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일 동안 내가 다시 만나게 된 것
나는 한동안 내 몸을 잊고 살았다.
정확히 말하면 잊었다기보다는 외면했다는 표현이 더 맞을지도 모른다.
몸은 늘 곁에 있었지만, 나는 그것을 하나의 도구처럼 사용하며 지냈다. 바쁠 때는 밤늦게까지 앉아 있었고, 피곤하면 커피로 버텼고, 스트레스가 쌓이면 각종 자극적인 음식으로 풀었다. 몸이 보내는 신호는 종종 들렸지만, 대부분은 무시했다.
살다 보면 그런 시기가 있다.
몸보다 일이 먼저이고, 건강보다 당장의 편안함이 먼저가 되는 시간. 나도 그 시간 속에서 오래 머물렀다.
그러다 어느 날 체중계 위에 올라섰다.
숫자가 낯설게 느껴졌다. 예전의 내가 아니었다. 체중이 늘어난 것보다 더 크게 느껴졌던 건, 내 몸이 나에게서 멀어져 있다는 느낌이었다.
그 순간 처음으로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내 몸을 얼마나 오래 방치해 왔을까.”
그 질문은 생각보다 오래 남았다.
그래서 운동을 시작했다.
거창한 목표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단지 몸을 다시 느껴보고 싶었다. 숨이 차는 감각, 근육이 긴장하는 느낌, 땀이 흐르는 순간들. 그런 것들을 한 번쯤 다시 경험해 보고 싶었다.
처음에는 낯설었다.
철봉을 잡았을 때 손바닥이 어색했고, 러닝머신 위에서 숨이 차오르는 순간마다 내가 얼마나 오래 움직이지 않았는지를 알 수 있었다. 몸은 기억하고 있었다. 그리고 동시에 잊고 있었다.
몇 번의 운동을 반복하면서 조금씩 감각이 돌아왔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 몸이 가볍게 느껴지는 날이 있었고, 계단을 오르면서 예전보다 덜 힘든 순간이 찾아왔다.
작은 변화들이었다.
하지만 그 변화들은 분명했다.
그때 나는 깨달았다.
운동은 단순히 몸을 만드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그것은
몸과 다시 대화를 시작하는 과정이었다.
몸은 생각보다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오늘은 조금 쉬어도 좋다는 신호도 있었고, 조금 더 움직여도 괜찮다는 감각도 있었다. 이전에는 그 신호들을 거의 듣지 못했다. 아니, 듣지 않으려고 했던 것 같다.
운동을 하면서 나는 내 몸을 다시 알아가기 시작했다.
어떤 움직임이 나에게 맞는지, 어느 정도의 강도가 적당한지, 언제 피로가 쌓이는지. 그런 것들을 하나씩 관찰하며 루틴을 만들어 갔다.
예전에는 결과만 보려고 했다.
체중이 얼마나 줄었는지, 근육이 얼마나 늘었는지, 눈에 보이는 변화만을 기준으로 삼았다. 하지만 시간이 조금 지나면서 기준이 달라졌다.
지금은 몸의 감각이 기준이 된다.
숨이 안정되는 순간,
움직임이 자연스러워지는 순간,
하루를 마치고 피곤하지만 기분이 나쁘지 않은 상태.
그런 것들이 몸이 보내는 작은 신호들이다.
어쩌면 나는 이제야 내 몸과 다시 만난 것인지도 모른다.
재회라는 말은 보통 사람 사이에서 사용된다. 오래 떨어져 있던 사람을 다시 만날 때 우리는 재회라고 말한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몸도 비슷하다.
늘 함께 있지만, 어느 순간 멀어질 수 있다. 그리고 그 거리는 생각보다 길어지기도 한다.
나에게 운동은
그 거리를 다시 좁히는 시간이었다.
매일 조금씩 움직이고, 조금씩 관찰하고, 조금씩 조정하는 과정 속에서 나는 내 몸을 다시 느끼기 시작했다. 그것은 갑작스러운 변화가 아니라, 아주 천천히 이루어진 재회였다.
이 재회는 화려하지 않다.
누군가에게 자랑할 만한 순간도 아니다. 하지만 분명한 변화는 있다. 몸이 조금씩 단단해지고, 움직임이 조금씩 자연스러워지고, 하루의 리듬이 조금씩 안정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다.
나는 더 이상 내 몸을 외면하지 않는다.
몸은 평생 함께 가야 할 가장 가까운 동반자다. 그런데 우리는 종종 그 사실을 잊는다. 바쁜 일상 속에서 몸을 뒤로 미루고, 신호를 무시하고, 결국 어느 순간 문제가 생기고 나서야 돌아본다.
나는 조금 늦게 깨달았다.
하지만 아직 늦지는 않았다고 생각한다.
지금의 나는 몸을 만들기 위해 운동하는 것이 아니다. 몸을 다시 만나기 위해 운동한다. 잊고 있던 감각을 되찾고, 나에게 맞는 리듬을 찾고, 오래갈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과정이다.
어쩌면 이것이 진짜 재회일지도 모른다.
오래 잊고 지냈던 나와의 재회.
그리고 몸과의 재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