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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슬 Apr 28. 2023

영국에서의 자취 A to Z (2)

방학 동안 짐 맡기기 & 내년 살 곳 구하기

연고지가 없는 곳에서 홀로 유학 생활을 하게 되면 짐을 싸고, 보관하고, 푸는 게 일이 된다. 특히나 이곳에서 학생들이 거주할 수 있는 기숙사 (학교, 사설 포함)는 보통 1년 단위로 계약을 진행하기 때문에, 계약이 끝나는 여름에는 무조건 방을 비워야 한다. 또한, 학교 기숙사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겨울과 봄방학에 모두 짐을 빼야 하는 곳들도 있다. 영국에서 방학 기간 동안 짐을 맡아 줄 곳을 미리 수소문해야 하는 이유다. 물론 여름 동안 영국에 남아 있으면서 석사 논문을 쓰거나 인턴십을 한다면 이야기가 좀 달라질 수 있겠지만, 후자의 경우 여름 방학 내내 인턴십이 진행되는 경우는 드물다. 


이 점을 염두에 두고, 장기간 짐을 맡기는 방법을 공유해 보고자 한다.


1. 짐 보관 및 배달 업체

Lovespace가 대표적인데, 미리 짐을 싸 놓기만 하면 업체 쪽에서 운전사가 와서 짐을 싣고 보관소에 넣어 주는 서비스이다. 날짜를 지정하면 그 날에 맞춰 운전사가 다시 짐을 수거해 정해진 거주지로 배달해 준다. 이런 업체들의 가장 큰 장점은 짐을 직접 옮길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업체마다 조금씩 다르겠지만 Lovespace는 처음부터 인건비가 들어감에도 불구하고 학생 할인까지 더해져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을 자랑한다. 박스의 갯수와 크기를 기준으로 가격을 책정하고, 길게 보관할수록 싸지는 방식. 단점이라면 이런 업체들은 '짐을 배달'해 주는 것까지가 서비스에 포함되기 때문에, 내가 보관소에 직접 방문해 짐을 옮기고 보관하는 게 불가능하다. 즉, 내 짐이 아무렇게나 던져져서 보관이 되고 있는지, 짐을 잃어버리지는 않았는지와 같은 사안은 배달이 오기 전까지 눈으로 확인할 수 없다.


2. Self-storage (보관 업체)

영국의 거의 대부분의 짐 보관소는 self-storage, 즉 본인이 알아서 짐을 옮기되 '보관만' 해 주는 형태다. 워낙 이런 곳은 구글에 지역명 + self-storage만 쳐도 나오기에 특정 업체를 거론하지는 않겠고, 장단점만 비교해 보겠다. 우선 가장 큰 장점은 (거의 대부분의 보관소에) 미리 방문해 보관하는 공간을 확인하고, 그에 맞춰 짐을 싸는 게 가능하다는 점이다. 또 보관하는 당일 직접 짐을 보관하게 되기 때문에 혹시라도 추후 문제가 생겼을 때 물증을 보이기도 편하다. 내 짐은 내가 제일 잘 알기 때문. 가격은 보관하는 공간이 클수록, 보관 기간이 길수록 비싸진다. 공간을 대여하는 것이니까. 대신 짐을 기숙사에서 보관소까지 알아서 옮겨야 하기 때문에, 이 경우 짐만 따로 옮겨 주는 서비스 (courier service)를 추가적으로 알아봐야 한다. 보관소에서 기숙사까지 다시 짐을 옮길 때도 마찬가지다. 업체에서 자체적으로 추가 비용을 낸 이용자들에 한정해 사람을 불러 주기도 하지만, 보통 매우 비싸기 때문에 Addison Lee나 AnyVan 과 같은 courier service 전용 회사를 따로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 보관소마다, 또 courier service 업체마다 조건이 다르므로 꼼꼼히 알아보고 신중하게 결정하면 된다. 보통 6월에 종강하는 대학이 많은 관계로, 5월에서 6월 사이에 수많은 짐 보관소가 붐빈다고 하니 4월 경의 봄방학을 활용해 미리 발품을 팔면 좋다.



3. 학교 기숙사 창고

학교마다, 기숙사마다 정책이 조금씩 다르니 사전에 확인하는 건 필수. 학교 기숙사들은 거의 대부분 큰 창고가 있는데, 만약 필자처럼 이듬해에 같은 기숙사에 한 번 더 머물게 됐다면 고려해 볼만하다. 그렇다고 방에 있는 모든 짐을 다 맡길 수 있는 건 아니고, 도저히 상자에 넣을 수 없는 물품들만 보관해 달라고 하는 게 현명하다. 대신 방학 중에 상업용 호텔로도 겸용되는 기숙사라면 방학 내내 호텔 손님들이 창고에 들락날락할 테니 보안성은 다소 떨어진다.


4. 지인 찬스

영국에 잘 아는 지인이 있다면 가장 안전한 선택지이다. 쉽게 말해 지인분의 집에 짐을 맡겨두었다가 영국에 다시 돌아왔을 때 기숙사로 짐을 가져오는 건데, 이 경우 개인의 집에 짐을 보관하는 것이어서 도난 우려가 거의 없다. 다만 이런 지인이 없다면 생각할 수 없는 옵션이다.



나는 2번, self-storage에 짐을 보관하되 courier service 차량을 따로 불러서 상자를 옮기는 방식을 택했다. 내년에 같은 기숙사에 살게 되어서, 가장 기숙사에서 가까운 업체들을 찾아 직접 발품을 팔고 결정했다. 마찬가지로 업체마다 다르겠지만, 내가 계약한 곳은 계약이 시작되기 10일 전에야 내가 예약한 크기의 공간이 남아 있는지 알려주신다고 한다. 당장 짐을 보관할 게 아닌데 '찜'해 놓으면 한시가 급한 사람들이 우선순위에서 밀려나 버리기 때문. 대신 예치금을 미리 넣어두어서, 만약 내가 원하는 시기에 원하는 공간이 남아 있다면 내가 1순위로 그 공간을 대여하게 된다. 봄방학 중인 지금은 어느 정도 내 생활 패턴을 알기 때문에, 내가 전혀 사용하지 않는 짐들을 먼저 싸두거나 처분했다. (물건 배달시킬 때 온 상자를 버리지 않고 재활용하면 편하다. 한국의 우체국 상자만큼 견고해 보이지는 않지만...) 



한국에 들어가기 전 해야 하는 일이 또 있다. 바로 내년에 머물 곳 구하기. 학교마다 방침이 다르겠지만, 우리 학교의 경우 새로 들어오는 신입생들에게 기숙사 신청 우선권이 주어진다. 따라서 나처럼 2학년으로 올라가거나, 3학년으로 올라가는 학생들은 당장 가을부터 생활할 자취방을 구하는 경우가 많다. 아무리 기숙사 신청 기간에 빠르게 신청해 봤자 신입생들에게 밀리기 때문이다. 나 같은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휠체어를 타고 있다는 점이 감안되어 지금도 생활하고 있는 휠체어 사용자 전용 방을 예약할 수 있었다. (자취를 한다고 해도 지난 글에서 공유한 부엌처럼 상판 높이가 조절되는 주방을 찾을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앞서 내가 내년에도 같은 기숙사에 살기 때문에 최단거리를 기준으로 짐 보관소를 찾았다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그렇다고 해서 자취방 구하는 과정을 아예 모르고 있으면 곤란하다. 아직 1학년이기에 섣불리 단정지어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만약 내가 대학을 졸업한 뒤에 영국에 눌러앉기로 결정한다면 (혹은 석사로 진학하기 전, 졸업생 비자 (graduate visa)를 활용해 2년 간 취업한다면) 언제까지나 학교 기숙사에 머물 수는 없다. 워낙 내 주변 친구들 중에 자취방을 구해 계약한 경우가 많기 때문에 그들의 공통적인 경험에 따라 정리해 보자면, 발품을 팔아야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보통 미리 인터넷으로 매물을 검색해 예산에 맞는 곳들을 몇 군데 추린 뒤 부동산에 미리 예약하면 예약 일자에 맞춰 매물을 볼 수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영국은 좀 다른데, viewing (매물 확인)을 할 수 있는 날짜나 시간대가 한정적이고 (내가 특정 시간대를 예약하는 게 아닌, 집주인이나 부동산에서 viewing 가능 시간을 정해 놓는 경우도 있다), 설령 방을 구하겠다고 해도 계약 희망자들이 여럿 몰리면 집주인이 세입자를 선택한다. 그리고 우리나라와는 달리 flat sharing, 그러니까 flat이라는 개념의 주거 공간을 여러 사람이 공유해서 생활하는 문화가 발달해 있다. 우리나라에서 원룸처럼 혼자서 살 수 있는 공간들을 마련해 놓은 것과는 대조적이다. 실제로 친구들 역시 혼자서 매물을 보러 다니는 경우는 드물고, 1학년 때 마음이 맞는 친구들끼리 함께 렌트비를 n분의 1로 내기로 결정한 뒤 함께 매물을 구경한다. 

이곳에서는 첫달 월세를 계약시 미리 내야 하고, 월세보다 최소 30배가 넘는 돈을 보유하고 있어야 유리하다. (학생의 경우 보통 부모님 돈이지만, 졸업 이후에 취업을 준비하면서 집을 찾다 보면 재정 능력을 이유로 집주인이 선택하지 않는 경우도 꽤 있다고 들었다.) 당연한 얘기지만 영국 안에서도 도심 지역과 가까울수록 매우 비싸다.

미리 발품을 팔아 수압, 근처 소음 정도, 곰팡이 여부 등등 자취방 체크리스트를 만들어 확인한 뒤, 마음에 들면 계약하면 된다.  사람들 생각은 다들 비슷해서, 여름에 제일 사람이 많이 몰린다고 한다. (아무래도 대학생들의 개강이 9월이니)


한국에서 한 번도 직접 고민해 보지 않았던 문제들을 자취하면서 생각하게 되었다. 처음인 만큼 서툴기도 하고 짐이나 자취방 계약 때문에 머리가 아프기도 하지만, 이러면서 성장해 나가는 게 아닐까 싶다. 다음 편에는 유독 파업이 잦은 이곳에서 살아남는 법을 가지고 올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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