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사람'이 아니라 '전문가'로 서기까지
나는 사회복지사다.
그리고 누군가 “사회복지사가 되고 싶었냐”고 묻는다면, 나는 주저하지 않고 “아니요”라고 답할 수 있다.
사회복지학과를 선택했던 이유는 지금 생각해도 단순했다.
혼자 살고 싶었고, 집에서 멀리 있는 학교를 가고 싶었다.
독립의 탈출구로 선택한 전공이었을 뿐, 졸업 후 어떤 일을 하게 되는지 깊이 알아보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았다.
지금 돌이켜보면 인생의 큰 갈림길을 그렇게 가벼운 마음으로 지나쳐버렸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이다.
그 선택이 결국 오늘의 나를 만들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더더욱 그렇다.
사회복지사가 된 이후,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있다.
“사회복지사요? 좋은 일 하시네요.”
처음에는 그저 웃으며 넘겼다. 그런데 이 말은 시간이 지나도 계속 따라붙었다.
마치 사회복지사라는 직업을 설명하는 기본 문장처럼 누군가에게 소개할 때마다 꼭 등장했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마음속으로 이렇게 되물었다.
‘나는 월급을 받고 일하는 직장인인데 왜 이 일을 좋은 일이라고 규정하는 걸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사회복지사라는 직업은 대중의 인식 속에서 ‘전문직’이기보다 ‘선한 마음으로 봉사하는
사람’의 이미지에 더 가까웠다. 많은 사람들이 사회복지사를 자원봉사자의 연장선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그러니 “좋은 일 한다”라는 말은 칭찬이라기보다 사회복지사라는 직업을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을 그대로
드러내는 표현이었다.
문제는 그 시선이 종종 우리의 전문성을 지우고, 노동을 가볍게 만든다는 데 있었다.
처우 개선을 요구하면 “돈 욕심 난다”고 손가락질했고, 연봉 수준을 이야기하면 “좋은 일을 하면서 그런 걸
따지냐”는 말이 따라왔다. 마치 사회복지사는 경제적 보상과는 무관한 영역에서 살아야 하는 것처럼 ‘도덕적 순결함’을 강요받는 순간들이 많았다.
그래서인지 나는 “좋은 일 하시네요”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오히려 마음이 복잡해졌다.
나는 좋은 일 때문에 이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전문적인 업무를 수행하는 직업인으로서 현장에 서 있는 사람이다. 그 점을 알아주지 않는다는 허탈함이 마음 한구석에 자리 잡았다.
사회복지사라는 직업이 ‘선업(善業)’으로만 규정되는 순간, 퇴근 이후의 삶에서도 같은 일이 이어진다.
“버스에서 무조건 양보하죠?”, “길 가다가 어려운 사람 보면 그냥 못 지나치죠?”, "집에서도 복지 좀 해!!"
이런 질문들은 농담처럼 던져졌지만, 사실 그 안에는 ‘사회복지사는 언제 어디서나 도와줘야 한다’는 은근한 기대가 숨어 있었다.
그런 기대는 때때로 나를 불편하게 만들었고, 어떤 날은 화가 날 만큼 무례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나는 퇴근 이후에는 한 명의 시민이고, 누군가를 도울 의무가 없는 평범한 사람이다.
직장에서 맡은 역할을 벗어나면, 나도 다른 직업인들과 똑같이 일상적인 삶을 살아가는 사회구성원일 뿐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사회복지사를 ‘도움을 주는 사람’이라는 고정된 이미지로 바라본다.
그 시선은 늘 선행을 기대하고, 헌신을 요구하고, 감정을 소모하게 만든다.
이 기대가 왜곡되면, 사회복지사는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도와줘야만 하는 사람’이 된다.
그리고 그것은 직업을 넘어 내 삶의 모든 부분까지 침범하게 된다.
나는 그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회복지사는 더 이상 ‘착한 일 하는 사람’이라는 말로 묶일 수 없는 시대에 있다.
현장에서 우리는 복잡한 행정업무, 사례관리, 심리적 개입, 협업과 조정, 법적 절차, 연구와 평가 등 수많은
전문적 기능을 수행한다. 감정노동과 위기개입은 말할 것도 없다.
현장에 있는 사회복지사라면 누구나 알고 있다.
이 일은 마음만으로는 할 수 없다.
전문성 없이, 지식 없이, 기술 없이 버틸 수 없는 영역이란 걸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나는 말하고 싶다. 사회복지사는 ‘좋은 사람’이기 이전에 ‘전문가’라고.
그리고 그 전문성은 단순한 선의나 도덕적 기대가 아니라 오랜 공부와 훈련, 경험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누군가를 돕는 일은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니다.
그 일을 직업으로 삼았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충분히 무겁다.
그 무게를 혼자 짊어지지 않기 위해 우리는 전문가로서의 언어를 가져야 하고,
사회도 그 언어를 들을 준비가 되어야 한다.
나는 여전히 사회복지사로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이제는 누가 “좋은 일 하시네요”라고 말하면 이렇게 답한다.
“저는 좋은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전문적인 일을 하는 사람입니다.”
이 말이 내 마음을 더 단단하게 지켜준다.
내가 누구인지, 어떤 가치를 가지고 서 있는지 스스로에게 확인시키는 문장이다.
그리고 언젠가 사회가 이 문장을 자연스럽게 이해하는 날이 오길 바라며,
오늘도 나는 현장에서 나의 자리로 향한다.
나는 사회복지사가 전문직으로 인정받기 위해 가장 먼저 바뀌어야 하는 것은
‘사회적 시선’이 아니라 나 자신을 향한 태도라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내 일을 ‘전문성의 영역’으로 정의해야만, 타인의 시선도 서서히 달라질 수 있다.
내가 내 경계를 지키지 못하면, 아무도 대신 지켜주지 않는다.
그래서 이제는 더 분명하게 말하려 한다.
나는 누군가의 기대에 따라 ‘착한 사람’이 되기 위해 이 일을 택한 것이 아니다.
나는 판단하고, 조정하고, 개입하고, 기록하며, 구조와 인간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내는 일을 하는 전문가다.
그 사실을 잊지 않을 때, 비로소 사회복지사로서의 삶이 흔들리지 않을 수 있다.
도움은 의무가 아니라 선택이며, 선택은 전문성의 기반 위에서 더 단단해진다.
그리고 오늘도 나는 그 단단한 기반 위에서 다시 한 걸음, 나의 자리로 걸어간다.
사회복지사의 길은 여전히 쉽지 않지만 적어도 나는 이제 그 길 위에서 흔들리지 않는다.
누군가의 기대가 아닌, 내가 선택한 전문성으로 내 자리를 지켜내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