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쌓아 올린 능력과 마음에 대하여
사회복지사로 일하며, 동료나 타 직종에서 일하는 지인들로부터 종종 이런 말을 듣곤 했다.
“사회복지 일하러 갔는데 요리를 하고 전구까지 갈고 있더라고요. 내가 뭘 하고 있나 싶었어.”
“레크리에이션 강사가 된 줄 알았어. 그런데 끝나면 또 서류를 써야 하잖아.”
“사회복지사는 전문직 아니잖아.”
이 말을 들을 때마다, 마음 한편이 묘하게 찌르르해지는 순간이 있었다.
사회복지사로 현장에서 지내다 보면 저 말의 속뜻을, 그 말이 나온 자리와 분위기까지도 너무 잘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사회복지사에게 필요한 역량은 무척 넓다.
어떤 대상자를 만나게 될지, 어떤 가정환경과 어떤 문제를 마주하게 될지 예측하기 어려운 일이 많다.
누군가는 서류 작성과 상담을 떠올리겠지만 막상 방문했을 때 고장 난 전등을 갈아야 할 때도 있고, 당장
필요한 물품을 찾아 발품을 팔아야 할 때도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흔히 말한다.
“사회복지사는 팔방미인이어야 한다고….”
하지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정말 모든 분야를 다 잘해야만 하는 직업이 또 있을까?’
그 물음은 경력이 쌓일수록 더욱 선명해졌다.
그리고 그 답은 내가 마주한 수많은 경험 속에서 조금씩 드러났다.
사회복지사가 되면 자연스럽게 하게 되는 일 중 하나가 ‘프로포절 작성’이다.
기관 예산 중 대부분이 인건비로 책정되어 있다 보니 실제 사업을 위해 사용할 수 있는 예산은 매우 제한적이다. 그래서 외부 공모사업에 응모해 선정되는 것은 늘 ‘한 번이라도 더 시도해야 하는 일’이 된다.
첫 직장에서의 기억이 떠오른다.
대학교를 막 졸업했을 때, 팀 동료가 외부사업에 선정되었다. 아동 대상 주 1회 프로그램이었는데 시작 전
퍼즐처럼 맞추어 놓는 매트를 넓은 바닥에 깔아야 했다.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보다 매트를 깔고 걷어내는 시간이 더 길게 느껴질 때도 있었다.
그때마다 속으로 이렇게 중얼거렸다.
“내가 이러려고 사회복지사가 된 건 아닌데….”
이 감정은 10년 차가 되었을 때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정신건강 분야에서 근무하던 시절, 1인 가구 대상자에게 직접 요리를 만들어 전달하는 프로그램을 맡았다.
전날 필요한 식재료를 구입해 보관하고, 다음 날에는 조리도구와 도시락 용기까지 챙겨 프로그램 장소로 이동한다. 안내하고, 진행하고, 설거지하고, 정리하고, 대상자에게 전달하는 과정까지 마치고 나면 반나절 이상이 훌쩍 지나 있다.
예산이 넉넉했다면 외부 강사에게 맡길 수도 있었겠지만 대부분 기관에서는 그 선택지를 누릴 수 없다.
결국 프로그램의 기획부터 실행, 뒷정리, 결과보고까지 모든 과정이 사회복지사의 몫이 된다.
그 모든 수고는 대상자에게는 따뜻한 서비스가 되지만 담당자에게는 결코 가볍지 않은 노동으로 다가온다.
사회복지사가 대상자를 자주 만나고, 가장 가까이서 관찰하는 직업이다 보니 이런 상황도 자주 생긴다.
문제가 생기면 관련 기관에 문의하는 것이 아니라 “일단 담당 사회복지사에게 물어보는 것.”
방문했을 때 그동안 궁금했던 모든 것들을 한꺼번에 물어보는 경우도 많다.
질문에 답하기 위해선 관련 정보를 찾아보고, 관련 기관에 문의해 정확한 내용을 확인해야 한다.
이 과정이 하루에 여러 번 반복되면 내가 해야 할 본 업무는 어느새 저녁 시간이 되도록 untouched 상태로 남아 있는 날도 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런 경험들이 쌓이고 쌓이면 어느새 내 전문성의 일부가 되어 있다.
처음에는 단순한 ‘삶의 팁’처럼 느껴졌던 정보들이 나중에는 대상자 상담에서 자연스럽게 튀어나와 도움을
주기도 한다.
그리고 어느 순간, 나는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사회복지사는 사람의 ‘문제’만 다루는 직업이 아니라 사람의 ‘삶 전체’를 이해해야 하는 직업이라는 사실을.
때로는 수리, 도배, 요리, 이사, 청소 등 내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을 해야 할 때도 있다.
그럴 때마다 ‘현타’가 오지 않는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나는 안다.
이 모든 경험이 결국 내가 만나는 사람들의 삶 속으로 조금 더 걸어 들어가기 위한 과정이라는 것을.
사회복지사의 전문성은 단일 기술에서 나오지 않는다.
끊임없이 배우고, 경험하고, 문제 앞에서 망설이더라도 다시 해보는 과정에서 길러진다.
그래서 사회복지사는 어느새 넓은 영역을 이해하고 깊은 공감과 판단을 바탕으로 개입할 수 있는 존재가 된다.
그래서 나는 이제 ‘팔방미인’이라는 말이 예전처럼 부담스럽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 말은 단순히 많은 일을 한다는 뜻이 아니라 사람의 삶을 여러 각도에서 보고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안다.
우리가 하는 일이 때로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분명 누군가의 하루를 바꾸고, 마음을 바꾸고, 삶의 방향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그 사실이 나를 다시 현장으로 끌어당긴다.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