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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슬 Jun 13. 2023

영국의 의료 시스템에 대하여

유학생인데 아플 때

한국에서는 안과, 이비인후과, 치과 등의 세분화된 병원을 찾는 것이 어렵지 않다. 몸이 아플 때 바로 필요한 치료를 받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그럼 영국은 과연 어떨까.


주위에서 유학하는 지인들에게 물으면, 유학생은 타지에서 아플 때 제일 서럽다고 했다. 자국민이 아니라는 이유로 제대로 된 의료의 혜택을 받지 못한다는 게 주된 평이었다. 영국 비자를 받고 들어오면서 필수적으로 의료 보험비를 내야 하기 때문에, 나는 영국은 좀 다를 거라 믿었다. 그리고 그것은 나의 크나큰 오산이었다.



영국은 주치의 제도 (General Practitioner; 이하 GP 제도)가 발달되어 있다. 이곳에서는 주치의가 곧 1차 병원이다. 그래서 유학생이라면 오자마자 기숙사 근처에 있는 GP를 검색해 등록 절차를 밟아야 한다 (행정적으로 참 느린 영국 아니랄까봐, 등록하는 데에도 최소 일주일은 걸린다). 이후에는 어디가 어떻게 아프든, 우선 주치의와 appointment를 잡고 찾아가야 한다. 한국은 병원에 가서 접수를 하고 당일 진료를 받는 것이 가능하지만, 영국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이야기다. 병원 문을 여는 아침 8시에 칼같이 전화해 어떻게든 약속을 잡아야 한다. 조금이라도 늦으면 선착순에서 얄짤없이 밀려서 진료만 늦춰진다. 

여기서 안타까운 것은, 필자를 포함한 대부분의 유학생들이 입국한 지 한 달 안에 면역력이 약해져 병치레를 하게 된다는 것이다. 특히 대학 신입생들은 학기 초반 fresher flu라는 일종의 독감에 많이들 걸리는데, 이 시기에는 너나할것없이 모든 강의에서 쿨럭거리며 주위의 따가운 시선을 견뎌야 한다. 이렇게 아플 때 GP 진료 한 번으로 병이 나았다면 덜 서럽기라도 했을 것이다. 대부분의 GP는 한 사람의 환자에게 오직 10분만을 할애한다. 이마저도 GP가 보기에 큰 이상이 없어 보이면 말로 10분 상담하는 것이 전부이며, 전문적인 2/3차 병원을 가려면 GP의 추천서가 필요하기에 전문 진료를 받을 수도 없다. 아무래도 영국의 GP는 외국인들에게도 무료로 진료를 제공하게끔 되어 있기에, 그만큼 질이 떨어진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영국 비자를 신청할 때 의료보험비를 무조건 결제하도록 하는 게 이해가 안 된다)


그래서 영국에서는 아프면 무조건 응급의료센터 (Urgent Treatment Centre)를 찾아가야 한다. GP 제도는 무상인 대신, 1차에서 2차까지, 또 2차에서 3차까지 넘어가는 데에 있어 엄청나게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름에서부터 드러나듯이, 영국의 응급실은 정말 말그대로 응급환자들로 넘쳐나기 때문에 세심한 진료를 기대할 수는 없다. 그래서 유학생들은 상비약을 가져오거나, Boots라는 약국에서 그때그때 필요한 약을 구비해 두었다가 아플 때 우선 약으로 버티는 경우가 많다. 물론 그것도 어디까지나 임시방편인지라, 보통은 방학이 시작되자마자 한국에 들어와 병원부터 찾게 된다. 유학생들이 학기를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오면 무조건 밟게 된다는 풀코스 (다이소, 병원, 미용실)가 있는데, 여기에 병원이 들어간다는 것부터가 영국의 의료 시스템이 좋지 않다는 방증이다. 다이소와 미용실은 영국에서 굉장히 비싼 돈을 주고 사거나 받아야 하는 서비스여서 그렇다.



그러니 영국으로 유학을 올 예정이신 분들은 무조건 웬만한 상비약(감기약 포함)을 한국에서 처방받아 가지고 오는 것을 추천드린다. 대부분 영국에 와서 다친다면 면역력이 떨어졌거나 스트레스가 극심해서인 경우가 다반사다. 스트레스를 받지 말라고 할 수는 없지만, 유학생 신분으로 영국의 의료 제도에 기대기는 매우 어렵다. 몸이 아프면 하고 싶은 것들도 하기 어려우니,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대비밖에 없다. 하다못해 영국 국적자들도 정말 아플 때는 돈을 더 내서라도 사설 병원에 가지만, 유학생 입장에서는 이마저도 부담스러운 게 사실이니... GP 제도는 구조적인 문제라 단시간에 바뀔 수 없다는 게 슬프다. 모든 이들이 어디에 있든 건강하게 생활을 영위할 수 있기를 바라는 이유다.


다음 글은 향수병 극복기로 찾아올 예정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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