갇혀 지내는 아이로 키우고 있었다

최소한 엄마는 사춘기 자폐아이의 성장을 인정해야 한다.

by 삶은 사람

아이가 하는 문제행동이 가벼웠던 적이 없었다.


아이가 네댓 살 때 했던 행동들에도 헉헉댔다.

그 시절 사진을 지금 보면,

"너무나 작고 어린아이인데 뭐가 그리 힘들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다가도

그 당시를 기억하면 아찔함에 고개를 절로 흔든다.


주행하는 차문을 열어 떨어진 아이.

길이고 어디고 상관없이 용변을 보는 아이.

쏟고 엎고 난장을 쳤던 아이.

잠을 제때 못 자고 소리를 질러 도저히 아파트에서 버틸 수 없어 밤새 운전하게 만든 아이.

하루에 두세 시간 자고도 몇 날 며칠 쌩쌩했던 아이.

뭐든 입으로 들어가고 뭐든 만져대느라 가만둘 수 없었던 아이.

수없는 일들이 있었고 수없이 고생했다.

아이도 나도.


그때를 생각하면 수월해졌다고 생각하다가도

그때는 어렸고 작았기에 용인되었던 것들이

이제는 컸기에 안된다는 것을 느끼니,

더 어려워지기도 했다.


아이는 조금 컸는데,

기준이 많이 달라졌으니 말이다.


최근 아이의 제일 큰 문제는 공격성이다.

뜻대로 안 되는 상황이 생기면 꼬집는다.

평소에는 잠잠하다가 컨디션이 안 좋으면 나타난다. 보통 월 2회 정도 나타나고 한 번 꼬집기가 나오면 그 자리에서 3~4차례 정도 꼬집으려고 한다. 피하면 쫓아와서 꼬집으려고 하는데, 이유가 명확지 않다.


때로는 속이 안 좋아서,

때로는 피곤해서,

때로는 원하는 것을 안 들어줘서,

때로는 이유 없이,


발화가 서툰 아이들에게 문제행동이 많고, 소거가 잘 되지 않는다.


말이 되는 것만으로도,

누군가와 나눌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자신의 감정을 조절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이다.

하다못해 혼잣말이라도 해서 넋두리라도 해야 하는데,

독백의 기회조차 제대로 갖지 못하는 아이는

감정의 분출조차 타인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것이다.


"아이, 씨!"

"짜증 나!"

이런 말조차 내뱉을 수 없는 아이,

상대방을 있는 힘껏 꼬집고 나서도 성이 안 차는지 한참을 울고 나서야,

개운한 듯 평정심을 찾는다.


문제행동이 일어나면,

나는 벼랑 끝에 서 있는 기분이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고, 때로는 참담하고 암담한 기분이 든다.

지금까지의 노력이 물거품이 되는 것 같아 좌절한다.


그리고 아이보다도

더 뜨겁게 분노하고,

더 침전하듯 좌절하고

더 맥없이 주저앉는다.


이제껏 나름 열심히 최선을 했다고 생각했는데,
한걸음 한걸음 나아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뒷걸음질이었을까?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멀고.
아직도 풀어야 할 숙제가 많다.

나는 조금씩 지쳐가고 있는데.

그렇게 아이의 문제행동은

화마가 휩쓴 것처럼 집을 쑥대밭으로 만들어놓는다.

빈번한 문제행동에는 단련되어 있지만,

속수무책으로 겪는 롤러코스터에는 여전히 유리멘탈이다.


그러면 나는 아이보다 내가 더 가여웠다.

애쓰고 있는데,

왜 나아지지 못하는가.

나아질 수 없다면,

왜 심해져야 하는가.

그런 생각으로 한탄하다가 아이를 가만히 보았다.




우리는 아이를 어떻게 대하고 있는가.


아침부터 잘 때까지 아이는 수없는 지시와 안내의 홍수 속에서 살고 있었다.

"00아, 세수해야지."

"00아, 옷 갈아입어야지."

"00아, 양치해야지. 아니 이렇게. 아니 저렇게."

수첩에 적다 보니 5분도 안 된 사이에 아이한테 남편과 내가 하는 말은 20 문장이 넘었다.

메신저는 분위기 따라 사람 따라 다정하기도 했고, 일방적이기도 했지만

메시지는 한결같았다.

모두 다 지시.




아이는 선택권 없이, 누군가의 보살핌과 애정 속에서 끊임없이 통제와 명령 아래 놓여있었다.



이제 알았다.

아이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괴로울 거란 걸.


아이를 위해, 나 자신을 양보한다고 생각하며 살았지만,

무엇이 아이를 위하는 것인지 생각을 제대로 못했다.


제자리걸음이라고만 생각하며

커가는 아이를 보지 못했다.

여전히 세 돌의 아이 그 모습 그대로 생각하며 대해왔다.


아이에게 너무 미안하고,

나 자신이 너무 잔인해서

얼굴을 차마 들 수 없었다.


가장 가까운 부모가, 가장 아이를 옴짝달싹할 수 없게 옭아매는 간수였다니.


상대적 눈높이에서,

여전히 어린 아기 같은 아이를 계속 통제하고 지시하는 것이 최선이라 생각했다.

아이를 있는 그대로 봤다면,

열네 살 성장통을 겪고 있는 아이 모습 그대로였을 텐데.


최소한 아이를 계속 지켜봤던 엄마라면,

아이의 성장을 인정해줬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다른 열네 살 아이를 바라보듯 마냥 지켜보고 기다려줄 수는 없지만,

그래도

선택할 수 있는 몇 개의 선택지라도,

지시보다는 미리 정해진 규칙을 안내해서라도,

시행착오를 겪을 수 있는 기회라도 줬어야 했다.



확 바뀌지는 않았지만, 집에 몇 가지가 바뀌었다.


아이에게 지시를 내리는 횟수를 줄였다.

시각 안내판을 게시했고,

2지 선다형이 되더라도 아이에게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고,

일상적인 생활에서는 아이가 하는지 지켜보고 개입하는 틈을 주기도 했다.

한 마디하고 두 마디 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제스처를 취하거나, 기다려보기도 했다.


또 문자를 쓸 수 있는 아이에게 핸드폰을 선물했다.

보완대체의사소통(AAC) 어플을 이용해 자기 의사를 표현하게도 했고

가족들과 문자를 주고받기도 했다.

인상 깊은 장소나 대상을 사진 찍는 것도 연습하고 있다.


완전히 나아지진 않았겠지만,

엄마인 나는

조금씩 변하고 있었다.


아이의 변화를 기대하지만,

아이의 변화가 없더라도,

아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아이가 커가고 있음을 인정하는 것.

아이를 존중하는 것.

그것이 먼저였음을 이제야 깨닫는다.


너무 늦지 않은 깨달음이었기를 바라며, 오늘 한 번 더 없는 힘을 내보기로 다짐한다.

파이팅.



KakaoTalk_20230813_225446236.jpg 미끄럼틀처럼. 스스로 내려가기를 지켜봐 주는 것, 스스로 내려온 것을 격려해 주는 것. 그것이 부모의 역할일지 모른다.











이전 20화일상마저 수동적일 필요는 없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