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서경 Feb 01. 2018

행복의 정의

갑부부의 시간

갑남의 손때 묻은 속기 키보드

나의 남편이자 배우자인 갑남은 해운회사를 7년 다녔다가 일을 그만두고, 지금은 속기 일을 하고 있다. 

벌써 속기 일을 한 지 2년이 되어간다. 


항상 속기 가방을
들고 다녔던 갑남


연애할 때 갑남은 버릇처럼 말했었다. 

평생 살면서 기술 하나를 가져야 할 것 같다고, 그래서 속기 기술을 갖고 싶다고...

난 사실 크게 마음에 와 닿지 않았다. 

평범한 회사원이 속기 키보드를 갖고 다니는 게 사실 취미처럼 보였다.

회사일을 하면서 나중에 노후로 속기를 한다는 건가?

자기 계발하는 거면 좋지 뭐~ 하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던 것 같다. 


결혼하고 3년 후...
난데없는 선언


어쩌면 징조였다. 

잦은 야근. 

퇴근 시간 되면 꼭 일을 시키고, 자신은 크로스핏을 다니면서 할 것 다하는 못된 상사 이야기.

늦게 들어온 사람이 경력이 많다는 이유로 승진되어 버린 상황.


한동안 너무 안 좋았다. 

갑남은 회사만 다녀오면 힘들다고, 미래가 안 보인다며... 징징(?)거렸고, 

회사를 다닌 지 7년 차 - 

나에게 할 말이 있다며, 

(마침 직장을 그만두고, 해외여행 1년간 하는 가족들의 모습을 담은 프로그램을 본 후 부러움 가득했던 나에게)

속기사로 이직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미 속기사 방송 자막센터의 교육생 모집에 합격해서 교육을 받게 되었는데, 

(월 몇십만 원의 교육비를 준단다.)

내가 하지 말라고 하면 안 하겠다고 했다. 

나의 의견이 중요하다고... 말하는데, 그때 갑남은 나에게 간절한 눈빛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부부란 한 사람의 희생으로 이루어지는 관계가 아니다


고민했다. 사실... 매우 현실적인 고민이었다. 

바로 경제적인 문제!

월급이 속기사로 다시 시작할 때 교육생과 인턴 때는 몇십만 원. 정직원이 되어도 지금 받는 월급의 반토막. 

하지만, 그것보다 본인이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게 승낙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내 배우자가 돈을 위해 희생하며 불행해지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건강도 너무 걱정되었다.)


부부란 한 사람의 희생으로 이루어지는 관계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내가 행복한 만큼 나의 배우자도 행복해야 부부가 행복한 게 아닐까... 생각했다. 


한 번 사는 인생.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살아야 하지 않을까? 


허락해줄게 일러스트 by 최서경





그렇게 해운회사를 그만두고, 1년 후 

해운업계가 발칵 뒤집혀 난리가 났다는 것은 안 비밀...


그리고, 갑남이 스트레스에 취약한 모야모야라는 난치병 질환 진단을 받은 것도 그 후...




그로부터 2년 후 현재 - 


갑남은 현재 농아인들을 위한 방송자막 속기사로 일하고 있다. 

버는 수입은 많지 않으나, 꾸준히 봉급이 오르고 있고, (한 해에 몇만 원?)

주말, 주일에도 일을 해야 하지만, 다른 회사보다 많이 쉬는 편이다. 

무엇보다 기술직이며, 자기가 맡은 일에 자기가 책임을 지면 되기에 스트레스가 덜하다고 한다.

(갑남의 말의 의하면, 남이 싸지른 똥(?)을 내가 치우지 않아도 된다고 한다.)


갑남은 속기사를 하면서 블로그를 운영하며, EBS 스토리 기자를 연임했고, 

올해는 정책기자단에 선발되어 활동 준비를 하고 있다. 


돈은 잃었지만, 그만큼의 소중한 시간을 벌었다. 

갑남 역시, 그때 결정을 단 한 번도 후회하지 않았고, 

나 역시도 그렇다. 

자궁내막증으로 수술 2번에 난임으로 병원을 왔다 갔다 할 때마다 갑남이 옆에 있었다. 

우리 사이는 조금 더 돈독해졌고, 함께 있는 시간이 더 많아져서 서로에게 큰 의지가 되었다.


하늘 그리고 구름 우리에게 준 소중한 선물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해운회사를 그만두고, 갑남이 하늘을 보면서 

" 구름이 참 예쁘다."

" 꽃이 이렇게 예쁜 지 이제야 알았어."

라고 했던 말들.


행복이 먼 곳에 있을까? 


아니다. 행복은 정말 가까운 곳에 있다. 

나의 마음속에 - 

갑남의 미소 속에 - 

서로의 온기 속에 - 



우리의 행복은 아직도 현재 진행 중...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