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닷새 안에 답장이 없으면 절교하자는 뜻인 줄로 알겠습니다"
여러분은 '서간문'에 대해 들어본 적 있으신가요?
서간문이란 "한 사람, 또는 극히 한정된 사람들을 상대로 안부를 묻거나 자신의 용건과 심정을 전달하기 위해 말 대신 적어 보내는 글"이라고 정의되어 있습니다(네이버 지식백과). 일반적으로는 편지글이라고도 하죠. 나 아닌 다른 사람에게 읽혀질 목적으로, 자신의 심정이나 이야기를 편지로 적어 보내는 것이 바로 서간문입니다. 편지를 자주 쓰지 않는 지금 세대에선 서간문이나 편지라는 단어 자체가 상당히 어색하게 느껴질지도 모르겠네요.
제가 처음 서간문집을 접하게 된 것은 평소 좋아하던 이슬아 작가 덕분입니다. 이슬아 작가와 남궁인 교수가 주고받은 편지를 엮어 만든 서간문집,『우리 사이엔 오해가 있다』를 읽게 된 거죠. 서간문에는 다른 장르의 글에선 찾을 수 없는 색다른 아름다움이 있었습니다. 바로 '편지를 받는 사람에 대한 애정'입니다.
『우리 사이엔 오해가 있다』두 작가 소개 하단에는 이런 글이 적혀 있습니다.
"나는 남궁인의 전문성도 문학성도 아닌 친절함 때문에 이 서간문을 쓰기로 마음먹었다. 몹시 급박하고 절망적일 때조차도 그가 친절을 잃지 않았던 순간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친절한 사람들이 아프지 않은 세계에 살고 싶다" - 이슬아 작가 소개글 中
"이슬아의 꾸짖음을 달게 받을 작정으로 서간문을 시작합니다. 글이란 내가 얼마나 구린지 본격적으로 생각하면서도, 용기를 내 자모를 맞추고 문장을 만들어 자신을 변호하는 것입니다." - 남궁인 작가 소개글 中
짧은 소개글이지만, 그 안에 서로를 향한 애정이 여실히 드러나서 괜시리 마음이 몽글몽글해지기도, 웃음이 새어나오기도 합니다.
요즘 현대 사회에는 불특정 다수를 위한 글, 사진, 작품, 상품이 얼마나 많나요. 아무래도 자본주의 사회이다 보니까요. 더 많은 사람들의 입맛에 맞는 것을 내놓는 것이 효율적이고, 성공할 확률이 높다고 여겨지죠.
그러나 서간문이란 애초에 모두의 사랑을 받을 목적으로 쓰여지는 작품이 아닙니다. 정의에서도 알 수 있듯, 이는 한 사람 또는 극히 한정된 사람들만을 대상으로 하는 글이죠. 상대방에 대한 깊은 이해와 애정이 있어야만 서간문을 쓸 수 있다는 뜻입니다.
누군가는 서간문을 보고 지극히 사적인 이야기를 왜 세상에 내놓느냐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바로 그 부분에서 서간문의 매력을 느낍니다.
SNS, 카톡 그룹 채팅 등 다수의 사람들과 끊임없이 연결된 세상이지만, 우리가 타인과 나누지 못하고 담아 두는 속마음이 얼마나 많나요. SNS로 24시간 다른 사람들의 삶을 표면적으로 접하고 있지만, 내 주변 사람들의 삶과 마음을 진지한 태도로 주의 깊게 들여다 본 적은 얼마나 되나요.
저에게 서간문이란, 연결되어 있는 듯 하지만 단절된 세상에서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음과 생각을 깊게 들여다 볼 수 있는 창구입니다. 편지를 쓰면서 인스타그램 포스팅으로는 알 수 없었던 친구들, 가족들의 속마음을 헤아려 봅니다. 상대방을 이해하고, 그 이해를 바탕으로 해야만 전할 수 있는 이야기를 적습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 있는 마음을 더듬어 헤아려 보려고 노력하는 것이 상대방을 사랑하는 첫 걸음이라고 믿습니다. 세상에 불특정 다수를 위한 글이 아닌, 주변인을 위한 서간문과 사랑이 더 많아지기를 마음 깊이 바라고 있습니다.
서간문이 궁금하신 분들께 제가 재미있게 읽었던 두 책을 추천 드립니다.
『우리 사이엔 오해가 있다』by 이슬아, 남궁인
『친애하는 미스터 최』by 사노 요코, 최정호
"문득 남을 생각하다가 자신을 돌아보는 것이 서간문의 본질"이라고. 사실 저는 쭉 반대로 생각해왔답니다. 서간문의 본질은 자기만 생각하던 사람이 문득 남을 돌아보게 되는 과정이라고. 양쪽 다 진실일 것입니다. 서간문의 본질은 다양할 테니까요.
『우리 사이엔 오해가 있다』p. 1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