지막으로 양은 세하의 SNS 프로필을 확인했다. 거기엔 아무런 사진 없이 글만 하나 적혀 있었다.
“두 개의 심장?”
인터넷에 검색하자, 심장병으로 시한부 판정을 받은 여자가 나오는 로맨스 소설의 제목이었다.
너는 무슨 생각이지?
퇴원하면 고향에 다녀오자던 말을 끝으로 세하는 침묵을 지켰다.
내가 답을 했던가?
기억나지 않았다.
준호에게서 나와 주고받은 이야기는 들었겠지. 이 소설은 가볍잖아. 이 정도로 받아들이는 거야, 너는.
그러고 보니 세하는 양에게 골수를 기증해 줄 사람을 찾았느냐고 물어본 적이 없었다.
준호의 말이 맞았어. 세하는 괜찮을 거야.
양은 SNS를 탈퇴하고, 휴대폰의 메시지함도 통째로 지워 버렸다.
11월의 첫날. 병원에 오고 2번째로 달이 바뀌던 날, 밤을 양은 이렇게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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