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제희 Jun 23. 2024

글과 공부와 정신병과 수도승의 삶

당신의 삶이 몰려있다고 느낄 때 하나의 인사이트가 될 수 있다면

인생을 살다보면 그런 날이 있다. 내가 믿었던 친구는 내 전재산 천만원을 들고 잠적하고 사랑하는 애인은 다른 남자와 동침을 하고 가족은 갑자기 쓰러지는, 도대체 세상을 이해할래야 이해할 수 없고 내 정신병은 정부가 내 뇌에 전파칩을 심어서 감시하고 있다는 환상이 드는 날. 나에게는 그런 날 보는 다큐멘터리가 있다. 정신에 대한 응급처치다. 


그 다큐멘터리는 가톨릭 카르투시오 봉쇄수도원을 취재한 3부작 다큐멘터리이다. 영상은 긴 호흡동안 최소한의 소음과 편집으로 수도승들의 삶을 관찰한다. 그 곳에 나오는 수도승들은 외부로 나가는 것은 금지되며, 침묵을 지켜야 하며, 새벽에 일어나 기도를 해야 한다. 낮 시간은 노동 혹은 기도로서 하루를 보내고 밥은 최소한의 것으로 제한된다. 극한의 규율과 질박한 삶에서 구도에 이르고자 정진하는 것이다. 하루를 소진해 그 다큐멘터리를 보면 왠일인지 나는 그런 것들에 깊은 감명을 받고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그래, 천만원 없어도 잘 살았어. 그래, 원래 연애라는 게 왔다가 가는거지. 그래, 사람은 언젠가 누구나 아픈거야. 그래, 정신병도 파도를 타듯이 심해졌다 잦아졌다 하는 거지. 엔딩 크레딧이 뜰 때쯤이면 매사에 초연해지고 찜질방에서 세 시간 뒹군 듯 금방이라도 열반에 들 것 같은 마음가짐이 될 수 있었다. 지나칠 정도의 규율이 인간에게 자유를 가져다준다는 게 역설적이지 않은가.


일본의 소설가 마루야마 겐지가 쓴 <아직 오지 않은 소설가에게>에서는 소설가가 응당 가져야 할 자격이나 삶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그는 사람이 고립되어야 좋은 글이 나온다고 믿었으며 소설가로서 사는 삶은 자신이 설정한 규율에 맞추어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 글을 읽고 그런 생각을 했다. 소설가로서의 삶과 수도승과의 삶이 어딘가 같은 궤적을 그리고 있지 않은가. 일본의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도 거의 비슷한 삶을 살고 있다고 들었다. 그러니까 글을 쓰는 건, 어느 수준 이상의 글을 쓰는 건 필연적으로 수도승의 정진 자세를 필요로 한다.


하지만 살면서 깨닫건데 규율이 가장 필요한 건 수도승도 작가도 아니었다. 바로 정신병자들이다. 이걸 뭐라고 설명하면 좋을까 모르겠는데, 규율이 없는 수도승과 작가는 하찮은 작가와 땡중이 되지만 규율이 없는 정신병자는 죽는다. 말 그대로 죽는다. 단언컨대 말할 수 있는데 정신적으로든 사회적으로든 신체적으로든 셋 중 어떤 방식으로는 죽는다. 나는 30대 중반에 다른 때문에 약을 단약한 적이 있었다. 규율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말 그대로 죽을 뻔했다. 


규율에 대한 생각은 20대 때부터 하고 있었지만 제대로 실천하게 된 건 최근이다. 어느 날 나는 24시간 주어진 하루를 좀 더 해상도 높게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 길로 하루 일과를 적는 다분히 MBTI의 계획형 인간처럼 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런 나의 하루를 어떻게 채워야 하는지 방법론을 고민하기 위해 A4용지에 나에게 필요한 규율들에 대해서 쭉 적어 내려갔다.


술을 마시지 않고, 인생의 변수를 피하고(갑자기 오는 연락이나 이벤트를 최대한 피하고), 밥을 규칙적으로 먹고, 7시 이후로는 가급적 음식을 피하고, 당과 탄산을 멀리하고, 약과 병원을 규칙적으로 취하고, 잠을 하루에 7시간 이상 자도록 노력하고, 한 시간의 운동을 한다. 나머지 시간에는 계획을 세워 공부를 한다. 이제 담배만 끊으면 된다.


이상하게도 그렇게 하니까 경조증 상태를 몇 달간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조증이 지나치게 올라가지 않는 건 나의 아빌리파이 덕분이지만, 잠은 3시간씩 자고 일어나는 삶을 이어붙여 하루에 7시간을 자고, 운동을 하는 일 등등으로 정신장애가 많이 나아졌다. 어느 정도로 나아졌냐 하면 하루에 약을 먹거나 병원을 가지 않을 때는 더 이상 나의 정신장애를 의식하지 않을 만큼 나아졌다. 어느 날은 정말로 죽고만 싶었고 어느 날은 정말 숨도 쉬기 괴로운 날들이 있었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그 터널을 지나왔고 그 터널 안에서 있었던 알고리즘을 잊을 정도로 성장했다. 어느 날 돌아보니 나는 정신병을 모르는 사람처럼 살았다.


정신병은 파도를 타는 일이다. 나는 삶이 외줄타기와 비슷하다고 느낀다. 혹은 파도를 타는 일과 비슷한 일. 특히 인생의 변수를 피하는 일들이 그렇다. 과거가 몸집을 부풀려 밤에 나타나도 더 이상 나는 두려우하거나 과거를 그리워하지 않는다. 그런 순간에는 기도를 한다. 마치 인생이라는 원죄를 살아가는 수도승마냥. 


나는 언젠가 꼭 에세이스트가 될 것이다. 나는 언젠가 꼭 이 시험에서 합격할 것이다. 이 시험에서 합격하면 다른 시험을 준비하여 합격할 것이다. 그 시험에서도 합격하면 유튜브로 강의 컨텐츠를 만들어서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와 같은 생각을 한다. 그러기 위해서 내가 지금부터 할 수 있는 일들은 눈을 감고 생각해본다. 눈꺼풀 안의 은하수를 헤집으면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