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팩트(Fact)리엇 미사일인가? 킨추기(金継ぎ)

깨진 마음을 금으로 잇는 사람들 (2020년 7월 13일 작성)

킨추기.jpg ‘킨추기(金継ぎ) (출처: 캐나다 주재 일본 대사관)

1 배우 최진실 씨가 12년 전 스스로 목숨을 끊은 지 며칠 뒤 교회 소그룹 모임을 가졌다. 인도자였던 나는 많은 이들이 충격을 받은 이 사건을 통해 ‘천하보다 귀한 한 영혼’을 스스로 포기하는 게 어떤 이유로도 합당하지 않으며, 얼마나 비성경적인지를 가정들과 나누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서두부터 큰 실수를 하고 말았다. 이런 얘기를 시작하자 마자 한 지체가 조심스럽게 질문한다. “아니 얼마나 힘들었으면 목숨을 끊었겠어요?” , “맞아요. 나는 아직도 믿어지지 않아요. 어떻게 ㅠㅠ” , “아이고 남은 아이들은 어쩌나? 너무 안타까워요.” 침묵하던 여러 사람의 입에서 탄식이 터져 나왔다. 그렇게 반 시간 정도를 나는 가정들의 한탄에 섞인 얘기를 들어야 했고 준비한 것들을 많이 나누지 못한 채 마감해야 했다. 그날 나는 깊이 깨달았다. 누군가의 아픔에 함께 동참하며 진심으로 공감하지 않은 채 시작하는 어떤 고결한 말도 상대의 마음을 쉽게 열지 못한다는 것.


2. 얼마 전 7학년(중1) 딸이 방의 페인트칠을 다시 하겠다고 선포했다. 스스로 만들고 꾸미는 것을 좋아하는 딸은 방 안의 모든 짐을 정리해 밖으로 빼고 페인트칠을 준비했다. 저녁에 딸의 방을 보니 벽에 샘플로 칠한 색이 너무 어두워 보였다. 거실 구석에 낙심한 듯 앉아있는 딸에게 나는 무심코 “시온아, 색이 너무 어두운 것 같아.”라고 말했다. 그러자 딸은 나를 원망스럽게 쳐다보더니 울음을 터트렸다. 순간 나는 당황했다. ‘아니, 내가 뭘 잘못한 거지?’ 옆에 있던 아내가 내게 눈치를 준다. “시온이도 어렵게 고른 샘플 페인트를 벽에 칠해보니 자기가 원했던 색과 달라 많이 속상해하고 있는데, 꼭 그렇게 얘기해야 해요?” 나는 아차 했다. 객관적으로 보면 나의 말은 문제가 없다. 색이 너무 어두운 것은 팩트이고 그저 내 느낌을 말했을 뿐이다. 그러나 그 팩트가 가뜩이나 마음이 아픈 딸의 가슴을 찌른 것이다. 차라리 “시온아 고생했네. 맘에 드니? 음 아빠가 보기에는 조금 어두운 것 같은데, 너는 어떻게 생각하니?” 하고 물었으면 어땠을까? 후회가 밀려왔지만, 이미 늦었다. 팩트를 전하고 분석하는 언론인의 직업병은 종종 사람들, 가족과의 소통에 큰 장애물이 되곤 한다.


3. 한 젊은 후배에게 이런 나의 경험을 나눴더니 “팩트리엇 미사일이시군요!”라고 반응한다. 팩트를 들이대 상대를 꼼짝 못 하게, 무안하게 하거나 아프게 하는 행위를 ‘팩트폭력’이라고 했었는데, 요즘은 더 진화해 요격용 패트리엇 미사일(PAC)에 빗대어 “헉! 팩트리엇 미사일에 맞았어!”라고 표현한다는 것이다.


4. 고(故) 박원순 서울시장의 자살과 장례 절차를 놓고 좌우에서 이런 미사일이 수없이 날아가는 모습을 본다. 어떻게 해야 떠난 가해자와 남아있는 피해자, 양측 가족 모두에게 상처의 요격 미사일을 쏘지 않으면서 자살의 심각성, 업적과 범죄 혐의 등 공과에 대한 냉정한 균형과 상식적 접근을 할 수 있을까? 스스로 천하보다 귀한 목숨을 끊는 것이 얼마나 큰 악의 거짓말에 속는 죄인지, 김동호 목사의 지적처럼 아무리 양심적인 고결한 결정이라도 “죽음으로 책임질 수 있는 일은 없다”는 것을 우리의 자녀, 다음 세대에게 어떻게 지혜롭게 나눌 수 있을까?


5 낯익은 성경 구절이 떠올랐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하시니라’ (요8:11). 간음하다 잡힌 여인을 돌로 쳐 죽이려는 유대인 군중에게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고 말한 뒤 군중이 모두 물러가자 예수님이 여인에게 한 말이다. 여인은 명백히 죄를 지었지만, 유일한 심판자인 전능자의 아들도 그녀를 정죄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하시며 죄가 얼마나 위험한지를 분명히 경고한다. 나 자신에게 자문해 본다. 나는 너무 쉽게 남을 판단하고 정죄하지 않는가? 그러다 판단을 자주 받지는 않는가? 내 논리를 합리화하기 위해 상대의 작은 허물만 보고 침소봉대(針小棒大)해 공격하지 않는가? 나의 정치적 신념과 맞는 정치인이면 그의 심각한 죄도 대수롭지 않게 덮지는 않는가? 그런 나의 언행이 사람들에게 긍정적 변화와 영향을 주고 있는가?


5. 사이비 종교나 거짓 유혹에 속았던 사람이 정상으로 회복될 때는 적어도 2가지 조건이 동반된다고 정신건강 의학자이자 베스트셀러 작가인 스캇 펙(Scott Peck)은 지적한다. 정확한 진리로 거짓말의 실체를 꿰뚫어 진실을 지속적으로 알리는 것, 그리고 이 과정을 강요나 무례가 아니라 따뜻한 사랑과 공감, 끝까지 인내하며 부모의 마음으로 기다릴 때 사람이 변한다는 것이다. 그 어떤 정의와 고결한 명분으로 무장했더라도 상대에게 무례히 말하거나 내 생각을 강요하려 한다면 그 안에 사랑이 없기 때문에 변화를 가져올 수 없다는 것. 동시에 그 사랑은 불의를 기뻐하지 않고 진리와 함께 기뻐해야 한다는 것. 그 유명한 고린도전서 13장의 ‘사랑’의 능력과 다르지 않다. “내가 사람의 유창한 말과 천사의 황홀한 말을 해도, 사랑하지 않으면, 나는 녹슨 문에서 나는 삐걱거리는 소리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는 정죄하는 사람인가? 아니면 보수하는 사람인가? 나는 어떤 상황에서도 ‘원수를 사랑하라’라는 개인에게 주신 말씀을 법과 원칙을 지켜야 하는 정부와 국가에까지 적용하려는 어리석음을 범하지는 않는가? 거꾸로 어떤 원수도 사랑하겠다는 개개인의 신념을 여론이나 공론, 이념이란 이름으로 쉽게 판단하지 않는가?


6. 일본 도호쿠 예술 가운데 ‘깨진 조각들의 예술’로 불리는 ‘킨추기(金継ぎ)가 있다. 도자기나 사기 그릇은 금이 가고 깨지면 버려지게 마련이다. 그러나 킨추기는 금과 송진 등으로 이를 보수해 또 다른, 놀라운 예술 작품으로 승화시킨다. 킨추기 장인들은 깨지고 아픈 부분을 숨기지 않고 역사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예전보다 더 아름다운 모습으로 재탄생시킨다고 ‘B&R 매거진’은 설명한다. “킨추기는 외양이 아름다운 게 아니라 이 도자기를 바라보는 사람의 마음에 그 아름다움이 달려 있다”는 것이다. 기독교 영성학자 헨리 나우웬이 신앙인들에게 강조한 ‘상처 입은 치유자’를 형상으로 그린다면 아마 ‘킨추기’가 떠오르지 않을까 싶다. (아래 사진 출처: 캐나다 일본 대사관)


7 지금 나는 깨지고 무너진 사회를 사랑으로 보수하려는 ‘킨추기’ 장인인가? 아니면 과도한 정의와 신념으로 상처탄을 마구 쏘는 ‘팩트리엇 미사일’인가?


[지나치게 의인이 되지도 말며 지나치게 지혜자도 되지 말라 어찌하여 스스로 패망하게 하겠느냐] Do not be overrighteous, neither be overwise why destroy yourself? 전도서 7: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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