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어기제를 알아차린다는 것, 관계가 무너지지 않게 하는 힘
우리는 일상에서 수많은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대화를 나누며 살아간다.
그 과정에서 유독 이유 없이 마음이 가지 않는 사람이 있다.
상대가 나에게 특별히 부정적인 말을 하거나 행동을 하지 않았음에도,
괜히 불편하고, 마주하고 싶지 않은 사람 말이다.
그럴 때는 종종 이런 가능성을 떠올려볼 수 있다.
상대방으로부터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나 스스로도 미처 알아차리지 못한 나의 어떤 모습을 보았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이다.
그래서 나는 이전 글들에서
‘나에 대해 객관적으로 아는 것’,
그리고 ‘MBTI를 통해 성향의 다름을 이해하는 것’이
관계에서 불필요한 마찰을 줄이는 데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 이야기해왔다.
이번 글에서는 그 연장선에서 ‘방어기제’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방어기제란 불안, 갈등, 상처와 같은 심리적 위협으로부터
나를 보호하기 위해 우리가 의식적 혹은 무의식적으로 사용하는 심리적 반응 방식을 말한다.
방어기제는 문제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감당 가능한 형태’로 왜곡하고 조절하며 버티게 하는 데 목적이 있다.
이러한 방어기제는 누구에게나 있다.
문제는 ‘있느냐, 없느냐’가 아니라 ‘어떤 방식으로, 얼마나 자주 사용하는가’에 있다.
방어기제는 상황에 따라 나를 지켜주기도 하지만, 때로는 관계를 어렵게 만들기도 한다.
상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내가 혹은 상대가 어떤 방어기제를 사용하고 있는지를 알아차리는 일이다.
방어기제는 흔히 성숙한 방어기제와 미성숙한 방어기제로 나뉜다.
미성숙한 방어기제를 사용한다고 해서 문제가 있는 사람은 아니다.
다만 그것이 자동적으로, 반복적으로 사용될 때 관계와 의사소통에서 어려움이 발생할 가능성이 커진다.
사례관리를 한다는 것은, 그만큼 다양한 방어기제를 사용하는 사람들을 만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상담에 응하는 대상자들은 문제를 그대로 드러내기보다는 자기 자신을 지키기 위한 방식으로 반응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그 방식이 바로 방어기제인 경우가 많다.
실제 상담 장면에서는
질문을 하면 말을 돌리거나, 웃어넘기거나, 모든 질문에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답하거나,
갑자기 화를 내거나,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침묵이 흐르기도 한다.
이 모든 반응은 상담을 방해하려는 태도가 아니라, 대상자가 지금의 감정을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에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선택한 방법일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방어기제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상담자는 쉽게 이렇게 판단하게 된다.
‘왜 자꾸 문제의 핵심을 피하지?’
‘상담을 받을 의지가 없어 보이네.’
‘이 사람은 상담을 해도 변하지 않을 것 같아.’
반대로 방어기제를 이해하게 되면 같은 장면이 전혀 다르게 보인다.
아직 상담자에 대한 신뢰가 충분히 형성되지 않았을 수도 있고,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기에는 너무
빠른 시기일 수도 있겠다는 추측이 가능해진다.
그래서 방어기제는 ‘저항’이 아니라 ‘신호’라고 볼 수 있다.
오히려 상담자의 입장에서 보면 방어기제를 사용하는 사람은 변화 가능성이 있는 경우가 많다.
언어적·비언어적 반응이 전혀 없이 가만히 앉아 있기만 한 경우가 개입하기에는 더 어려운 경우도 적지 않다.
농담이 많아질수록 불안을 감추고 있을 가능성이 크고,
과도한 논리화는 감정을 건드리기 두려운 상태일 수 있으며,
분노의 표출은 무력감이나 상처를 말로 표현하지 못하는 신호일 수 있다.
이러한 신호를 알아차리지 못한 채 파악해야 할 ‘정보’에만 집중하게 되면 대상자는 점점 멀어지고,
결국 상담에 나오지 않게 되는 상황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커진다.
그 과정에서 상담자는 종종 스스로를 탓하게 된다.
‘내가 뭘 잘못했길래 이 사람은 더 이상 오지 않는 걸까?’
하지만 방어기제를 이해한다면
그것이 거절이 아니라 ‘지금은 기다려야 하는 시간’일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신뢰가 쌓이면 방어는 자연스럽게 느슨해진다는 것도 함께 알게 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상담자 자신의 방어기제 역시 끊임없이 작동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침묵이 불편해질 때, 답답함에 조급해질 때, 대상자와 거리 두고 싶어질 때, 평가하고 싶어질 때 등
이 역시 상담자의 방어다.
나의 방어를 알아차릴 수 있을 때 비로소 상대의 방어도 보이기 시작한다.
그래서 상담의 출발점은 문제도, 기술도, 기법도 아닌 ‘내가 나 자신을 얼마나 알고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돌아오게 된다.
이 태도는 상담 장면에서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친구, 지인, 가족과의 대화에서도 마찬가지다.
상대가 자주 사용하는 방어기제를 알아차릴 수 있다면 대화의 속도를 잠시 늦추고, 다시 이어갈 수 있는
여지를 만들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어느 순간 ‘너랑 이야기하면 말이 술술 나온다’는 말을 듣게 되는 경우가 많아진다.
‘방어기제’라는 단어는 일상에서 자주 쓰이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한 번쯤 이해하고 나면 관계를 유지하는 데 있어 분명 마찰을 줄여주는 중요한 열쇠가 된다.
나 역시 나의 방어기제가 무엇인지 돌아보았을 때 성숙한 방어기제와 미성숙한 방어기제를 함께 사용하고
있었다. 방어기제 역시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다.
다만 내가 언제, 무엇 때문에 방어를 하고 있는지를 알아차릴 수 있다면 불필요한 감정 소모를 줄이고
나 자신을 더 잘 지킬 수 있게 된다.
상담의 출발점은 결국 ‘나’다.
그리고 관계가 무너지지 않도록 붙잡아주는 힘은 상대를 바꾸려는 시도가 아니라 방어를 알아차리고,
판단하지 않으려는 태도에서 비롯된다.
그 태도를 갖추는 일은 쉽지 않다.
그러나 한 번 익숙해지면 사람을 대하는 마음이 이전보다 훨씬 가벼워진다.
그것이 내가 방어기제를 이야기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