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삶은 사람 May 22. 2024

치열한 삶에 숨이 턱까지 차오르면 우는 건 사치가 된다

울기까지 하면 그나마 오가던 숨 한 줄기마저 막혀버리잖아

우울이 파도처럼 나를 덮어버리고

무력감에 한없이 가라앉을 때

스치듯이 봤던 한 드라마의 대사가 떠오른다.


내가 널 낳고 미역국을 먹었다


한 두 번 본 대사가 아니라,

어느 배우가 어떤 드라마에서 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아마도 자식에게 푸념하는 어떤 엄마 역할의 대사였으리라.

아들인지 딸인지 모를 그 자식은 불효막심한 데다가 목 잡고 뒤로 넘어갈 문제를 일으켰을 것이다.

그러니 엄마가 한탄을 하면서, 

넋두리로 혼잣말로 했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그 대사가 

가장 속상하고 버틸 수 없을 것 같을 때 스멀스멀 올라온다.

그리고 가슴을 아프게 짓누른다.

떠오르는 대로 한 글자 한 글자가 머릿속을 스치면

목이 메어버린다.


내가 만나는 수많은 아이들은 이렇게 건강한데,

왜 우리 아이는 이렇게 힘겹게 하루하루를 보내야 할까?

누군가에게는 기분 좋은 설렘을 주는 하루하루가

우리 아이는 힘겨운 변화로 싸워나가야 하는 도전이 되어야 할까?


온 마음을 다해도,

제자리다 못해 뒷걸음질 쳐버리는 가혹한 현실에 

나는 목이 메이고 숨이 막힌다.


숨이 턱턱 막히면,

울고 싶어도 울 수가 없다. 

아니 눈물을 흘릴 여유가 없다.

이렇게 숨 막히는 데 울기까지 하면, 단숨에 바스러질까 봐.

우는 건 사치가 된다.


운다고,

술을 마신다고,

하루 제낀다고,

지금의 현실이 사라질까?

아무것도 변하지 않을 현실을 마주할 힘만 잃고 한 번 더 굴복할 뿐이다.


그래, 나는 너를 낳고 미역국을 먹었다

맞다.

나는 미역국을 먹었다.


너를 잘 키우려고 

얼른 힘내려고 

빨리 회복하려고 미역국을 먹었다.


미역국을 먹었던 그 마음으로 돌아가

오늘 다시 힘내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삶이 무거울 때는 뒤를 보자. 그래도 여기까지 왔잖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