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럴 때가 있다.
몸은 편하디 편한데 정신은 불편하디 불편한 시기.
남들은 월급루팡이라며 하는 일없이 출퇴근만 하고 있던 나를 '배부른 아이'라며 한소리씩 하곤 했다.
그러나 그렇게 소위 말하는 배부른 아이로 몇 달을 보낸 내가 얻은 건 생각보다 처참했다.
거창하게 말하면 인생에 대한 고뇌와 회의,
안타깝게 말하면 불면증과 소화장애,
극단적으로 말하면 우울증과 정신혼란 정도를 얻었을 뿐.
몇 안 되는 나의 유일한 장점들 중 하나였던 긍정성도 잃었고
끝없이 뿜어져 나오던 의욕도 잃었다.
더 이상 나를 잃고 싶지 않아 눈을 부릅뜨고 꾸역꾸역 이어가던 이 상황을 멈추기로 했다.
본능적으로 짐을 쌌고, 오로지 나를 위해 이곳을 잠시 잊기로 했다.
그러니까, 그래서, 역시나, 제주도다.
오로지 나를 위해 커피를 마시고,
오로지 나를 위해 산책을 하고,
오로지 나를 위해 하루를 살아가는 곳으로 다시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