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게."
화들짝 놀랐다. 아 드디어 내가 미쳤나 보구나 싶었다. 혹시 우울증과 비관의 끝은 환청인가? 아니면 나의 공상 속에서 내가 나에게 말을 걸었나. 이러나저러나 그냥 미친것 같다. 아니면 내 말소리를 듣고 엄마가 내게 대답했나? 이것도 아닌데.. 혹시나 싶어서 창문을 열어보았다. 오래된 복도식 아파트에 살고 있으니, 방에서 하는 말소리쯤은 쉽게 복도에서 다 들린다. 평소에도 상식을 벗어난 행동과 말로 내 삶의 질을 낮춰주고 있는 이웃들이니 충분히 저런 말을 하며 지나갈 수도 있다. 하지만 너무도 분명하고 선명하게 내 머리 위에서 다시 목소리가 들렸다.
"추우니까 창문 좀 닫아봐."
소름이 돋았다. 아주 천천히. 정말로 천천히 눈을 들어 식물을 쳐다봤다. 입이 달린 것도 아니고 동물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기가 막혔다. 말도 안 된다.
"뭘 봐. 창문 좀 닫으라니까. 겁나 말 안 듣네. 너만 이방 쓰냐?"
투명한 창문에 비치는 인간은 분명 나 밖에 없었다. 불투명한 창문까지 다시 다 닫고서야 창문가에서 물러섰다. 그리고 식물에게.. 그러니까 미친것 같지만, 되물었다.
"너... 네가 지금... 그러니까 식물인데 말을 한 거야?"
"네가 나한테 말 걸었으니까 대답한 거야. 왜."
꼭 내가 나와 대화하는 것 같이 느껴졌다. 저 툭툭 던지는 말투는 내 머릿속에서 혼자 대화하던 특유의 말투였다.
"아 그러니까 나 지금 미친 거지? 그냥 나 혼자 대화하는 거지? 그러니까 네가 나인 거지?"
"뭐래. 참내.
뭐 물론.. 내가 너랑 좀 비슷한 말투를 쓰긴 해.
왜냐면 너한테서 말을 배웠으니까.
하지만 난 너랑 다르니까 너랑 동일시하진 말아줄래?
그리고 너한테 말을 배우게 된 건
너랑 같은 방 쓰게 되어서 어쩔 수 없던 거고,
내 의지는 아니니까 너무 불쾌해하지도 말고.
참, 그리고 내가 정말 늘 하고 싶었던 말이 있는데.
욕 좀 그만해줄래? 내가 너한테 배우는 말이 대부분 욕이라고."
괜스레 이깟 식물에게 조차 무시당하는 기분이 들었다.
"야, 식물. 너랑 나랑 뭐가 다른데?
솔직히 너보다는 내가 낫지.
난 그래도 밖에 돌아다닐 수도 있고 무언가를 선택할 수도 있어."
이왕 미친 거 제대로 미쳐볼까 싶었던 걸까, 식물이 말을 한다는 것에 당혹감을 느끼면서도 나도 모르게 이 대화가 당연스러워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