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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슬 Dec 11. 2022

긍정의 힘

못한다는 말 대신, 할 수 없단 말 대신

대학의 평가 기간과 겹쳐 정신없이 살다 보니 문득 브런치의 글을 너무 오랫동안 손에서 놓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1학기 종강하자마자 얼른 브런치로 들어와 보니 마지막 글이 무려 10월 말.... 앞으로는 더 시간 관리를 열심히 해서 무슨 일이 있어도 일 주일에 한 번은 꼭 브런치 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해야겠다 싶었다.


대학 생활을 하면서 장애에 대한 고찰까지도 놓고 있었던 것은 아니기에, 오늘은 내가 타지에서 홀로 지내면서 유독 많이 느꼈던, 내 장애가 가르쳐 준 '긍정의 힘'에 대해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다만 본격적으로 여러 경험들을 풀어내기 전, 이 주제는 개개인이 장애를 가지게 된 사유 내지는 시기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것을 먼저 명확히 밝히고 싶다. 나 같은 경우는 워낙 어릴 때 장애 판정을 받았기 때문에 사실상 거의 한평생을 지금의 내 몸으로 살아 왔다. 따라서 남들처럼 걷거나 뛰지 못하는 것에 대해 좌절하거나 절망하는 것이 아닌, 오롯이 내 몸 그 자체를 나의 모습으로 인정한 상태다 (물론 사춘기 왔을 때는 절망하기도 했다). 반면 장애의 원인은 워낙 다양하기 때문에, 불의의 사고나 질병 등을 통해 하루아침에 장애를 가지게 된 경우 이야기가 달라질 수 있다. 만약 몸은 다쳤는데 사고 이전의 기억은 그대로인 상황이라면, 본인의 몸이 아프기 전에 어땠는지를 다 기억하고 있기에 오히려 심적으로 더 힘들 수도 있기 때문이다. 즉슨, 무조건 '할 수 있다'며 긍정적인 태도를 가지라고 강요하는 것은 누군가에게는 버거운 일일 수 있다는 이야기다.


나는 앞서 서술했듯 너무 어린 나이 (두 돌 때였다고 들었다)에 장애를 가지게 되었기 때문에, '장애를 가지기 전'이라는 프레임으로 나의 삶을 바라보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따라서 어렸을 때부터 사회의 조금은 다른 시선을 받아내면서 살아오기는 했어도, 과거보다는 현재와 미래를 바라보면서 사는 편이다. 거기에 하고 싶은 건 꼭 해야 한다는 주의를 가지고 있어서 도전하는 걸 별로 두려워하지 않는다. 이런 무모함이 발현된 가장 대표적인 예시가 바로 지금의 영국 생활. 지지난 '자립심' 편에서도 살짝 다루었지만, 나는 몇 달 전 훌쩍 영국으로 떠나오기 전까지 샤워조차 혼자 하기 버거워할 정도로 스스로 할 수 있는 게 많이 없었다. 어쩌면 대부분의 주위 지인들이 장애를 안고서 기어코 홀로서기를 할 수 있겠냐고 걱정하던 반응은 당연한 지사였다. 그러나 나는 스스로 '할 수 없을 것이다'라고 생각하기보다는,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원하는 공부를 할 수 있게 되었다는 부분에 초점을 맞췄다. 아니, 그러려고 최대한 노력했다. 다른 사람들도 나의 능력을 의심하는 판에 나마저 나를 믿어주지 않으면 너무 비참할 것 같았다. 무언가 해 보기 전에 스스로 내 한계를 결정짓고 싶지도 않았다. 그래서 영국행 비행기에 혼자 올랐을 때, 이제 정말 혼자서 해 낼 수 있다는 걸 떳떳하게 증명해 보이는 시간이 찾아왔다고 믿었다. 물론 영국에 처음 들어오고 나서의 3주는 시차 적응에 몸살, 향수병 등등이 겹쳐 고됐지만, 그 시간들 속에서도 하루하루 집안일이며 행정적인 절차를 잘 밟는 내가 대견했다. 그렇게 작은 성공적인 하루들이 모여, 이번에도 나의 무모함이 틀리지 않았다는 확신이 되었고 이제는 뭐든 일단 시작만 한다면 해낼 수 있는 사람이라는 믿음이 쌓였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긍정적인 마인드를 가지게 된 건 아니다. 내게 있어서 체육이란 쥐약 그 자체였다. 체육 시간뿐만 아니라 운동회도 그러했다. 워커를 잡고 다니던 초등학교 시절, 운동회에서 100미터 달리기를 하면 꼴찌는 당연히 내 몫이었다. 매년 다른 아이들이 벌써 결승선을 넘고 한 쪽에서 대기하는 동안 꾸역꾸역 워커를 끌고 100미터를 완주하면서, 그냥 없는 사람으로 취급받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도 많았다. 내가 완주하기 전까지 다음 조가 달릴 수 없다는 것도 나름 그떄의 나에게는 고역이었다. 이런 기억들이 쌓여, 고등학교 때 졸업 조건을 맞추기 위해 (반강제로) 매주 기록용으로 운동을 한 걸 제외하고는 자발적으로 다른 신체 활동에 지원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러다가 졸업 이후에 운동치료를 꾸준히 받게 되면서, 병원 바깥에서도 조금 더 걷는 시간을 마련해 보자는 생각에 달리기 친목을 하게 됐다 (물론 내 기록은 달리기라고 부르면 안 되는 수준이고, 그냥 목발을 잡고 동네를 좀 걸어다녔다 정도의 기록이다). 내가 좋아하는 가수의 팬들 일부가 모여 시작한 온라인 친목이었는데, 남들은 다 어플을 켜 놓고 각자의 시간과 장소에서 진지하게 달리는 동안 나는 목발을 짚고 걸어다녔다. 평소 같았으면 굳이 시도조차 하지 않았겠지만, 오히려 시간을 내고 꾸준히 목발로 걷게 되면서 조금이나마 운동의 재미를 느끼게 되었다. 턱끝까지 숨이 차올라도 포기하지 않고 한 발짝 두 발짝 내딛는 걸음이 마치 '나는 뭐든지 해낼 수 있다'라는 말을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 같았다. 다른 사람들의 시선은 이제 중요하지 않았다. 상대적인 기준이 생겼을 때 나의 러닝은 러닝조차 되지 않겠지만, 나의 신체 조건에서는 고강도 운동이 맞았으니까. 타인이 나를 어떻게 볼지에 대해 신경을 쓰지 않게 되니 온전히 나에게 집중할 수 있었고, 그제서야 내가 마냥 신체 활동을 싫어했던 게 아니었음을 깨달았다. 나는 체육을 할 때마다 항상 나의 신체 능력과 비교할 대상이 있었고, 상대적으로 내가 부족한 게 계속해서 눈에 보이니 그걸 보완하기보다는 '못한다'는 말로 모든 걸 덮어 버렸던 거다. 신체적인 활동에 있어서 못한다고, 할 수 없다고 내가 먼저 손을 놓아 버리면, 다른 사람들도 그걸 인정하고 나에게 강요하지 않았으니. 사실 유학 오기 직전에 잠시 휠체어 베드민턴을 치면서 느낀 것은 장애가 있어도 그것에 맞추어 종목의 규칙을 수정하면 충분히 할 수 있는 운동이 의외로 많았다는 점이다. 그런데 나는 기존의 규칙을 기준으로 나의 신체적 능력을 평가하고는, 이건 못한다고 먼저 학을 떼 버린 셈이었다. 


지금은 어떤 일에 있어서도 못하겠다는 말을 잘 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휠체어로 가기 어려워 보이는 식당에서 밥을 먹고 싶다면, 무작정 포기하고 다른 곳을 찾기보다는 미리 해당 식당에 전화를 걸어 방문 희망 시간과 함께 도와주실 수 있느냐고 여쭤본다. 그리고 식당 측에서 어려울 것 같다고 거절하면 그때 깔끔하게 포기하는 편이다. 나는 내가 스스로 나의 심리적인 한계를 지어 버리지 않는 이상 아주 불가능한 일은 없다고 믿는다. 그저 다른 이들과 똑같은 방식으로 일을 수행하기 어려운 것일 뿐, 조금 돌아가는 길일지라도 나의 방식에 맞추어 언젠가는 해 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나에게 가지고 있는 믿음과 물증이 있기에, 또 다시 나의 삶에서 무모하게 일을 벌리고 때로는 헤맬지라도, 그 모든 것을 미리 걱정하지는 않는다. 그렇게 시행착오를 겪는 과정마저도 결국에는 나의 피와 살이 될 것이고, 앞으로 비슷한 일을 다시 겪지 말라고 맞는 예방주사일 뿐이니까. 아무리 주변 사람들이 할 수 있다고 이야기해 줘도, 내가 나에게 무한한 믿음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면 나의 오늘은 결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세상 물정 모르는 배부른 소리로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는 긍정 신봉론자다. 긍정적이기 때문에 구더기가 무서워도 끝내 장을 담글 수 있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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