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공중식물

by 영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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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부자리를 펴고 불을 껐다. 식물이 걸려있는 부분을 빼고는 갈색 암막커튼으로 창문을 가렸다. 천장까지 기어들어온 빛을 누워서 새삼스럽게 보고 있다가 자세를 고쳐 옆으로 누우니 식물이 눈에 들어왔다. 창 밖에서 들어오는 여린 빛이 커튼봉에 걸려있는 식물을 가만히 비추었다.


'맞다, 저 식물 이름이 뭐지?'


이부자리 옆에 대충 놓은 스마트폰을 더듬더듬 찾아 검색하려 하니 뭐라고 검색해야 할지도 몰라서 잠시 망설였다.


'음... 공중에 매달아놓았으니까 공중.. 식물..?'


검색을 하니 #공중식물 #행잉 플랜트 #hangingplant 등의 연관검색어와 함께 여러 쇼핑몰이 나온다. 저 식물과 비슷한 식물을 찾는 데는 그리 힘들지 않았다.


'디시디아 화이트...'


조금 더 검색을 해보니, 정확한 이름은 dischidia ruscifolia이다. 관엽식물이고, 다른 나무에 붙어살며 수분과 양분을 먹는 착생식물이라고 한다. 어쩐지 저렇게 공중에 매달려서 그냥 살 수 있는 건 아니었나 보다. 더 신기한 것은 나무에 붙어사는 디시디아는 개미와 공생관계를 이룬다고 한다.

그리고 정말 놀랐던 것은 꽃이 핀다고 한다. 단 한 번도 꽃을 본 적이 없는데 말이다. 대략 3개월 이상 저 식물과 함께 방을 썼는데... 또 미미하게나마 독을 갖고 있다고 한다. 꽃을 피워본 적 없고 독기를 품어봤자 우스운 건 꼭 나와 같다.

인터넷에 검색된 디시디아는 잎이 참 풍성하다. 하지만 내 방의 디시디아는 참... 겨우 연명하는 것 같아 보인다.


'씁쓸하네. 방을 같이 쓰는 식물마저 나를 닮은 건가. 내 탓인가...'


서른 중반에 스펙도 없고 경력도 반반하지 못한 나 같다는 생각에 또 가슴이 꿀렁하고 한번 뒤집히는 것 같다.

사실 저 식물의 듬성듬성한 잎과 줄기는 내 탓이 조금 있다. 내 방에 처음 왔을 때는 분명히 더 긴 줄기와 함께 잎이 많이 있었다. 그런데 커튼을 여닫는 와중에 꽤나 과격하게 식물을 친 게 사실이다. 내 잘못이 분명하다.




자발적 자본주의의 노예로 전환되는 알람 소리에 눈을 비볐다. 어느새 잠들었던 새벽은 오랜만에 악몽도 꾸지 않았고 불면증으로 괴롭지도 않았다. 기억을 되짚어보니 디시디아 화이트라는 이름을 알아내다가 잠들었던 게 마지막 기억이다. 어쩌면 저 식물이 나에게 도움을 준 게 아닌가 싶은 아이 같은 상상이 들어 식물에게 작게 고맙다며 웅얼거렸다. 저 식물과 이 방을 같이 쓰고 함께 밤을 보냈고 아침을 맞이했다는 게 어색하고 낯설게 느껴졌다.





꽤나 긴 기간 동안 음악이 소음처럼 들렸었다. 이어폰을 통해 들리는 음악이 주먹을 귀에 쑤셔 넣는 것 같아서 듣기 힘든 때가 참 많았는데, 어쩐지 오늘 아침 출근길엔 베이스 소리, 드럼의 킥 소리, 탑노트의 신디사이저 소리, 미드톤을 채우는 갖가지 소리들과 보컬과 어우러지는 여러 화음의 보이스들이 갈래갈래 세세하게 들리며 나를 흥분에 빠뜨렸다. 생소하기까지 한 이 느낌은 마치 다시 음악을 사랑하던 때로 돌아가게 된 것같이 느껴졌다.


'잠을 잘 자서 그런가.. 아니면 어제 사직서를 내서 그런가.. 아니면..

그 식물이 진짜 마법이라도 부렸나..?'


내 멋대로 생각하다 보니 어느새 사무실 앞에서 출근 지문을 찍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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