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디가 알고 내가 인정하는 거짓말로 인해 대화는 주춤했다.
나는 살고 싶고, 살아남고 싶은데 멋지게 살아가는 누군가를 보면 양가감정이 들어서 나 자신이 더 초라해졌다. 그럴 때면 공평하지 않은 삶에 대한 분노가 일어났고 무기력으로 짓눌렸다. 일어나지도 짓눌려 엎드려지지도 않는 어정쩡한 모습이 더욱 나를 바보처럼 만들고 굳어지게 했다.
"그냥... 재미라도 있었으면 좋겠어.
어릴 때처럼 대단한 사람이 되어서 누군가를 돕거나 정의를 세우거나 하는 꿈을 꾸는 것은 다 쓸데없고,
그런 건 대단한 운을 타고난 이들이나 하는 거니까.
이왕이면 좀 재밌었으면 좋겠어.
죽지 않고 살기로 했으니까.
디디, 너는 살아있으면서 뭐가 가장 재밌어?"
매일 수동적으로 옮겨 다니며 매달려있는 디디에게 재밌는 일이 있을까 싶으면서도 물어봤다. 답변이 올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는데 디디는 상당히 흥분된 어조로 대답해왔다.
"나는 말이야, 내 안에 흐르는 살아있는 기운이
줄기와 잎을 간지럼 태우면서 활기차게 이동하는 것을 느낄 때 엄청 엄청 행복해.
그리고 넌 잘 모르겠지만 그 기운이 내 줄기와 잎의 한계에 다다라서는
아주 조금씩 줄기를 뻗어가고 잎을 키워갈 때 정말로 짜릿해!
아참 그거 알아? 아아 너는 알아차리지 못했을 게 분명하긴 한데,
나 어제보다 조금 더 통통하고 조금 더 길어졌어."
디디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식물처럼 보였다. 정말 행복해 보이는 디디를 보며 괘씸하기까지 했다. 나는 우울증과 무기력증에 고생하고 있는데 같은 방을 쓰는 식물 따위가 나보다 행복해 보이는 게 짜증이 났다. 못된 심보로 다시 질문했다.
"너는 다른 나무들처럼 어딘가에 튼튼한 뿌리를 내리고 있는 것도 아니고
새소리도 잘 들리지 않는 곳에 갇혀 있으면서 그게 그렇게 즐거워?
아니, 나무까지 말할 것도 없지.
나무에 착생해서 사는 다른 디시디아들이 부럽지 않아?"
"그건 내가 어쩔 수 없잖아.
네가 인간으로 태어났고 동북아시아인에 여자이고 시대와 가정환경을 그렇게 타고난 것을 어쩌겠어?
나도 마찬가지야.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것은 어쩔 수 없잖아.
그러니까 어쩔 수 있는 것에 집중하는 것뿐이야."
"좋겠네."
또 못된 심보다.
"그런데 너는 나 같은 룸메이트를 만난 덕에 다른 집에 사는 디시디아보다 훨씬 더 메마르고 볼품없어."
"그러게 말이야.
알고 있지? 내가 볼품없어 보이는 데에는 네 덕이 크다는 거?
네가 커튼을 과격하게 여닫는 덕에 잎이 자주 떨어지잖아.
하지만 잎 한두 장이 떨어졌다고 내가 아예 죽은 것은 아니잖아?
조금 망가졌다고 다 망가진 것은 아니니까.
그리고 나는 네가 말하듯이 그렇게 볼품없지 않아.
이런 환경에서 이만큼 살아남아서 이렇게 끊임없이 생명력을 발휘하긴 어려울걸?
솔직히, 내가 저번에 들었는데 네가 키운 식물 중에 내가 제일 오래간다며?"
"아... 응... 그렇긴 하지..."
"거봐. 얼마나 대단한 생존력이야.
게다가 너는 나한테 기대도 하지 않잖아. 내가 볼품이 있든 없든 말이야."
"아... 그것도 그렇긴... 해."
나는 더 부릴 못된 심보가 남아있지 않아 입을 다물었다.
생각해보면 나도 그렇다. 세상은 내게 큰 기대를 갖고 있지 않으며, 주목하지 않는다.
괴로운 건 오직 나 하나뿐이다. 나는 나 자신이 내가 정한 어떤 수위까지는 해낼 수 있기를 바라 왔다.
그래서 그것을 달성하지 못해 늘 괴롭고 환멸에 가득 차 나를 경멸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