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8K. 가로 7,680개, 세로 4,320개, 총 3천 3백만개의 픽셀을 갖춘 초 고해상도를 의미하는 말입니다. 가로로 약 8천 개의 픽셀을 갖추었기 때문에 8K라는 이름이 붙여졌죠.
1826년 프랑스의 발명가인 조제프 니세포르 니에프스가 최초의 사진을 촬영한 이후, 해상도에 대한 인류의 집착은 계속되어 왔습니다. 조금 더 선명하게, 다채롭게, 섬세하게. 장면의 디테일을 들여다보고 싶은 사람들의 욕망이 지금의 8K를 만들어 냈죠.
그 결과 우리는 하나의 화면 속에서 더욱 많은 것들을 포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세월이 지날수록 늘어가는 배우들의 잔주름, 투명하게 부서지는 물방울의 질감, 풀빛과 쪽빛의 차이. 하나하나 떼어보면 너무도 작은 것들이 선명한 해상도를 통해 자신만의 존재감을 드러내고, 장면의 감각과 맥락을 만들어냅니다. 어쩌면 작품이 픽셀으로 표현되는 것이 아니라, 수백만 개의 픽셀들이 모여 하나의 작품이 되는 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합니다.
그래서인지 저에게는 나 자신조차 8K의 고해상도로 바라보고 싶다는 욕망이 있습니다. 나를 이루는 픽셀 하나하나의 모양과 색깔에 대해 알고 싶달까요. 그걸 다 알게 되면 나라는 사람의 전체적인 그림은 어떻게 생긴 것인지, 평생 궁금했던 미스테리가 풀릴 것만 같습니다.
그래서 자꾸만 감각의 순간을 포착하고, 질문하고, 기록합니다. 살아있음과 행복이 느껴지는 어떤 순간들을 자세히 들여다봅니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질문합니다. 왜, 무엇 때문에 즐거웠던 것 같아? 물론 감정이라는 것은 너무 복합적이기 때문에 그 이유를 찾기는 쉽지 않지만, 조금이라도 떠오르는 것이 있으면 명확한 언어로 구체화하고 기록해둡니다. 이유를 찾지 못하는 것은 애쓰지 않고 흘려보냅니다. 나에게 중요한 것이라면 다음 번에도 강렬하게 남는 어떤 감정을 느끼게 될 테니까요.
때로는 굉장히 집요한 질문도 던져 보곤 합니다. 최근 서로 다른 두 창업자의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는데요. 첫 번째 사람의 이야기는 '흥미롭다'로 끝났지만, 두 번째 사람의 이야기를 읽은 후에는 '찾아가서 인터뷰를 해 보고 싶다'는 충동이 드는 게 아니겠어요? 그래서 질문했습니다. 그런 감정의 차이가 철학, 태도, 말투, 인상과 같은 수많은 요소들 중 어디에서 오는 것이냐고. 이 미묘한 차이를 밝혀내는 과정에서 내가 가진 생각과 가치관이 명확해지기도 하더군요.
저에게 삶이라는 건 어쩌면 나에 대한 해상도를 끊임없이 높여 나가는 과정이 아닐까요. 스쳐 지나가는 하루들을 남의 영화 보듯 가만히 바라보며, 인상적이었던 감정들을 조심스레 골라 냅니다. 곧이어 거기에 이름을 붙이고, 생각을 연결하며 하나의 픽셀을 완성해 나갑니다. 때로는 이미 그려진 그림들이 다음에 놓일 픽셀의 모습을 예측해 주기도 하죠. 그렇게 저의 지난 25년이 쌓였습니다.
사는 거 별거 없어, 아무리 애써도 나를 다 알 수는 없어.
하지만 제가 되고 싶은 건 깊은 고민을 통해 자기다움에 대한 해상도를 높이고, 결국 자신만의 이야기를 내어 놓는 사람입니다. 그렇기에 조용히 그런 길을 가고 있는 사람들의 등을 바라봅니다. 자신을 1080p FHD까지 알게 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습니다. 언젠가 8K 고해상도의 나를 알게 될 때까지. 아직 가야 할 길이 멉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