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TI라는 언어로 다름을 이해하기
지난 글에서는 사회복지사가 정신건강영역으로 들어와 정신건강사회복지사들과 함께 일하며 겪었던 낯섦과 혼란에 대해 이야기했다.
내가 의미 없이 던진 말과 태도들이 누군가에게는 해석의 대상이 되고, 숨은 의미를 파악해야 하는 과제가
된다는 사실이 불편하게 다가왔던 시간이었다.
그 시간을 지나며 상담을 하기 위해 가장 먼저 우선되어야 하는 것은 '나에 대해 객관적으로 아는 것'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래서 나는 나 자신을 대상으로 심리사회적사정평가를 진행했고, 그 경험을 글로 남겼다.
이번 글은 그 이야기의 연장선이다.
MBTI, 특히 사고형(T)과 감정형(F)에 대한 이야기다.
MBTI는 정답을 가르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성향의 '다름'을 이해하기 위한 하나의 언어라고 생각한다.
"안녕하세요. MBTI가 어떻게 되시나요?"
"반갑습니다. 새로 일하게 된 OOO 입니다. 제 MBTI는 ENFP 입니다."
"요즈음은 MBTI로 인사하는게 대세더라고요. 저는 ISFP 입니다."
한때는 처음 만난 사람에게 이런 인사가 자연스럽게 오가던 시절이 있었다.
MBTI를 비교적 잘 알고 있는 상태에서 상대의 MBTI를 알게 되면,
마찰이 생길 때 부딪히기보다는 '아, 이 사람은 이렇게 생각할 수 있겠구나' 하고 한 발 물러서서 바라보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MBTI는 '옳다, 옳지 않다' 혹은 '맞다, 틀리다'의 문제가 아니다.
정답이 없는 영역이고, 그저 다름의 영역에 가깝다.
그래서 인간관계에서 의사소통을 할 때 상대를 조금 더 넓은 시야로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느껴왔다.
나는 MBTI를 맹신하지 않는다.
MBTI를 믿지 않는다고 말하면 "역시!! MBTI는 과학입니다."라는 말을 듣기도 한다.
그럼에도 여전히 많은 사람의 성격을 단 16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은 남아 있다.
예상한 사람도 있겠지만, 나의 MBTI는 'ISTJ'다.
그리고 T 중에서도 흔히 말하는 '대문자 T'에 가깝다.
전공 분야의 영향인지 밈이 유행하기 전부터 MBTI를 알고 있었고,
내가 감정보다 사고를 우선하는 사람이라는 사실도 비교적 일찍 인지하고 있었다.
한때 이런 말이 유행했다.
"나 우울해서 머리 염색했어."
이 말을 들었을 때 내가 가장 먼저 떠올린 생각은 늘 비슷했다.
"우울한데 왜 머리를 염색해?"
"염색하면 기분이 나아져?"
"돈은 돈대로 쓰고 기분은 그대로지 않아?"
이런 대답을 하면 상대는 대부분 입을 벌리고 놀라곤 했다.
특히 감정형(F) 성향이 강한 사람들은 실제 상황이 아님에도 상처받는다고 말하곤 했다.
본인이 사고형(T)인지 감정형(F)인지 잘 모르겠다면 이런 상황을 떠올려 보면 된다.
친한 지인에게서 이런 말을 들었을 때다.
"주말에 오랜만에 가족들이랑 놀러 가던 중 사고가 나서 결국 돌아왔어."
감정형(F)이라면
"괜찮아?"
"다친 사람은 없어?"
"안 다쳤어? 오랜만에 놀러 가는 거였는데 못 가서 속상했겠다."
와 같이 사람의 상태와 감정을 먼저 다루는 반응이 나온다.
반면 사고형(T)이라면
"어쩌다가?"
"누가 잘못했는데?"
"몇 대 몇인데?"
처럼 사고의 원인과 구조를 먼저 떠올리는 경우가 많다.
나 역시 사고형이기에 자연스럽게 과실 비율이 먼저 떠오른다.
어떤 반응이든 정답이 될 수도 있고, 정답이 되지 않을수도 있다.
다만 감정형인 사람은 사고형의 반응에 상처받는 경우가 많고,
이러한 성향의 차이는 상담 과정에서도 분명하게 드러난다.
나는 상대에게 공감과 정서적 지지를 자연스럽게 제공하는 편이 아니다.
정신건강서비스를 제공하는 지역사회에서 처음 근무했을 당시, 업무의 대부분은 알코올 사례관리였다.
술은 함께 마실 때야 친밀함을 형성하지만, 술과 관련된 상담은 결코 쉽지 않은 주제다.
상담의 목적은 결국 치료와 절주, 혹은 단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술문제가 없다고 말하거나, 상담 중간에 술을 마신 뒤 미안함과 부끄러움으로 연락을 끊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래서 사례관리는 장기화되기 쉽고, 중도 탈락도 잦다.
그만큼 첫 상담이 중요하다.
알코올 문제를 가진 많은 사람들의 기저에는 외로움이 자리하고 있고, 처음에는 어색해도 이야기를 시작하면 의외로 솔직하게 마음을 열어준다.
이를 위해서는 첫 만남에서 공감과 정서적 지지를 통해 마음의 문을 여는 과정이 필요하다.
하지만 나는 그 과정이 몹시 어려웠다.
지난 글에서 이야기했듯, 나를 대상으로 한 심리사회적사정평가를 통해 정서적 지지를 잘 하지 못하게 된
원인은 알고 있었지만 이미 성인이 되기까지 굳어진 방식은 쉽게 바뀌지 않았다.
상담을 지켜보기만 하던 어느 날, 팀장님이 말했다.
"가서 아무것도 안 해도 되는데 상담 끝나기 전까지 칭찬 2개만 해봐."
그 말은 나를 더 막막하게 만들었다.
정보를 파악하는 일이라면 할 수 있을 것 같았지만, 칭찬 두 문장을 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방문 전부터 마음이 잔뜩 굳어 있었다.
그 날 상담은 말 그대로 폭망이었다.
"칭찬 2개만 하면 되는 거 아니야?"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나에게는 칭찬 한 문장을 꺼내는 것조차 쉽지 않았고, 몇 번이나 말을 더듬었는지 모른다.
위의 경험을 통해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
다른 누군가와 인간관계를 맺는 과정에서 비슷한 면이 있을 수도 있지만,
정반대의 면을 동시에 가지고 있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내가 쉽게 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해서 다른 사람도 쉽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고,
내가 잘 하지 못한다고 해서 다른 사람도 잘 하지 못하는 것도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상대방의 성향을 미리 안다면 '다름'을 인정하고 관계를 맺는 과정에서
훨씬 더 넓은 시야로 상대를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MBTI는 사람을 단정짓는 도구가 아니다.
누군가를 이해하기 위한 하나의 참고자료일 뿐이다.
MBTI가 사람의 성향을 파악하는 데 있어 정답은 아니지만,
성향을 어느 정도 알고 있다면 같은 상황에서 나오는 말과 행동을 이해하는 데 분명 도움이 된다.
상담 역시 마찬가지다.
대상자의 성향을 파악하고 접근한다면
보다 짧은 시간 안에 친밀감을 형성할 수 있고, 불필요한 오해를 줄일 수 있다.
결국 상담의 출발점은 '나'였고, 관계의 확장은 '다름을 인정하는 태도'에서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