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저기 전화해서 어떻게 하면 퇴직을 잘할 수 있을지,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퇴직금이나 그 외 수당들을 어떻게 잘 받을 수 있는지를 알아보느라 정신없는 하루가 지났다.
퇴근하고 오자마자 엄마랑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데 또 불같이 화를 냈다. 그저 말이 안 통한다며 소리를 지르고 문을 닫고 가슴을 치며 답답하다고 혼자 중얼거렸다. 엄마처럼 당하고만 살고 손해만 보며 살지 않겠다는 생각에 또 화가 났다. 내가 어릴 때부터 교육받아온 방식으로 계속해서 살아간다면, 내가 당했던 온갖 따돌림과 수모와 손해와 억울한 일들이 계속 일어날게 분명하다고 생각하며 엄마에게 화를 내는 나를 정당화시켰다. 하지만 당연하게 다음 단계는 별것도 아닌 걸로 엄마에게 분풀이를 한 내가 병신 같다는 자괴감이 든다. 의지할 사람이라고는 엄마와 나 단 둘뿐인데 이 좁은 집에서 선을 긋고 벽을 쌓아 올린다.
엉망진창인 인생에 더러운 인성까지 더해져 신데렐라 스토리 같은 전개는 꿈도 못 꾼다. 신데렐라 스토리의 드라마가 주는 교훈은 대충 이렇다. 돈 없으면 착하게라도 살고 다 당하며 살아도 끝까지 정의를 위해 용감하라는 말도 안 되는 주문을 한다. 하지만 이 주문서에는 깨알 같은 크기의 글이 쓰여있다. 그렇게 산다고 해서 세상이 왕자님이라는 기회를 준다고 약속하지는 않는다고.
돈이 행복의 시작점에 서게 해 주는 게 분명한데, 나를 가르친 사람들은 아니라고 해왔다. 거기서부터 시작된 나의 인지부조화는 뒤늦게 시작한 사회생활에서 큰 괴리감을 선사했다. 사실 지금 돌아보면 나에게 돈이 행복을 줄 수 없다고 한 사람들은 나보다 잘 살고 있다. 모두 나보다 행복의 시작점에 이미 서 있던 사람들이었다.
"씨이발."
자연스럽게 욕이 새어 나온다. 사회생활 전에는 누가 '존나'라고만해도 듣기 싫었는데, 지금 나는 욕을 하지 않으면 말이 나오지 않는다. 엄마 앞에서도 미친 듯이 욕한다. 세상을 향해서든 신을 향해서든 누구를 향해서든.
그렇다고 딱히 망가졌다거나 내가 더러워졌다거나 나빠졌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저 깨끗하고 맑은 거짓말로 이루어진 동화세계에서 너무 늦게 빠져나와서 동화 밖의 환경에 적응하는 게 개같이 힘들다고 느낄 뿐이다.
음악을 했던 덕에 무엇을 하든지 내 작품처럼 소중히 여기며 큰 에너지를 쏟아내는 것을 당연하다고 여겼다. 그러나 이제는 이런 짓을 그만해야 한다고 결심을 하며 방의 사각지대를 찾았다. 한 평이 남짓한 방의 사각지대에 몸을 밀어 넣고 무릎을 안고 가만히 있다 보니 또다시 커튼봉에 걸려있는 식물에게 눈이 갔다. 식물이 무얼 잘못한 게 아닌데 눈을 치켜세우고 말을 걸었다.
"너도 똑같잖아. 그렇게 사는 게 좋아?
살아있을 만해? 뭘 그렇게 기를 쓰고 사는 거야.
네가 있어야 할 곳이 여기라 생각해?
자연스러운 환경에서 뜯겨서는 거기에 그렇게 걸려 있는 거잖아.
힘 있는 자의 필요에 의해 이동해서 사랑을 주고받던 개미도 없고,
새소리도 멀게나 들리는 이런 곳에 와서 사는 게 좋아? 괜찮아?
왜 그렇게 살아남으려고 기를 쓰고 있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