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폐아이에게도 선택의 고민이 필요해.
그 선택은 지나치게 제한되어 있으니 말이다.
물론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고 핑계 댈 것들도 많다.
나 : 떡볶이 먹을까? 피자 먹을까?
아이: 피자
나 : 피자 먹을까? 떡볶이 먹을까?
아이 : 떡볶이
짬짜면 같이 두 개가 정말 고민되는 상황이 아니었을 때에도 그러했다.
정말 그중에 간절히 원하는 게 있었지만,
아이는 언어적으로 제공되는 자극에 무엇을 집중하고 무엇을 답해야 하는지 혼동스러워했다.
그러다 보니 내가 아이의 마음을 자꾸 읽으려고 했다.
늘 내 짐작으로 '아니, 넌 그걸 좋아하지 않는데, 선택할 줄 몰라서 그걸 선택한 걸 거야.'라고 생각하며,
내가 대신 선택해 줬다.
어린이날 선물을 사주겠다고 간 장난감가게에서도, 아무것도 집지 않고
<여긴 어디? 난 누구?>하는 표정으로 있었고,
여행지에 가서도 이거 하자 저거 하자 종알종알 얘기하는 동생과 다르게,
남편이나 내 손을 잡고 여기저기 끌려다니기 바빴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아이가 스스로 선택하는 건 없었다
그래.
아이에게 물어야 했다.
그 선택이 합리적이든 찍기 신공으로 선택한 것이든, 아이가 정해야 했다.
말이 아닌 다른 형태로 물어보기 시작했다.
전자노트를 이용해 물어보기도 했고, 단어카드를 제시해서 물어보기도 했다.
물건을 직접 보여주면서 물어보기도 했고, 그림이나 사진을 가지고 물어봤다.
물어봤고,
기다려줬다.
아이가 말한 답이 맞는지 틀리는지 고민하지 않고 들어줬다.
불안한 마음이 한켠에 있었지만, 아이의 선택을 인정해 줬다.
그 선택이 허탕이든 오류든 그건 아이의 몫이라 생각했다.
마음을 비워서였을까?
아이가 자라서였을까?
아이는 조금씩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표현하기 시작했다.
먹고 싶은 것을 고르고,
가고 싶은 곳을 말하고,
자기가 원하는 것을 표현하기 시작했다.
아이의 능력이 제한되었다고, 아이의 삶까지 제한시킬 필요는 없었다.
아이에게 장애가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아이에게 자기 결정권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아주 어린 아기도 젖병을 물지 안 물지 선택한다.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자기의 의지대로 선택하면서 세상을 마주하는 것일지 모른다.
나는 아이를 너무나 잘 알고 있다는 착각 속에서,
아이를 더 장애 안에서 옭아매면서 키웠던 것이다.
그게 안전하고, 평화롭고, 상처받지 않는 길이라고 믿으면서 말이다.
아이가 아니라,
시행착오를 겪는 아이를 보는 내가 상처받지 않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아이에게 선택의 즐거움, 선택의 고민을 기꺼이 누릴 수 있게 해줘야 한다.
그게 아이가 존중받고 있는 것이고,
그게 아이가 사회에서 살아가는 것이고,
그게 아이를 믿고 있다는 뜻이니.
자신의 생각에 무조건 따라주지 못하지만, (요새는 워터파크와 리조트를 매번 조른다;;;)
자신의 생각을 기다려주고 듣고 있어 줌을 통해 아이가 조금 더 행복해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