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회사에 사직서를 냈다.
몇 개월간의 긴 고민 끝에 결국 사직서를 냈다. 고민하는 기간 동안 매일 악몽과 불면증이 번갈아가며 나의 밤을 괴롭혔다. 뭐 모두 다 똑같겠지만, 사직서를 내는 게 두려운 게 아니었다. 서른이 넘어 겨우 시작한 직장생활이었고 지금은 삼십 대 중반에 들어섰으니 이직하기가 쉽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나의 목을 죄어왔다. 하지만 이직할 직장을 구하지도 않은 채 결국 사직서를 냈다. 새로 시작하는 프로젝트에 참여하면 더 긴 시간 동안 이 고민을 해야 할 것 같아서였다.
이쯤 되면 홀가분한 기분이 들어야 마땅하다 생각했는데, 완전히 시원하지는 않다. 퇴직절차와 퇴직금 등 신경 쓸게 아직도 남았다는 게 불편하다. 이직해야 할 회사를 찾고 준비해야 하는 것도 발목에 대롱대롱 매달려서 나의 발걸음을 무겁게 했다.
대강 하루를 마무리하고 오늘도 밤 12시를 넘겨서야 샤워를 하러 욕실에 들어갔다. 욕조는 없고 샤워실은 분리되지 않은 작은 욕실이다. 아이보리색의 욕실의자에 쭈그려 앉아 샤워기를 어깨에 걸치고 아무 생각 없이 욕실을 둘러보았다. 둘러보고 말 것도 없는 작은 욕실의 수건걸이에 식물 하나가 걸려있다. 내 방에 살고 있는 식물이다. 엄마가 물을 주고 물을 빼려고 잠시 수건걸이에 걸어두었나 보다.
나는 식물을 잘 키우지 못한다. 아니, 죽이기에 가깝다. 내가 키우는 식물들은 내게서 관심을 받지 못한다. 그리고 물주는 주기도 잊어버리기에 말라죽는다. 아 물론 엄마가 결국 다시 살려낸다.
엄마는 아침마다 베란다 문턱에 걸터앉아 식물들을 살핀다. 나도 분명 자연을 사랑하고 산책을 좋아하고 나무 냄새, 흙냄새를 좋아하며 그에 취해 있기를 즐긴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내 방에서 식물들은 내게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샤워기의 물줄기가 따뜻하게 몸을 데우고 습기 찬 욕실에서 가만히 식물을 보고 있자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쟤도 분명 어디엔가 큰 자연 속에 살다가 여기까지 옮겨 온 걸 텐데...
음.. 그런데 흙에서 자라는 게 아닌 건가? 원래 저렇게 매달려 사나?
아.. 그러고 보니 이름도 모르네...
원래 있던 환경에서 뽑힌 건지 뜯긴 건지.. 아무튼 그렇게 다른 환경에 와서
나한테 관심도 못 받고 이파리도 몇 장 안되고..
물은 화장실에서 머금고..
수건걸이나 커튼봉에 걸려서 꾸준히 살아가는 너도.. 참..
꼭 나 같네.'
또 이렇게 괜히 처량하게 식물에 나를 대입하며 쓰린 생각만 머금었다. 그리고 자동으로 한숨을 내뱉고는 욕실을 나왔다. 물론 이 식물도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