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밖에 돌아다니고 선택을 한다고?
하긴, 그렇긴 하네. 자발적으로 선택해서 집과 회사에만 너를 가두고 있는 건 맞긴 하네."
딱히 반박할 수는 없어, 잠깐의 정적이 흘렀다. 하지만 문득 식물과의 대화에 너무 당황해서 잊고 있었던 사직서가 떠올랐다.
"그래 맞아. 자발적 노예이지만 또 자발적으로 노예생활도 벗어날 수 있지. 사직서를 냈거든."
이게 뭐라고 의기양양하게 반박했다.
"아... 그래? 설마... 정말 그걸로 노예생활을 벗어났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
"..."
"하... 너 바보구나. 넌 어차피 그 생활을 못 벗어나잖아.
처음 너를 만난 날부터 지금까지 봐온 너는,
'회사를 그만두면 다음에는 어떻게 하지.',
'이직할 회사를 알아봐야 하는데... 나를 받아줄 회사는 있나?',
'카드값은 또 어떻고.',
'나이는 먹어가는데 모아둔 돈은 없고.',
'그렇다고 스펙이 있는 것도 아닌데.',
'나 정말 어쩌지. 난 이미 망한 것 같은데.',
'하고 싶은 것은 있지만 이제는 그것조차
기초적인 생활이 되어야 공부를 더 하든지 말든지 할 텐데.'
라고 생각하면서, 이 생각 때문에 잠 못 자고 짜증내고
엄마한테 소리 지르고, 혼자 있을 때는 울면서 억울하다고 온갖 욕만 해댔는걸.
그래도 돈을 벌어야 한다며,
더는 어리지 않고 더는 꿈만 꿀 수 없다며,
어떻게 하면 다시 자발적 노예로 돌아갈 수 있을까만 생각하잖아."
정말로 할 말이 없어져버렸다. 그래서 그냥 의자에 몸을 기대고 앉아 불투명한 창문에, 방의 불빛보다 상대적으로 어두운 밖에 시선을 두었다.
"그러게."
건조한 말투가 툭 뱉어졌다. 동의한다.
"그래, 식물 네가 더 낫다. 나처럼 골머리 싸매고 살지 않아도 되어 보이네."
"오... 상처 받은 표정. 누가 들으면 내가 너한테 상처 준 줄 알겠다.
이미 너는 스스로 상처를 주고 있었으면서.
아 그리고 솔직히 상처는 내가 받았어. 네가 나한테 관심이나 준 적 있어?
게다가 너 지금 나를 식물이라고 부른 거야?
내가 너를 사피엔스라고 불러?
뭐... 내가 네 이름을 딱히 부른 적은 없지만, 너에게는 수인이라는 이름이 있잖아."
"... 그래서?"
"이름을 지어줘 봐."
"뭐?"
"나한테도 이름을 지어달라고."
2차 당혹스러움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벗어날 수 없고 이미 가진 거 없이 태어나 억울하다고 혼자 한탄만 하던 나였다. 이런 나를 지켜보았던 식물이기에, 식물이 내게 하는 말을 반박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인정했고 침울해져 있었는데 갑자기 이름을 지어달란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