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의 출발점은 '나'였습니다(Ⅰ)

나를 먼저 들여다본다는 것

by 이은

사전적 의미의 ‘사례관리(상담)’는 이렇게 설명된다.
복잡한 욕구를 가진 개인과 가족을 위해 지역사회 자원을 활용하여 효과적인 사회복지 서비스를 제공하고,

대상자의 능력 향상과 효율성 증진을 목표로 한다.


하지만 실제 상담은 딱 떨어지는 공식이 아니다.
개입하는 사람의 성향에 따라 과정도, 방법도, 결과도 모두 다르게 흘러간다.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상담이라는 일이 본질적으로 ‘추상적인 세계’를 다루기 때문일 것이다.


정신건강영역에서 깊이 있는 상담을 이끈다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다.

특히 상담 경험이 많지 않았던 내가 그 영역에 들어섰을 때 느꼈던 감정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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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사 당시 나는 다른 사회복지사 두 명과 함께 같은 날 입사했다.
팀장님 한 분만 기존에 계셨으니 사실상 ‘신규 직원 세 명이 한꺼번에 팀에 들어온 셈’이었다.
사회초년생이었던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 돌아보면 팀장님은 기존 업무를 병행하며 우리 세 명을

동시에 끌어올려야 했다.

그 시절의 팀장님에게 이제야 마음속으로 감사함을 전하게 된다.


복지관과 주간보호센터에서 해본 상담이라고 해봐야 처음 기관을 이용하고 싶어서 찾아온 분들을 만나던

기초상담이 전부였던 나에게 술 문제로 힘들어하는 분들을 대상으로 상담을 이끈다는 것은 낯설고 어려운

일이었다.

무엇을,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초기에는 팀장님이 상담을 주로 진행했고, 나는 옆에서 흐름을 따라가는 데 집중했다.
팀장님은 늘 이렇게 말했다.
“상담과 수다는 종이 한 장 차이야. 우리는 방문했으면 상담을 하고 와야 해.”
이 말은 지금도 내가 상담을 시작하기 전 마음속에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문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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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어느 날, 팀장님은 나에게 이런 말을 건넸다.
“상담을 하려면, 네가 먼저 너 자신을 알아야 해.”
그리고 ‘나를 사정(Assessment)하는 시간’을 가져보자고 제안하셨다.

출생부터 지금까지의 사건과 그때 느꼈던 감정을 적어오라는 과제였다.


처음에는 금세 써 내려갔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꺼내기 싫은 장면들이 떠올랐고, 손이 멈추곤 했다.
적어 내려갈수록 어린 시절의 감정들이 현재의 나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이후로 나는 나 자신을 조금 더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나는 부탁을 받으면 거절하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아무리 바빠도 “네”라고 답했고, 그러다 내 일을 시간 내 처리하지 못해 억울해지는 날도 많았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어떤 경험이 그것을 만든 것인지 그때 처음 알게 되었다.


내가 쓴 글을 읽어보던 팀장님이 말했다.
“괜찮아. 그때 너는 너무 어렸고,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을 거야.”
그 한마디에 나는 참아왔던 눈물을 펑펑 쏟았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여 주셨다.
“같은 사건이 반복되더라도, 그동안 쌓인 부정적인 경험보다 긍정적인 피드백이 훨씬 많아지면 느끼는

감정은 달라질 거야. 그러다 보면 같은 일이 생겨도 예전처럼 부정적인 생각이 먼저 떠오르지 않게 되겠지.”

그 말은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내 마음에 단단히 남아 있다.


그 후 정신건강사회복지사가 되기 위한 수련 과정에서 ‘심리사회적사정’을 배우게 되었을 때,

그때의 경험이 얼마나 귀한 시간이었는지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었다.


자신을 들여다보는 과정은 반드시 숙련된 상담가와 함께,

그리고 온전한 나를 바라볼 준비가 되었을 때 비로소 안전하게 이루어질 수 있다는 사실도 그때 배웠다.


나를 흔들었던 과거를 들여다볼 용기가 없다면 변화는 시작되지 않는다.
그리고 누구보다 자신을 속이기 쉬운 사람이 바로 ‘나’라는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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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과정은 아프고 숨고 싶을 때도 있었다.
하지만 그 시간 덕분에 지금 나는 상담을 자신 있게 이끌 수 있다.
이야기의 방향이 어디로 흐를지, 어떤 말이 상대를 닫게 만들고 어떤 말이 열리게 하는지,

어떤 순간에 역전이가 일어나고 있는지 알아차릴 수 있게 되었다.


대화 속에서 상대가 자신의 모든 것을 받아들이기 어려워 보이면 나는 기다릴 줄 알게 되었다.
억지로 꺼내게 하는 것이 상담이 아니라는 것을,

때로는 ‘기다림’이 가장 큰 개입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살아가며 수많은 사람을 만난다.
그리고 유독 부딪히는 사람이 한 명쯤 있기 마련이다.
내가 상대방으로 인해 힘들고 스트레스를 받는다면, 상대방 역시 나로 인해 힘들고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다.
인간관계는 ‘일방통행’이 아니라 ‘쌍방통행’이기 때문이다.


그럴 때 필요한 것은 회피가 아니라 ‘알아차림’이었다.
나는 상대방의 무엇 때문에 힘든가, 상대에게서 내가 싫어하는 나의 모습이 보이는 것은 아닌가.
그 질문에 답할 수 있었던 것은 상담자로서의 성장 이전에 한 사람으로서의 성장에 가까웠다.


상담을 하다 보면 이 세상에 100% 같은 사람은 없다는 사실을 매일 새롭게 깨닫게 된다.
다양한 성향·기질·배경을 가진 사람들과 마주할 때 나를 불편하게 만드는 감정이 올라온다면 그 순간은

내가 나를 먼저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는 신호이기도 했다.


그래서 상담의 출발점은 결국 ‘나’였다.
내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 나의 특성과 성향을 잘 알고 있을 때 누구를 만나더라도 흔들리지 않고 상담을 이어갈 수 있다. 예상치 못한 상황 앞에서도 나를 잃지 않고 대처할 수 있다.


이 과정은 쉽지 않지만, 지나고 나면 이전보다 단단해진 나를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나는 앞으로도 계속 나를 이해하고, 타인을 이해하고, 관계 속에서 배우며 성장해갈 것이다.
그것이 내가 이 일을 오래, 그리고 건강하게 이어가기 위한 유일하고도 중요한 길이라는 것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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