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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슬 Feb 22. 2023

나의 유학 일지, 그 시작

영국 유학의 로망과 현실 (feat. 휠체어)

지난 9월에 처음으로 홀로 해외살이를 하게 되었다. 내가 배우고픈 학문을 찾아, 꿈을 좇아 오른 영국 유학길이었다. 쉽지 않을 거라 예상하기는 했지만, 생각보다 쉽지 않은 나날들에 때로는 모든 걸 놓아 버리고 싶기도 했다. 그렇지만 끝끝내 포기하지 않고 꿋꿋하게 오늘도 런던에서 살고 있다.


필자는 휠체어로 하루 종일 생활하는 자취형 기숙사생이기 때문에, 나의 유학일지는 때로는 생경하게 다가올지도 모른다. 어쩌면 다른 유학생들, 혹은 유학 예정자들이 굳이 신경쓰지 않는 부분들까지도 다룰 예정이기 때문이다. 이전에 <장애가 내게 가르친 것들> 시리즈에서 단편적으로 유학을 잠시 소재 삼은 적이 있었는데, 이 시리즈에서는 장애에만 초점을 맞추지는 않을 예정이다. 이 시리즈의 목적은 유학생의 현실을 그리는 데에 있다.


그래서 첫 시작으로, 영국 유학의 로망과 현실에 대해 나눠 보려고 한다.

잠시 작년 여름으로 돌아가 보자. 필자가 영국으로 가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주변 사람들에게서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은 공통적인 말들이 있다.

1. 영국 음식 맛 없어서 고생하지 않겠어?

2. 처음부터 혼자 들어간다고? 휠체어 타고?

3. (손흥민 / 스팅 / 아델 등등..... 영국에 있다고 알려져 있는 유명인) 만나고 와!


앞으로 다른 편에서 이 질문들과 연계된 이야기들, 그리고 직접 살면서 부딫히게 된 유학생의 현실을 더 자세히 풀어낼 테지만, 일단 여기서는 저 질문들에 대한 답을 좀 해 보고자 한다.


영국 음식은 맛이 없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영국 음식'의 기준을 무엇으로 잡느냐가 중요하다. 단순히 '영국에서 먹는 음식'이라고 한다면 생각보다 맛이 괜찮고, '영국에서 유래해 만들어진 음식'이면 조건적으로 맛있다. 


영국, 특히 런던은 정말 다양한 국가에서 온 사람들이 공동체를 이루고 있다. 필자 같은 유학생을 포함해, 이민자들도 상당히 많다는 얘기다. 그래서 영국 시내를 조금만 걸어다녀봐도 거리에 전세계의 음식들을 파는 식당들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아시아 음식의 경우 인도와 베트남, 중국 음식점들이 많고 요즘은 한식당도 늘고 있는 추세다. 아예 런던의 한인마트를 기준으로, 길 건너편에는 네이처 리퍼블릭과 한국 분식집이 자리잡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탈리아 음식, 포르투갈 음식, 레바논 음식, 지중해 음식 등등, 본인의 기호와 취향에 따라 전세계에서 유래한 음식을 맛볼 수 있다. 특히 해당 국가에서 영국으로 이민 오신 분들이 운영하는 식당이면 오히려 한국에서 먹는 것보다 더 맛있을 확률이 높다. 그래서 '영국에서 먹는 음식'이 무조건 맛이 없다고 단정짓기에는 무리가 있다.


그렇다면 '영국에서 유래해 만들어진 음식'에는 무엇이 해당될까? 한국에 대중적으로 알려져 있는 건 에프터눈 티 문화와 잉글리시 브렉퍼스트, 그리고 피쉬앤칩스 정도인 듯하다. 


우선 영국의 차 문화는 단순히 차만 마시는 게 아니다. 차와 함께 빵이나 달달한 케이크, 쿠키와 같은 디저트를 먹는다. 그 문화가 지금도 이어지고 있어서 영국에서 먹는 디저트와 차는 정말 진하다. 디저트(쿠키, 조각케이크)는 엄청나게 달고 꾸덕한 경우가 많다. 영국에서 한 번 차랑 디저트를 맛보면 한국의 디저트에는 손이 덜 가게 된다. 그 정도로 맛있다. 아무래도 그만큼 오랫동안 개발되고, 또 즐겨 찾는 문화적 풍습이 되었기 때문인 것 같다.


잉글리시 브렉퍼스트는 콩 통조림 (baked beans)에 토마토, 달걀 요리, 소시지, 베이컨, 헤쉬브라운, 그리고 토스트로 구성된 영국식 아침이다. (원래는 블랙 푸딩이라는 순대 비슷한 요리까지 포함된다고 하는데, 이건 오랫동안 잉글리시 브렉퍼스트를 해 온 집에 가야만 먹을 수 있다고 한다.) 필자는 학교 식당에서 조식을 먹는데, 이 재료가 다 들어가지는 않고 5가지만 골라서 먹는 시스템이다. 그리고 말이 잉글리시 브렉퍼스트지, 영국인이라고 매일매일 이것만 먹는 건 아니다. 오히려 아침을 잘 먹지 않거나, 출근/통학하는 길에 (우리나라로 치면 파리바게트 같은) 체인점에 들러 간단한 빵 한 조각에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이 훨씬 많다. 필자는 살고 있는 기숙사가 학교 식당과 연계되어 있어 주 3회 공짜 조식 쿠폰이 있기 때문에 잉글리쉬 브렉퍼스트를 먹지만, 맛은 사실 그저 그렇다. 잉글리시 브렉퍼스트에만 해당되는 건 아니고 조금이라도 기름을 써서 만들어지는 영국식 음식이면 거의 다 그런데, 간이 거의 안 되어 있거나 반대로 너무 세거나 둘 중 하나다. 아예 식당에서 소금과 설탕을 따로 구비해 놓을 정도다. 피쉬앤칩스도 예외는 아니라서, 물론 정말 잘하는 집은 맛있겠지만 간이 정말 복불복이다. (아직 필자는 피쉬앤칩스 맛집을 못 찾았다) 피쉬앤칩스에서 살아남는 건 감자밖에 없다. 영국의 감자는 간을 많이 하지 않아도 맛있게 먹을 수 있다. 소금이나 설탕을 굳이 찍지 않아도 본연의 맛이 좋기 때문에, 피쉬앤칩스에서도 괜찮게 먹을 수 있다.


휠체어를 타고 있으면 혼자 영국 입국이 어려울까?

필자가 휠체어를 타기 때문에 받았던 질문이다. 아마 이 질문을 지인들에게 받을 가능성은 거의 대부분 없을 거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상당히 조심스러운 게 사실이다. 단순히 휠체어를 탔느냐의 여부뿐만 아니라, 개개인이 가진 장애의 정도에 따라 답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필자의 부모님도 처음에는 필자가 절대로 혼자 영국 생활을 하지 못하리라 예상하셨고, 적어도 처음으로 영국에 들어갈 때만큼은 어머니께서 함께 입국하셔서 짐 풀기를 도와주셔야 하지 않을까 걱정하셨다. 필자는 영국에서 앞으로 3년 간 학교를 다닐 것이라면 어차피 혼자 할 줄 알아야 된다고 생각해서 그 도움을 만류했으나, 쉽지 않은 건 사실이다. 들어가기 전 수 개월 간 병원에서 집중 재활치료를 받고 간 건데도!


휠체어를 탔다고 해서 단순히 '입국'이 어려운 건 아니다. 영국의 비자가 정상적으로 잘 나와 주었다는 전제 하에, 미리 항공사에 연락해 사정을 설명하면 런던 공항에 도착해서도 항공사 직원의 서비스를 받아 입국장 밖까지 나올 수 있다. (유학생 입장에서 비자가 나오지 않으면 당연히 입국 심사를 탈락할 가능성이 높다) 아쉽게도 휠체어 때문에 자동출입국심사는 받을 수 없는데, 그럼에도 휠체어를 타고 있으면 fast-track 이라는 별도의 줄에서 입국 심사를 하기 때문에 생각보다 오래 걸리지는 않는다. 그리고 도착해서 설명을 잘하면 택시 타는 곳이나 지하철 타는 곳까지도 휠체어를 밀어 주시기도 한다. 


다만 휠체어를 타고 있으면 의외로 택시와 승용차를 타는 게 매우 어려워진다. 이 부분은 다음 주 포스트에서 자세히 다룰 예정이다.


영국에 있으면 영국 유명인 만나기 쉽다?

카타르 월드컵 끝나고 필자에게 이런 질문을 하는 사람들이 늘었다. 그러면 나는 답한다. "한국에서 거리 지나다니면서 숨쉬듯이 한국 연예인들 보세요?" 당연히 아니다. 한국에서 유명 가수를 보려면 (티켓팅에 성공해서) 비싼 돈을 내고 시간을 투자해 공연을 보러 가야 하듯, 여기도 마찬가지다. 심지어 영국으로 한국 그룹이 월드투어라도 오는 경우엔, 한국에 있을 때보다도 보기 힘들다. 


그리고 사실 유명인까지 갈 것도 없이 애초에 한국인 찾기가 상대적으로 힘들다. 오히려 중국인들은 매우 많아서, 가끔 길거리를 다니다 보면 내가 지금 영국에 온 건지 중국에 온 건지 헷갈릴 때가 많다. 영국은 미국이나 캐나다 등의 북미권 국가들에 비해 한국인들이 많이 유학 오는 나라가 아니다. 영국에 차이나타운은 있어도 코리아 타운은 없다. 물론 대학 한인회에 가입하는 등의 경로를 통해 유학생 동지를 찾을 수 있겠지만, 국제 학생 비율이 높은 영국 대학 특성상 전체적으로 따졌을 때 그 수가 상대적으로 많은 편은 아니다. 그리고 직장 생활을 하게 되면 영국으로 파견 나온 한국 기업에서 일하는 게 아닌 이상 한국인 찾기는 더 힘들어질 것이다.


다음 주부터는 필자의 유학 생활 기록을 주제별로 공유할 예정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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