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당해하면서도 질문을 받으면 대답하기 마련인 사람인지라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나무에 착생하여 살아가고 개미에게 보호소가 되니까...
그러니까, 나무에 빨대 꽂고 개미랑 딜하는 관계니까..."
"참... 저렴하다, 저렴해."
"아씨..."
"귀엽고 친근하게 지어줘."
"조용히 해봐.
음.. 디시디아 화이트니까, 디디 어때."
"단순하긴."
"뭐래. 내가 왜 니 이름까지 지어줘야 하냐?"
"디디 좋네."
갑작스러운 태세 전환, 빠른 수긍까지 어이없는 친구다.
아... 벌써 말 몇 마디 섞었다고 친구라고 불러버리다니 나도 참 우습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옷 갈아입는 것부터 온갖 지저분한 그루밍에 이상한 습관과 혼잣말까지 다 보고 있었다는 걸 생각해보면 음침하기까지 하다.
"그런데 디디. 너는 말할 수 있었으면서 지금까지 쭉 그렇게 날 지켜보고 있었던 거야? 음침하게?"
"그러니까 나는 기를 쓰고 살지는 않아. 아 물론 타인이 나를 그렇게 보면 그렇게 보이겠지.
왜 저렇게 열악한 상황에서도 계속 생명을 이어갈까 싶을 거야.
하지만 나는 그냥.. 살아있을 뿐이야."
이번에는 갑작스러운 화제 전환. 정말 나를 닮았다. 내가 음침하다며 공격하자, 반박하기보다 처음 내가 물어봤던 질문에 대답을 하고 있다. 왜 그렇게 살아남으려고 애를 쓰는 거냐는 질문에 답하고 있다.
그래 난 미친것 같다. 식물에게 말을 걸고 대화하고 이름을 지어주고 이제는 식물이 나를 닮은 것에 이상한 전율을 느끼며 감탄하고 있으니 말이다. 게다가 이 생소한 느낌이 싫지 않다. 디디가 말을 해서도 내가 미친것 같아서도 아닌 내가 스스로 타인이 되어 나를 보는 듯한 느낌이 싫지 않은 것이다.
디디는 말을 이어갔다.
"나를 돌보는 건, 네가 아니라 너네 엄마잖아? 너랑은 그저 방을 같이 쓰는 거고.
나는 너네 엄마가 물을 주면 물을 머금고,
화장실에 잠시 걸어두면 걸려있고,
창가의 커튼봉에 걸어 두면 창가에서 아파트를 구경하고,
햇빛을 보아야 한다며 베란다의 빨랫대에 걸어두면 산과 하늘과 달리는 자동차를 구경해.
나는 그저 그렇게 살아갈 뿐이야. 이게 살아남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그런데 네가 하는 말은 마치 운명에 순응하라는 말로 들려.
타고난 재능이 없는 것, 좋은 사람들을 만나지 못한 것, 유복한 부모를 만나지 못한 것
모두 억울해할 필요 없고 그냥 살라는 말로 들려.
그래 솔직히 순응하지 않으면 어쩔 거야. 다시 태어나기라도 할 수 있나.
알아. 아는데, 너같이 말하는 사람들 이야기를 들으면 더 화가 나."
"그럼 그렇게 계속해서 억울해하면서 살던가."
"죽을까?"
"거짓말."
거짓말이다. 죽으려고 시도했던 건 사실이다. 아마 디디는 다 보았을 게 분명하다.
매일 밤 불면증과 우울증에 시달리던 나를 보았을 것이다. 세상에 대한 억울함과 억울함보다 더 깊은 나를 향한 경멸까지도.
반복되던 자살충동에서 조금씩 벗어나던 어느 날, 죽고 싶다는 마음이 거짓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그리고 그 생각은 아주 예리한 가시가 되어 내 안의 가장 민감하고 여린 곳을 쿡쿡 찌르더니 어느새 밀고 들어와 꺼낼 수 없어져 버렸다. 어쩔 수 없다는 핑계와 함께 이 가시를 받아들였다.
가시를 받아들인 후, 삶에 대한 너무 큰 기대와 꿈과 열망을 갖고 있었기에 더 큰 환멸을 느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래, 나는 너무 살고 싶어서 너무 죽고 싶었고 정말 잘 살아내고 싶어서 정말 죽고 싶었던 것 같다.
또 그 이후엔 그게 다 욕심이었나 보다 싶어 졌다. 삶에 대한 열망이 욕심이 되어 오히려 나를 불쌍하게 만들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