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잣대를 내려놓고 온전히 너를,
시간이 키워준 학습된 무기력을 발판 삼아!
부모에게 자식은 무엇일까?
목숨보다 귀한 보물이고,
인생에 더없는 선물이고,
나보다 더 사랑하는 유일무이한 존재고,
뜻대로 맘대로 안 되는 요물이고,
내 속에서 나왔지만 나도 모르겠는 미지수고...
어떤 비유든 다 들어맞는다.
다른 듯 하지만 무척 큰 의미인 건 확실하다.
너의 존재로 부모가 되었고,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책임감의 무게를 감당해야 하고 가늠할 수 없는 행복을 누리고 있으니까.
그런데,
우연히 본 유퀴즈 영상에서 서울대병원 김붕년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자녀는 부부에게 찾아온 귀한 손님이라고 하는 말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나는 아이에게 무엇을 기대한 것일까?
나의 삶이 퍽 괜찮다는 것에 대한 증거.
내 양육과 교육관이 옳다는 확신.
내가 혹시 가졌을지 모르는 우월한 부분이 유전되고 있다는 자부심?
무엇이 있었고, 무엇이 더 있었을지 모르겠다.
암튼 설명할 수 없는 기대가 있었던 건 확실하다.
나는 아이가 자폐 의심 소견을 받았을 때,
평범함을 기대할 수 없는 아이의 삶에 대한 걱정과 가여움과 슬픔을 느끼는 동시에,
이 아이를 데리고 걸어갈 나의 녹록지 않은 인생에 대한 한탄과 좌절감을 느꼈다.
"왜 하필 나에게!, 나의 아이에게!"를 수없이 외쳤다. 나락으로 떨어진 기분을 떨치기 어려웠고, 아이를 가여워하면서도 아이를 원망하는 시간도 많았다.
하나의 문제를 보고 미래에 펼쳐질 열의 문제들을 걱정했고,
나와 남편은 자폐 아이를 키우며 포기해야 하는 삶에 대한 불만도 계속 마음에 눌러 담았다.
눌러 담은 걱정과 불만은 가끔씩 터져 나와, 이따금씩 집안 공기를 냉랭하고 무겁게 만들었다.
그때 절대 와닿지 않던 말.
시간이 약이다?
그게 통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단연코 시간은 약이 아니었다.
해결해 준 게 아니라, 그냥 익숙해질 뿐이었다.
시간이 지나니 상처도 고통도 무뎌졌다.
회복된 건 아니고 그냥 함께 가는 것뿐이다.
피하지 못함을, 의도 없이 당함이 익숙해지는 학습된 무기력과 같다고 할까?
시간은 학습된 무기력을 키워줬다.
어쨌거나 무기력도 힘이니,
힘이 커서 살만 해졌다.
그리고 그 힘으로 아이를 온전히 보기 시작했다.
부모로서 갖고 있던 욕망과 기대를 접고
아이를 있는 그대로.
아이가 좋아하는 것을 같이 즐기고,
이이와 같은 눈높이에서 소통하고,
그러니,
포기보다 어려운 인정이라는 걸 하게 되었다.
아이를 제대로 보니,
아이의 기쁨이 보이고,
아이의 외로움이 보이고,
아이의 기다림이 보이고,
아이의 자람이 보였다.
멈춰있는 줄 알았던 아이는 자기 속도대로 자라고 있었고,
마냥 좋을 줄 알았던 아이는 외로움도 기다림도 느끼는 나와 같은 존재로 커있었다.
이제 아이의 눈높이에 맞춰 무릎을 굽힐 마음이 생긴 것 같다.
이제 아이를 조금 이해할 수 있는 것 같다.
이제야 엄마는 진짜 너를 사랑하고 있는 것 같아.
열네 살 아들과 뽀로로 보기♡ 너를 있는 그대로 사랑할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