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마주한 또 하나의 전문성

정신건강사회복지사와 일하며 배운 것들

by 이은

대학교를 졸업하고 처음 들어간 직장은 복지관이었다.

서툴렀고, 지쳤고, 결국 퇴사했다.


후회는 없지만, 가끔은 생각한다.

“조금만 더 버텼다면 내가 더 성장했을까?”

지금의 내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훨씬 능숙하게 일했을 것 같다는, 그런 아쉬움 같은 마음.

3-1.png

퇴사 후 다시 선택한 곳은 장애인주간보호센터였다.

대상자들이 오전에 등원해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오후가 되면 집으로 돌아가는 곳.

보호자의 돌봄 부담을 덜어주는 공간이자 대상자에게는 낮 동안의 생활 기반을 만들어주는 일종의 작은 사회였다.

Gemini_Generated_Image_3z4hp63z4hp63z4h.png

그러나 그곳의 현실은 단순하지 않았다.


직원 수는 2명으로 되어 있었지만 실제로는 나 혼자만 남아 있었고, 공익요원이 없으면 모든 업무가 온전히 내 몫이 되었다.

하루 대부분을 주방에서 보내며 식사를 준비해야 했고, 혼자 대상자의 안전을 챙기느라 늘 긴장했다.

약 1년 동안 거의 ‘주방에서 근무하는 사회복지사’처럼 지내다 보니 결국 또 퇴사를 선택했다.

젊은 날의 패기였지만 그 선택은 지금 돌아봐도 나를 조금 더 단단하게 만들었다.


그 후 입사지원은 훨씬 신중해졌다.


여러 번의 직장 경험으로 나는 스스로를 알게 되었다.
다수 앞에 서는 것이 불안하고, 1:1 혹은 소규모 상황에서 비로소 안정감을 느낀다는 사실을.


그래서 ‘사례관리’라는 업무가 눈에 들어왔다.
개인 중심의 개입, 깊이 있게 이야기 나누는 방식이 나와 잘 맞을 거라 생각했다.
그 곳은 ‘정신건강사회복지’ 영역이었다는 사실을 합격 통보를 받고서야 알게 되었다.

3-3.png

정신건강사회복지사들과 함께 일하기 시작한 첫날의 충격은 지금도 선명하다.
내가 느낀 첫 감정은 다름 아닌 ‘수치심’이었다.

정신건강사회복지사들은 말을 들을 때 단어 하나, 억양 하나, 말 뒤에 숨겨진 ‘의도’를 파악한다.
그들의 전문성은 대상자의 말 너머를 이해하는 데 있고, 그것은 업무의 핵심이다.


하지만 처음 그들과 일할 때, 나는 마치 투명한 방 안에 들어가 온전히 관찰당하는 느낌이었다.

어떤 날이었다. 한 선생님이 그림을 그렸고 나는 너무 자연스럽게 말했다.

"돼지코 같아요.”

그 말에 선생님은 이렇게 반응했다.

“이게 돼지코로 보인다고요? 오늘 돼지고기가 먹고 싶나 보네요.”

그 말투, 그 시선.
그 순간 나는 내가 한 말 하나가 분석의 재료가 되는 듯한 불편함을 느꼈다.


내 말투, 단어 선택, 말하는 속도, 억양까지 모든 것이 무의식의 반영인 것처럼 해석되는 상황이었다.
그 때 나는 ‘나라는 사람’이 해부되고 평가되는 느낌을 받았다.
불쾌함, 불안함, 속상함, 그런 감정들이 뒤섞여 마음 한구석이 시큰했다.


조심스럽게 내 느낌을 전했을 때, 선생님은 이렇게 말해주었다.

“우리가 일하면서 그렇게 보일 수는 있지만, 일상까지 그렇게 바라보진 않아요. 불편했다면 미안해요.”

그 말이 위로였지만, 낯선 세계에 던져진 사람으로서의 불안감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깨달았다.
대상자와 상담을 하다 보면 말 뒤의 정서를 읽어야 할 때가 많았다.
건조한 표현 뒤에 숨어 있는 피로감, 농담 속에 담긴 절망, 짧은 호흡 사이로 스며드는 불안 등을 파악해야만 적절한 개입이 가능했다.


내가 ‘판단받는 느낌’을 경험해보았기 때문에, 상담자로서의 나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
내 지인이 그런 느낌을 받을 것 같으면 말을 멈추거나 주제를 바꾸기도 했다.

‘나처럼 불편해할까 봐’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하지만 2~3년이 지나자 신기하게도 그 능력은 오직 ‘일할 때만’ 자연스럽게 나타났다.

일상에서는 전혀 드러나지 않았다.


그제야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전문성은 나를 잠식하는 것이 아니라, 필요한 순간에만 빛나는 능력이라는 것을.


그리고 지금의 나는 결국 수련을 거쳐 정신건강사회복지사가 되어 누군가의 무의식과 마음의 구조를 읽어

내는 일을 전문적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

한때 나는 ‘사회복지사로서 정신건강사회복지사들과 함께 일하며 느낀 수치심’ 속에 있었다.
그 감정도 결국 내 업의 일부가 되어 나를 조금 더 깊게 만들어 주었다.


처음 정신건강사회복지사들과 함께 일했을 때 느꼈던 불편함을 나는 오래 기억했다.


그것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내가 새로운 세계에 도착했다는 신호였던 것 같다.
정신건강 영역은 ‘말’이라는 도구를 다루지만, 실제로는 ‘의미’를 다루는 세계였다.

대상자의 말에는 언제나 맥락이 있고, 그 맥락에는 감정이 있고, 그 감정에는 삶의 결이 있다.
정신건강사회복지사의 역할은 그 결을 읽어내고, 흐트러진 실마리를 다시 엮어주는 일이다.


그래서 때로는 상대가 말하지 않은 부분을 더 많이 들어야 하고, 때로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순간을 더 깊이 이해해야 한다.

그런데 그 전문성은 처음 마주한 사람에게는 무척 강렬하게 다가온다.

나 역시 그랬다.

분석당하는 느낌, 평가받는 느낌, 내가 의도하지 않은 의미가 덧붙여지는 느낌.
이 모든 경험은 처음엔 스트레스였지만, 시간이 지나자 내 업무의 중요한 밑거름이 되었다.


이제 돌아보면, 나는 그 불편함을 통과하며 성장했다.
타인의 말 뒤에 숨은 구조를 보는 일은 때로 버겁지만, 그 과정은 결국 ‘사람을 이해하는 방식’을 더 넓은 차원으로 확장시켜 주었다.


정신건강사회복지사로 일하며 깨달은 것은 하나다.
전문성이란 나를 억누르는 갑옷이 아니라, 필요한 순간에 나를 지켜주는 도구라는 사실이다.
상담이 끝나는 순간 그 도구를 내려놓고 ‘나’라는 사람으로 돌아올 수 있어야 오래 일할 수 있다.


이제야 비로소 나는 말할 수 있다.
정신건강 영역은 어렵지만, 그만큼 사람을 깊이 이해하게 해주는 무게 있는 세계라고.

그리고 그 세계 한가운데서 나는 여전히 배우고 있고,

여전히 성장하고 있고,

여전히 흔들리면서도 걸어가고 있다.


즉 사회복지사가 정신건강영역에서 정신건강사회복지사와 함께 일한다는 것은,

때로는 상대가 나를 판단하고 평가하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수치심, 불쾌함, 불안함 같은 감정이 스며들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을 일상의 감정과 동일선상에 두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전문성은 일의 언어일 뿐, 나라는 사람의 모든 면을 설명하는 언어는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렇게 말하고 싶다.

그저 일상인 듯, 너무 신경 쓰지 않을 때 비로소 더 오래, 더 건강하게 일할 수 있다.

작가의 이전글사회복지사는 왜 '팔방미인'이 되어야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