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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choice Jul 09. 2023

서간문

"닷새 안에 답장이 없으면 절교하자는 뜻인 줄로 알겠습니다"

서간문이란 "한 사람, 또는 극히 한정된 사람들을 상대로 안부를 묻거나 자신의 용건과 심정을 전달하기 위해 말 대신 적어 보내는 글"(출처: 네이버 지식백과)이라고 정의되어 있습니다. 일반적으로는 편지글이라고도 하죠. 나 아닌 다른 사람에게 읽혀질 목적으로 자신의 심정이나 이야기를 편지로 적어 보내는 것이 바로 서간문입니다. 편지를 쓰지 않는 지금 세대에는 서간문과 편지글이라는 두 용어 모두가 상당히 어색할 단어일지도 모르겠네요. 


제가 처음 서간문을 접하게 된 것은 평소 좋아하던 이슬아 작가 덕분입니다. 이슬아 작가와 남궁인 교수의 편지를 엮어 만든 서간문집 『우리 사이엔 오해가 있다』를 읽게 된 것이죠. 서간문에는 다른 글의 장르 -에세이나 소설-에서 찾을 수 없는 색다른 아름다움이 있었습니다. 바로 편지를 받는 사람에 대한 애정입니다. 


『우리 사이엔 오해가 있다』 두 작가의 소개 맨 하단에는 이런 글들이 적혀 있습니다. 


"나는 남궁인의 전문성도 문학성도 아닌 친절함 때문에 이 서간문을 쓰기로 마음먹었다. 몹시 급박하고 절망적일 때조차도 그가 친절을 잃지 않았던 순간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친절한 사람들이 아프지 않은 세계에 살고 싶다" - 이슬아 작가 소개글 


"이슬아의 꾸짖음을 달게 받을 작정으로 서간문을 시작합니다. 글이란 내가 얼마나 구린지 본격적으로 생각하면서도, 용기를 내 자모를 맞추고 문장을 만들어 자신을 변호하는 것입니다." - 남궁인 작가 소개글 中


두 작가는 모두 특출한 문장력으로 좋은 책들을 여럿 냈습니다. 그럼에도 '글이란 내가 얼마나 구린지 본격적으로 생각하는 것'이라고 겸손을 떠는 문장에 초보 글짓기 연습가인 저는 웃음이 납니다. 저들이 가진 재능이 얼마나 부러운 것인데요. 하지만 그런 생각도 찰나, 짧은 소개글 문장에 들어 있는 서로를 향한 애정에 괜시리 마음이 따스해집니다. 


현대 사회에는 불특정 다수를 위한 글, 사진, 작품, 상품이 많아진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자본주의 사회이다 보니까요. 더 많은 사람들의 입맛에 맞는 제품을 내놓는 것이 더 효율적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소수자들의 이야기를 반영한 작품이나 상품이 '취지는 좋지만 상업성은 없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것처럼요. 더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면 아무래도 성공할 확률이 높죠. 


그러나 서간문이란 애초에 그런 목적 -모두의 사랑을 받는 것-의 작품이 아닙니다. 정의에서도 알 수 있듯, 한 사람 또는 극히 한정된 사람들만을 대상으로 한 글이죠. 상대방에 대한 깊은 이해와 애정이 있어야 서간문을 쓸 수 있습니다. 누군가는 서간문을 보고 지극히 사적인 이야기를 왜 세상에 내놓느냐고 할지도 모르겠지만요. 그러나 저는 바로 그 부분에서 서간문의 매력을 느낍니다. SNS며, 카톡 그룹채팅방으로 온통 다수의 사람과 연결된 세상에서 우리가 당당하게 내놓지 못하고 살아가는 속마음이 얼마나 많나요. 또 24시간 SNS로 다른 사람들의 삶을 표면적으로 접할 수 있는 세상이지만, 내 주변 사람들의 마음과 삶을 주의 깊게 들여다 본 적은 얼마나 되나요.


저에게 서간문이란 연결되어 있는 듯 하지만 단절된 세상에서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음과 생각을 깊게 들여다 볼 수 있는 창구입니다. 편지를 쓰면서 인스타그램 포스팅에서는 알 수 없었던 친구와 가족들의 속마음을 헤아려 봅니다. 상대방을 이해하고, 그 이해를 바탕으로 해야만 전할 수 있는 이야기를 적습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 있는 마음을 더듬어 헤아려 보려고 노력하는 것이 그 사람을 사랑하는 첫 걸음이라고 믿습니다. 세상에 불특정 다수를 위한 글이 아닌 주변인을 위한 서간문과 사랑이 더 많아지기를 마음 깊이 바라고 있습니다. 


서간문이 궁금하신 분들께 제가 재미있게 읽었던 두 책을 추천 드립니다. 

『우리 사이엔 오해가 있다』by 이슬아, 남궁인

『친애하는 미스터 최』by 사노 요코, 최정호 



"문득 남을 생각하다가 자신을 돌아보는 것이 서간문의 본질"이라고. 사실 저는 쭉 반대로 생각해왔답니다. 서간문의 본질은 자기만 생각하던 사람이 문득 남을 돌아보게 되는 과정이라고. 양쪽 다 진실일 것입니다. 서간문의 본질은 다양할 테니까요. 


 『우리 사이엔 오해가 있다』p. 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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