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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하 Mar 17. 2023

#15

의식의 흐름 기록 : 타고난 성향, 성질 같은 것

MBTI, J > 제주도 여행 > 까끌거림 > 일본 여행


한때는 ENTJ였다가 ISFJ였다가 지금은 INTJ.

나의 MBTI에서 유일하게 계속 바뀌지 않는, J.

J의 특징을 살펴보자면, 체계적이고 분명한 목적의식을 갖고 일을 추진하며, 통제가능한 명확한 한계와 범주를 선호한다.

음.. 생각해 보면 나는 누군가와 만남을 가질 때에도 언제 몇 시에 어디에서 보자를 꼭 정해야 만한다.

최근에, 만나기로 한 상대가 좀 많이 바쁘고 일이나 연습시간의 마침시간이 일정하지 않은 음악인이다 보니 만나기로 한 전날까지도 합주로 인해 연락이 안 되었다. 그래서 전날 오후 11시 50분에 이렇게 카톡을 보냈다.

"언니, 많이 바쁘신가 봐요. 계속 연락이 안 되네요;; 내일 우리 만나기로 한건 다음으로 미루어요! 파이팅!"

하지만 언니가 12시 넘어 전화가 왔고 급하게 약속시간과 장소를 정할 수 있었다.

그리고 여행을 가기 위해 짐을 꾸릴 때면 2주 전부터 리스트를 작성하고 중간중간 날씨나 여러 가지를 고려하며 리스트를 수정한다. 1주 전부터 짐을 싸기 시작하고 출발하는 날 아침까지 사용하고 넣어야 하는 물품은 따로 기록해 둔다.

나는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 대한 당황감과 불편함이 매우 큰 것 같다. 젊을 적에 교회에 다녔을 때는 수련회 같은 걸 가면 수련회 일정을 알려주지 않는 팀장들이 꼭 있었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타입이다. 어떤 일정이 있는지를 알아야 옷을 몇 벌 가져갈지, 슬리퍼를 준비해야 하는지 등등 준비를 할 수 있는데 끝까지 말해주지 않았다. 게다가 나는 단체로 하루종일 같이 생활하고 공동화장실을 쓰고 혼자 있는 시간이 없는 장소적 제약에 아주 큰 불편함을 겪는데, 준비물까지 알 수 없으니 얼마나 답답했을까?


이런 나의 모습을 조금이라도 희석시켜 보고자 노력하는 중이다. 최근에 제주도 여행할 때 최대한 미리 준비하지 않았다. 리스트는 이틀 전에 작성하고 짐은 하루 전에 꾸렸다. 나에게 있어서는 정말 정말 대단한 일이다. 그러나.. 덕분에 수면안대와 귀마개, htmi to c type 케이블 등을 놓고 갔다. 날씨도 고려하지 못해서 옷도 너무 적게 가져갔고 너무 두꺼운 옷만 가져갔다. 후.... 정말 당황스러웠고 꽤 힘들었다. 게다가 햇볕알레르기... 알레르기 약과 연고 그리고 양산이나 햇볕 가리는 낚시용 얼굴 가리개 등을 가져갔어야 했는데.. 지금까지도 햇볕알레르기로 얼굴이 엉망진창이고 약 먹으면서 고생 중이다. 

역시 성향이란 건 함부로 단번에 희석되지는 않나 보다. 다음 여행은 그냥 다시 제대로 준비하고 철저히 짐을 꾸리련다. 하..


이러한 까끌거림은 그저 J의 계획형의 면모에서만 나오는 게 아니다.

MBTI를 신봉하지는 않지만 꽤나 재밌다고 느끼는데, 자주 바뀌는 나머지 글자보다는 J에 집중하는 이유가 더 있다. 뚜렷한 기준과 자기 의사를 가진다는 특징인데, 사실 나는 '뚜렷한 기준? 자기 의사? 내가?? 에이.. 나 그런 거 없는뎅.. 쩝' 했었다. 뭐 내가 가진 기준이나 내가 지닌 의지나 의사는 그저 누구든 갖고 있는 정도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일본 여행에서 알게 된 게 있다.

때는 2017년. 내 주위 친한 지인들이 모두가 다 일본 여행이 좋다고 했다. 사실 나는 동남아에서 액티비티와 마사지받는 거 외에 다른 지역으로는 해외여행을 가본 적이 없다. 유럽이나 미국, 호주는 너무 비싸고, 일본이나 대만, 중국은.. 딱히 선호하지 않는다. 나라 간의 감정뿐만 아니라 우리나라나 거기나 거기서 거기라고 느꼈으니까. 어쨌든, 남들이 좋다고 해서 다녀왔던 5년 전 일본 후쿠오카. 아.... 남들이 좋다고 다 좋은 게 아니었다. 내 기준이나 내 의사가 아니라 남들이 가는 거, 갖는 거라고 다 가고 다 가질 필요가 없다고 확고하게 내 기준을 세웠다. 나에게 최악의 해외여행 일본. 일본에 도착하고 그날 숙소에서 그런 생각을 했다. 지금 당장 돌아가는 비행기표를 취소하고 바로 필리핀으로 갈까? 그때는 11월 겨울이었기에 옷이 다 가을~겨울옷이었지만, 필리핀 가서 대충 아무 여름옷이나 사서 입는 게 낫지 않을까? 이 고민을 정말 많이 했다. 그런데.. 이마저도 J인 나에겐 통하지 않았다. 그 생각을 3박 4일 동안 하다가 한국에 돌아왔다. 내가 P형이었다면 바로 떠났을지도.


도저히 참을 수 없는 까끌거림과 거슬림. 그건 어쩌면 성향을 살살 건드려 큰 불쾌감을 끌어올리는 뾰족한 털 같은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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